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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Feb 09. 2021

초등교육을 담당하다.


조선 시대 가장 기초적인 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은 국가에서 운영하지 않고, 개인 또는 문중이 운영하는 사립 기관이었다. 그렇기에 서당은 누구나 뜻만 있다면 설립할 수 있었고, 설립자와 훈장에 따라 교육과정과 교육의 질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그러나 양반부터 평민이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면서 신분제의 갈등을 완화 시켜 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서당은 크게 네 가지로 유형을 나뉜다. 첫 번째는 지역 유지나 양반이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만든 서당, 두 번째는 문중에서 가문의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연 서당. 세 번째는 훈장이 생계를 위해 세운 서당, 네 번째는 마을 전체가 자식들을 교육 시키기 위해 여는 경우다.
 
서당의 규모와 운영방식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훈장·접장·학도로 구성되었다. 훈장은 뛰어난 학식을 갖추거나 높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소일거리로 훈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훈장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가난한 유생이 많았다. 그렇다보니 사서오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훈장도 많았다. 접장은 나이와 지식이 많은 학도 중에서 뽑았는데, 지금의 조교처럼 훈장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훈장을 도와주는 만큼 학비를 내지 않고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광복 이후 서당의 교육방법이 무시되는 측면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서당의 교육방법을 현장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당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방식은 우선 책을 소리높여 읽었다. 그 후 훈장이 책의 내용을 질문하고 학도가 완벽한 이해를 한 대답을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 과정을 통해 학도는 자연스레 개별학습과 완전학습이 이루어졌다.
 
계절에 따라서 학습의 내용과 방법도 유동적으로 바뀌어다. 더운 여름에는 집중하기 힘든 암기보다는 시를 짓는 학습이 주로 이루어졌다. 겨울에는 추운 밖보다는 방에서 유교 경전을 외우고 암송하는 학습이 이루어졌다. 서당에서 천자문과 동문선습 같은 기초 학문이 끝난 학도들은 향교나 사학 또는 서원이나 성균관에 입학하여 고등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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