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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un 22. 2021

거짓 소문을 퍼트린 능귀를 참형하다.-하



그렇다면 태조 이성계도 조선을 건국한 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를 신봉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기존 지배층의 반발을 반드시 억눌러야 했을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많은 이들이 이성계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지만, 상황이 바뀐다면 언제든 칼을 들이밀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사병제가 혁파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지방에는 호장 등 지역을 장악한 사람들이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민심을 자극하여 고려 부흥을 외친다면 조선에 대한 반기가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종내에는 조선이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특히 능귀와 희진이 살던 지역은 신진 관료들에게 수조권이 부여되는 경기도였다. 당연히 기득권을 빼앗긴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았고, 자연스레 그들의 불만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국가에 반항할 용기도 능력도 없었다. 단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변 사람들에게 조선을 욕하며 자신들의 불만을 터트리는 일뿐이었다.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하는 주 대상은 자신들이 하대하며 막대할 수 있는 힘없는 백성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동조하고, 같이 욕해주면 자신들이 무엇이라도 되는 듯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따라줄 때마다 큰 쾌락을 느꼈다.

능귀와 희진은 백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흰 개·말·닭·염소를 국가가 키우지 못 하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만들어냈다. 백성들이 거짓말에 동조하며 불안에 떠는 모습에서 조선에 복수했다는 성취감과 함께 권력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거짓에 속아 넘어가서 불안에 떨며 국가를 힐책하는 백성을 마음껏 비웃었을 것이다.


“아니 흰 색깔의 짐승을 키우지 못 하게 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야? 나라님이 제정신인 거야? 우리 집 백구, 흰 닭은 그럼 지금 당장 잡아 죽이면,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하냐고.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아무리 힘들었어도 고려 때가 좋았어.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았잖아.”
 
능귀와 희진이 퍼뜨린 거짓 소문으로 백성들이 고려에 대한 향수에 빠져 조선에 불만을 터트릴수록 태조 이성계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직 이 땅에는 조선보다 고려를 사랑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음양오행으로 보았을 때 흰색은 조선에 대한 불만을 증폭할 가능성이 더욱 컸다. 흰색은 음양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하고, 이성계의 성은 목(木)에 해당한다. 나무를 죽이는 것이 금속이기에 조선은 금씨를 모두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금씨가 가장 많은 성씨이기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김씨로 바꾸어 읽도록 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금씨는 거문고 금(琴)을 쓰는 봉화 금씨다.)
 
능귀와 희진이 음양오행 사상에서 흰색이 금(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태조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매우 섬뜩했을 것이다. 거대한 일도 평소 가볍게 여기는 작은 일로 인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만큼, 태조 이성계는 능귀와 희진의 거짓 소문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중차대한 일로 간주하고, 다시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않도록 본보기로 삼고자 했을 수 있다.
 


지금도 거짓 소문으로 개인이 생명을 끊거나, 나라의 정책이 변경되기도 한다. 요즘은 거짓 소문 또는 유언비어를 가짜뉴스(Fake News)라고 부른다. 많은 언론사나 개인 방송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추측성 기사를 쓰면서 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추측성 기사를 자극적인 제목에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마치 진짜인 듯 글이나 방송을 내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광고로 돈을 벌기 위함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가짜뉴스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잘못으로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이 피해를 보거나 수천, 수십억의 재산 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예로 대구 신천지 코로나 확진자가 청주의료원과 충북대학병원을 다녀가 응급실 일부가 폐쇄됐다는 20대 직장인의 가짜뉴스로 해당 병원들이 문의 전화로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경찰은 범인을 잡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정부는 이를 바로잡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면서 이후 정책을 펴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지금과 달리 인권이 보편화되지 않던 조선 시대라는 점을 감안해도 능귀와 희진의 참형이 과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가벼운 범죄를 방치했을 때,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고, 건국 초의 불안했던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능귀와 희진의 참형이 정당했느냐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조선 시대에도 여론을 매우 중시하여 가짜뉴스를 경계했음은 모두 인정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능귀와 희진의 이야기는 “그 둘이 재수가 없었네.”일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가 될까.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많은 시민은 가짜뉴스를 유포한 사람에게 지금보다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처벌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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