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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30. 2020

우리 민족에게 있어 사슴이란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 3월 12일 자에 역모를 준비하다가 발각된 문양해를 국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문양해는 하동에 살던 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문양해는 신선이 사는 선원촌의 이현성 집에서 녹정과 웅정을 만났다고 진술한다. 사슴이 인간으로 변한 녹정은 청경노수 또는 백운거사라 불리며 나이가 5백 살로 얼굴이 길고 머리털이 희다고 표현했다. 곰이 인간으로 변한 웅정은 청오거사로 불리며 나이가 4백 살로 얼굴이 흐리고 머리털이 검다고 하였다. 

녹정은 자신이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최치원의 도움이 있었다고 밝힌다. 사슴이던 시절 최치원이 가야산에서 공부할 때, 글 읽는 소리가 좋아 책상 옆에 매일 앉아있었다고 한다. 최치원은 “네가 비록 사슴과 다른 종류의 짐승이지만, 도를 흠모할 줄 아니, 나이를 연장하는 방법을 얻도록 해야겠다.”라고 말한 뒤부터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말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치원이 살던 시절에서 정조가 살던 18세기는 대략 천년의 시간으로 녹정이 사람으로 변화된 지 5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 문양해를 만난 것이 아닐까 싶다.



녹정은 문양해에게 세상일을 예언해주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조선 말기 임자년과 계축년 사이에 나주에서 시작된 싸움으로 조선이 셋으로 갈라지는데, 유가·이가・구가 성을 가진 사람이 반정의 주역이 되어 백 년을 싸우다가 정씨가 통일한다고 하였다.
 
너무나 기이하여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지는 문양해의 증언은 정감록에 기반한 최초의 역모로 기록된다. 여기서 정감록의 예언을 전달해준 인물로 사슴이었던 녹정이 거론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근거해 생각해본다면 최치원에 의해 천년 가까이 살게 되면서 도를 깨우친 사슴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문양해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미래를 예언한 인물이 사슴이었을까?



우선 우리나라에는 사슴이 많이 살고 있어, 언제라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분포된 사슴은 말사슴·꽃사슴·고라니·노루, 네 종류가 있다. 태조 이성계는 1385년 우왕을 따라 해주로 사냥하러 갔을 때, 40마리의 사슴 등골에 화살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성계의 뛰어난 무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슴이 그만큼 흔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편찬된 <만기요람> 황해도 해주 편에서도 “옛적에 노루와 사슴이 백·천 마리가 떼 지어 다녔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아시아에서 사슴은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고 숭상되어 왔다. 중국에서 사슴은 천하를 의미하는 동시에 장수를 상징했다. <사기> 회음후열전에서 한신에게 모반을 제의했다는 죄목으로 고조에게 끌려온 괴통은 “진나라가 사슴을 잃어버리자 천하의 영웅들은 모두가 그 뒤를 쫓았습니다. 그래서 키가 크고 발이 빠른 자가 먼저 그 사슴을 잡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사슴은 천하를 의미했다. 중국 백과사전인 <이아>에서도 사슴은 천년이 되면 푸른 사슴이 되고, 오백 년이 더 지나면 흰 사슴이 되고, 또 오백 년이 지나면 검은 사슴이 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몽골 전설에도 하늘에 의해 태어난 푸른 늑대가 아름다운 암사슴 ‘고아 마랄’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들은 바트차강을 낳았고, 그의 11대 후손 가운데 보돈 챠르가 칭기즈칸을 낳았다고 한다. 여기서도 사슴은 땅과 대지를 의미하며 천하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도 사슴은 우애·장수・복록을 상징하는 특별한 동물이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슴은 이동할 때 머리를 높이 들어 뒤처지는 무리가 없는지 살피는 모습에서 선조들은 우애롭다고 여겼다. 그리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사슴을 십장생의 하나로 여겼다. 봄이면 뿔이 자라다가 번식기가 지나면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모습에서 불멸과 재생 그리고 장수를 연상했다. 자수와 그림뿐만 아니라 공예 장식에 사슴을 표현하여 장수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하였다.
 



사슴의 한자인 록(鹿)이 관료에게 지급하던 녹(祿)과 발음이 비슷하여 영화로운 삶인 복록을 의미했다. 여기에 사슴의 뿔이 왕관처럼 여겨져 왕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선조들은 두 마리의 사슴을 그려놓은 쌍록도와 백 마리를 상징하는 여러 마리의 사슴이 그려진 백록도를 그려 복을 받고자 하였다.

제주도에서는 사슴이 신선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전설에 의하면 한라산 백록담으로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옥황상제를 모시는 선녀들의 목욕이니만큼, 선녀가 내려오면 모든 짐승은 물론이고 한라산을 관리하는 산신조차도 자리를 비켜야 했다. 어느 날 산신은 목욕하는 선녀들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해졌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산신은 백록담으로 몰래 다가가 선녀들의 모습을 훔쳐보다 선녀들에게 걸리고 말았다. 선녀에게 모든 경위를 듣고 화가 난 옥황상제는 신선을 흰 사슴으로 살게 하는 벌을 내렸다.
 
또 다른 전설도 내려온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깊은 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하얀 사슴인 백록의 피를 구했다. 한라산으로 사냥을 나간 아들은 어렵게 백록을 발견했지만,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 낙심한 아들이 터덜터덜 백록이 있던 자리에 가보니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 있던 물을 떠다가 어머니에게 드리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처럼 사슴은 선조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동물이었다
 


궁궐에서도 사슴은 귀한 동물이었다. 경복궁 영제교에 천록을 표현한 조각상이 있다. 천록(天鹿)은 흉하고 사악한 것을 없애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한자만을 풀이해보면 하늘의 사슴이 된다. 생긴 것을 보면 사슴이라고 언뜻 연상되지 않지만, 머리에 뿔이 달려있고 꼬리가 짧은 것이 노루를 모델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한 마리는 혀를 내밀고 메롱 하는 모습이어서 예로부터 사슴이 친근한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사슴은 우리에게 더는 친근한 존재가 아니다. 비단 사슴만이 아니라, 조선 시대 인구가 증가하고 개간되는 땅이 늘어나면서 이 땅의 많은 동물이 사라져갔다. 호랑이와 표범 같은 육식동물도 사라졌지만,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도 점차 자취를 감추어갔다. 이제는 고라니를 제외한 사슴은 농장이나 동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동물이 되었다.
 
보노루라고도 불리는 고라니의 경우 세계적인 멸종 위기 수준에 등재된 희귀종으로 분류되어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0~60만 마리가 서식하면서 겨울철이 되면 부족한 먹이를 찾아 농가에 내려와 피해를 주고 있다. 도로에도 자주 출몰하여 2014년도에만 1,824건의 로드킬로 운전자들을 애먹이고 있다. 영화 부산행에서도 첫 등장에 좀비가 된 사슴이 등장할 정도로 과거와 지금의 사슴에 대한 이미지는 달라졌다. 반갑기보다는 유해 동물로 인식되어 반갑지 않다. 이제는 사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봐야 되지 않을까? 자연과 상생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 만큼이나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며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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