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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22. 2020

사도세자의 죽음.두번째 이야기


이미지 출처 : 영화 사도


사도세자는 대리청정하면서 자신을 허수아비 취급하는 신료들과 자신을 믿지 못하는 영조로 인해 자존감이 계속 떨어졌다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와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아내인 혜경궁 홍씨(1735~1815)가 있었지만그녀에게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없었다당시 사회적 관념상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그녀의 집안은 사도세자가 견제하고자 했던 노론의 주요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차 사도세자는 자신을 짓누르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현실적으로 이를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것이었다사도세자는 점차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서연도 나가지 않고정무도 돌보지 않았다처음에는 영조도 사도세자의 건강을 걱정했지만병치레가 많아지자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겼다더욱이 사도세자가 몇 달 동안 영조에게 문안 인사를 오지 않자영조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며 괘씸하게 여겼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사도


문안 인사를 하지 않아 영조가 화가 났다는 소식을 접한 사도세자는 영조를 찾아뵙고 용서를 빌었다순조롭게 곧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는 순간영조는 상복을 입고 곡을 하기 시작했다사도세자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남의 이목에만 신경을 쓴 거짓 용서를 빌었다며 선위의 뜻을 비쳤다어쩌면 대리청정을 맡겼더니 벌써 왕이 된 줄 알고 영조 자신을 무시한다 여겼을지도 모르겠다부모가 자녀와 갈등이 생기면대화로 풀어보겠다고 자리를 마련한다그러나 대부분은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더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서로 간에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고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다가종내에는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갈등이 더 커진다.

영조와 사도세자도 그러했다영조는 사도세자를 만나고 나서 더욱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에 괘씸해졌다사도세자는 그 자리가 무서워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던 것인데영조가 상복을 입고 울면서 왕위를 넘긴다는 말에 기절하고 말았다이후로는 영조를 더욱 두려워하여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영조와 사도세자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서로에게 서운 하다못해 미운 감정만이 남았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사도


사도세자에겐 어린 시절 그토록 자신을 예뻐해 주던 자상스러운 아버지는 없었다무엇을 해도 칭찬은 없고 늘 모자란다고 질책만 하는 아버지만 있었다영조에게도 어린 시절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아는 총명하고 효심 깊은 아들이 없었다부족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지적하면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듣는 둥 마는 둥 무성의한 행동으로 실망만 주는 아들만이 있었다둘은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다친 감정만 바라봤다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오해는 깊어지고 깊어져 더는 풀 수 없게 된다.


사도세자는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영조와는 달리 궁궐 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고 불안했다무골 기질을 가진 사도세자가 계속 아픈 척해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아버지 영조가 없는 곳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결국은 젊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한 사도세자는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관서 지역을 유람하고 왔다궁궐 밖에 있을 때는 좋았으나막상 궁에 들어오니 불안했다영조가 알게 되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사도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관료들과 내시 모두 이 일을 함구했다그러나 영원히 감춰지는 것은 없었다관서 지역을 다녀온 지 넉 달 후 영조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크게 노한 영조는 사도세자를 도왔던 내시를 유배 보내고사실을 감춘 승지를 파직하고 동궁 관원을 처벌했다사도세자는 며칠 동안 용서를 빌었고영조도 더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이 순간이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것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도세자도 그 순간을 넘겼음에 안도했을 뿐행동의 변화가 없었다영조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기보다는 용서하는 것으로 자신의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조용했던 둘의 관계는 1762년 나경언의 고변으로 다시는 되돌리지 못하게 된다사도세자의 10가지 잘못을 적은 고변서를 접수한 이해중은 사도세자의 장인이던 홍봉한에게 사실을 알렸다빨리 잘못을 빌려고 했는지아니면 평소 노론에 적대적인 사도세자를 길들이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홍봉한은 영조에게 고변 사실을 알렸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사도


영조는 직접 국문을 열어 나경언에게 사도세자의 잘못을 적인 글을 받았다크게 화가 난 영조는 나경언을 참형에 처하고잘못이 적힌 글은 태워버렸다나경언의 글이 사라지면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사도세자가 이복형제의 어머니인 양제 임씨를 때려죽이고여승을 궁에 들였다는 내용 등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사도세자가 정말로 역모를 꾀했는지는 알 수 없다사도세자가 정말로 역모를 꾀했다면 세손(정조)까지도 역적의 죄로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보위를 계승할 후손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영조가 역모죄를 감추기 위해 사도세자의 잘못만을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영조와 사도세자가 일 년이 넘도록 못 만나지 않았다면남보다도 못한 미움과 아쉬움을 서로의 가슴에 품지 않았다면 영조는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아니 나경언이 사도세자가 역모를 꾀했다고 고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사도


 나경언이 참수되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사도세자는 창경궁 시민당 뜰에서 죄를 청하며 용서를 빌었다하지만 영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나경언의 말이 진실인지 대면하게 해달라는 사도세자의 청을 묵살한 영조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고 한다사도세자는 두려웠을 것이다차라리 화를 내거나 벌을 내린다면 나았을지도 모른다조용한 적막만이 맴도는 시간은 사도세자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결국은 심적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사도세자는 광폭하기 시작했다누구도 사도세자를 말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가 미친 듯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 영조를 찾아갔다사도세자의 병이 깊으니 세손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영조는 영빈 이씨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선원전에 나가 절을 올린 뒤 사도세자를 휘령전으로 불렀다그리고 궁궐 문을 닫고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다세손만이 울며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외칠 뿐장인이던 홍봉한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자결하라는 명을 거두어달라고 나서지 않았다사도세자는 목청이 떠나가듯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영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모든 것을 체념한 사도세자가 자결을 시도하자 그제야 신하들이 말리기 시작했다영조는 모든 것을 지켜보다 안에다 엄중히 가두라고 명했다그리고 사도세자의 비행과 관련된 인물을 모두 죽였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사도


사도세자는 안에 갇혀있다 8일 만에 죽었다시간이 흘러갈수록 영조가 풀어줄 거라는 희망은 사라져갔다아내 혜경궁 홍씨마저도 음식과 물을 가져왔을 뿐 남편을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모두에게서 버려진 비참한 심정으로 몸보다 먼저 마음이 죽었을지 모른다아니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듣고 호를 회복하고 시호를 사도세자로 하겠다고 명했다장례가 끝난 뒤에는 사도세자를 역모죄에 엮지 못하도록 엄금했다그리고 세손을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켜 보위를 잇도록 했다부자간의 정보다는 왕으로서 책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우리는 매정함 또는 슬픔과 아픔을 덤덤히 견뎌내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부자간의 문제로 사도세자가 죽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조와 사도세자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면그 어떤 음해가 끼어들 틈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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