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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Feb 23. 2021

경제의 중심에 객주가 있다.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위탁판매와 자금 대여 그리고 숙식 제공 등 상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객주가 발달하였다. 이들은 중국 상인을 상대하며 크게 성장했던 의주의 만상객주, 보부상들의 숙박을 제공하고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던 보상객주, 일반 행인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보행객주, 돈을 빌려주는 등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환전객주, 일상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무시객주 등으로 나누어졌다.


객주는 장시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판매하는 보부상이 노름을 저지르거나 상의 없이 다른 객주와 거래를 하는 등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반면 보부상에게 숙식과 돈을 빌려줄 뿐만 아니라, 병이 들어 거동이 불편하면 약을 써서 치료해주는 등 그들을 따뜻이 보살펴주는 친밀한 관계였다. 그만큼 객주는 보부상은 신용을 바탕으로 맺어졌고, 자손 대대로 이어지며 조선 후기의 경제를 담당했다.


보부상은 개항 이후 대외 교역이 늘어나면서 그 역할과 비중이 커졌다. 개항장에서 외국 상인과의 거래를 전담하면서 큰 상업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외국 상인들은 개항장의 객주로부터 필요한 물건을 대량 구매했고, 국내 상인이나 생산자들은 객주를 통해 물건을 거래하였다. 이때 직거래 시 물건의 주인에게 1%, 외상거래 상품은 2%를 수수료로 거두었다. 중간 거래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객주 중에는 상업회사로 발전하여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매매주선권을 보장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1882년(고종19년)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을 기점으로 외국 상인들이 직접 국내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판매하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정부는 인천과 부산 등의 객주 25개소에 상품매매독점 주선권을 주며 보호하려 했으나, 일본 상인의 반발로 폐지되면서 객주는 쇠퇴하였다. 결국 국내 산업이 쇠퇴하고 정부의 보호가 없는 상황에서 객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사라졌다. 그중 일부는 1960년대까지 운영되며 명맥을 유지했으나, 자본주의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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