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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an 05. 2021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담배 이야기 인조 편



담배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다원주민들이 파이프에 담배를 물고 피운 것을 보고 타바코(tobacco)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1558년 스페인 왕 필립 2세가 담배를 유럽으로 가져온 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우리나라는 1618(광해군10)에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23(광해군15)에 동래 왜관이 담뱃불로 80칸을 다 태워버렸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재미있는 것은 담배는 이 시기에도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비난할 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인조실록을 보면 1628년 광주의 선비였던 이오는 오랑캐로 위험한 상황임에도 제신들이 우스갯소리나 하며 담배만 피울 뿐이라며 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1639년에는 장령 조중려는 사헌부 집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게으름을 피우며 공무를 소홀히 하다가 교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담배가 해롭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병자호란 때 끌려간 수십만의 조선인을 데려오는데 담배는 큰 역할을 하였다청군이 조선의 담배를 좋아하는 것을 이용하여 담배를 주고 가족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조선 담배의 질이 뛰어난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청나라 사람들은 많은 재물을 주고서라도 조선 담배를 사려고 했다그 결과 조선은 담배를 청나라에 팔아 양난으로 어려워진 경제를 회복하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2020년 KT&G가 100여 국에 5조 2,782억 원을 팔아 1조 4,575억 원의 이익을 얻은 것은 비단 지금의 일만은 아니었다.

반면 청은 조선에서 가져오는 담배로 재정 유출이 커지자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다담배를 오래 피우면 간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하는 등 유해무익한데끊으려고 해도 끊지 못하여 재물을 소모시킨다는 것이 명분이었다하지만 이미 담배를 피는 사람에게는 강제 금연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조선에서 청나라로 사행하는 사신단도 중국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나보다사절단으로 갔던 윤휘는 가마에 담배를 몰래 숨겨 중국으로 들어가다가 봉황성에서 발각되어 파직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의 경우는 담배는 기호식품이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작물이었다담배를 밀거래하다가 적발될 경우 1근 이상 거래하면 참수, 1근 미만이면 의주에 가두어 죄를 받았지만많은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갔다양난으로 어려워진 현실에서 가장 큰 이익을 담보하는 만큼 국경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담배 밀무역은 거부하기 힘든 일이었다.
  
담배는 비단 일반 백성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준 것만은 아니었다국가도 담배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1646년 이기조가 동지사로 북경에 도착하자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은밀히 불렀다용골대는 조선이 흉년으로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형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미곡을 모조리 감면해줄 테니 우장에서 통주로 미곡을 운반할 배를 보내라고 하였다이 모든 것이 구왕의 배려로 이루어진 것이니 조선의 담배와 좋은 매로 성의를 표시하라고 하였다만약 조선의 담배가 유명하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성의를 표시할 수 있었을까?
 



인조의 시대는 담배가 열 일을 했다담배의 폐해보다는 쌀을 살 수 있는 귀중한 자재였고국가의 재정을 보충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또한 병자호란으로 청에 끌려간 사람을 데려올 수 있는 해결방안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대 전란과 흉년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담배 한 대는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흡연을 권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담배로 보는 역사일 뿐입니다.

다음 주에는 흡연의 폐해를 주장하며 금지할 것을 주장하는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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