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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Nov 08. 2022

숙종의 왕후가 묻혀있는 명릉

인현왕후에게 속죄하는 마음이 담긴 명릉

숙종의 여인은 첫 번째 부인 인경왕후, 두 번째 인현왕후, 세 번째 인원왕후가 있으며 후궁으로 장희빈과 숙빈 최씨가 있다. 숙종은 현재 인현왕후와 함께 쌍릉에 나란히 묻혀있으며, 그 왼쪽에 거리를 두고 마지막 왕후인 인원왕후(단릉)가 누워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인원왕후의 능을 우리는 명릉이라고 부른다.      


숙종은 인현왕후(1667~1701)의 능을 조성할 때 오른쪽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라고 신하들에게 명을 내리며 일찌감치 자신의 자리를 정해두었다. 비련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인현왕후는 숙종보다 7살 어린 나이인 14살에 인경왕후의 계비로 궁궐에 들어왔다. 그러나 숙종이 한쪽 당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편당적 탕평책의 희생양으로 왕후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복위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 결과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정치적 희생양으로 내몰아야 했던 미안함으로 그녀 옆에 누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승에서 인현왕후에게 많은 잘못을 저지른 지아비로서 못다 한 속죄를 저승세계에서 갚으려는 숙종의 마음이 현재의 묫자리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영조의 친어머니와 같았던 인원왕후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 옆으로는 인원왕후(1687~1757)가 누워 있다. 인원왕후는 숙종보다 26살이나 어린 왕후로 인현왕후가 죽은 후 맞이한 세 번째 왕후다. 인원왕후는 아버지와 같은 연배의 숙종을 남편으로 모셔야 했다. 나이 많은 남편과 사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자의든 타의든 죽음으로 몰고 간 숙종을 남편으로 두고 많이 불안했을 것이다. 자신도 언제 쫓겨나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근심과 걱정 때문인지 젊은 시절 천연두와 홍역을 앓을 정도로 몸이 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원왕후는 곧 건강을 되찾고 71세까지 장수를 누리며 오랫동안 궁궐의 주인으로 있으면서, 경종과 영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당파 간의 많은 갈등을 왕실 어른으로서 잘 해결해주었다. 특히 인원왕후는 영조가 왕위를 이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인원왕후는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될 수 있도록 양자로 입양하고, 소론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수많은 위기에서 보호해주었다. 그렇기에 영조에게 있어 인원왕후는 친어머니 이상으로 중요한 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인원왕후는 명릉에서 400여 보 떨어진 곳에 묻히기를 바랐으나, 영조는 홍릉(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 능)을 이미 조성하고 있어, 국고를 줄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숙종의 옆자리인 현재 자리에 능을 조성했다. 이는 인원왕후가 숙종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영조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있게 한 인경왕후

명릉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숙종의 첫 번째 왕후였던 인경왕후(1661~1680)의 능인 익릉이 나온다. 인경왕후는 11살의 나이로 세자빈이 되었다가 14살에 왕비로 책봉되어 두 공주를 낳고 20살에 천연두로 죽었다. 만약 인경왕후가 아들을 낳았거나 오랫동안 살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여염집의 평범한 아낙네로 살아갔을 것이다.      


익릉은 서오릉에서 유일하게 정자각 좌우로 행랑을 잇대어 만든 익랑을 설치해 규모를 크게 확장해 놓은 구조다. 익릉은 다른 능과는 달리 앞의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아침에 따사로운 햇볕이 익릉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쌀쌀한 이른 아침에 익릉을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의 편안함으로 자리를 뜨기가 싫어진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햇볕에 녹이면서 생각해보니 인경왕후는 일찌감치 세상살이의 더러운 꼴 안 보고 햇볕 잘 드는 이곳에서 편안히 잠든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오래 살았으면 인현왕후 대신 인경왕후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고생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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