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호 Apr 18. 2023

계집종이 아이를 낳으면 백일 동안 휴가를 주다.

형조에서 전지하기를,

"경외공처(전국 관아)의 비자(여자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백일 동안 주게 하고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하였다.- 세종실록 32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매체는 엄격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내용을 전개합니다이들의 공통점은 양반 계층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노비와 같은 천민들은 엄청난 무시를 당합니다심지어 생명의 안전까지도 보장받지 못합니다사실 이런 내용이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조선시대는 분명 엄격한 신분제사회였고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했습니다특히 사회적 약자였던 천민들은 온갖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이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우리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세종은 천민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보살펴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대표적인 것인 세종실록 32권에 나오는 출산한 관노비에게 백일 휴가를 주는 법을 만든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여성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1940~6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은 결혼을 하는 순간 퇴직을 강요당했습니다이 위기를 극복해도 아기를 낳으면 또다시 퇴직을 강요받았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출산휴가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인 조선 세종 때에 재산으로 간주되어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되는 여자 노비에게 출산 휴가를 준 놀라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여기에는 조선이 인구를 늘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만다시 생각해보면 양민이 아닌 노비에게 출산휴가를 주는 것에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양민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며 군인으로 나라를 외침으로부터 지켜내는데 소중한 자원이기에 인구증가로 설명이 됩니다하지만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군역을 지지 않는 노비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100일의 출산휴가를 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430년에는 여기서 한층 더 발전한 법이 나옵니다. “"옛적에 관가의 노비에 대하여 아이를 낳을 때에는 반드시 출산하고 나서 7일 이후에 복무하게 하였다이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복무하면 어린 아이가 해롭게 될까봐 염려한 것이다일찍 백일 간의 휴가를 더 주게 하였다그러나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였다가 몸이 지치면 곧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만일 산기에 임하여 1개월 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면 어떻겠는가가령 그가 속인다 할지라도 1개월까지야 넘을 수 있겠는가그러니 상정소(詳定所)에 명하여 이에 대한 법을 제정하게 하라." 임산부의 건강을 염려하여 출산 한달 전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그런데 이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산모의 남편도 한달동안 복무를 면제하여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도록 한 것입니다아마도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준 세계 최초의 출산장려정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그렇다면 세종의 출산정책은 비단 인구증가만이 목적이 아닌 천민도 백성으로 여기며 아껴주려는 애민 정신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세종의 애민 정신은 부모가 버렸거나 없는 고아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1430년 호조에서 전라도 고창현의 8~9살 된 여자아이가 미친 병을 없었는데 부모와 친인척도 없으니 쌀을 하루에 한 되씩 주자고 보고를 합니다세종은 이를 허락하면서 고창현 수령이 아이가 춥고 굶주리지 않도록 잘 보살피라고 한번 더 당부를 합니다왕이 사는 한양도 아닌 멀리 떨어진 전라도의 고창의 한 여자 아이까지 국가가 돌봐주라는 왕도 대단하지만이것을 아이의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관리들도 대단하지 않나요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능력도 있겠지만관리들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종의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 1436년 세종실록에 나옵니다흉년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노인과 아이를 버리고 돌보지 않자세종은 그 숫자가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숨김없이 보고하라고 명을 내립니다그리고는 버려진 이들은 한 데 모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합니다세종이 이토록 세심하게 백성을 돌봐서일까요충청도 관찰사였던 정분은 부모를 잃은 아이가 4명이고이사한 사람이 1,067명이라고 세세하게 보고를 합니다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버려진 아이가 있는 고을 수령에게 더욱 세심하게 돌봐줄 것을 명령하는 동시에 파악한 이사한 사람을 기록하였다가 내년 봄에 양식과 종자를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지금 발생한 문제를 막는 임시방편이어서세종은 장기적으로 고아를 위한 정책을 펼칩니다아이를 버리는 사람을 목격하고 관아에 고발하는 사람에게는 포상을 지급하고고아를 입양하도록 장려했습니다또한 태종 때부터 고아를 제생원에 모아 돌보던 제도를 유지하며 확대함으로써 국가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세종 이후에는 이런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합니다아무리 잘 만들어진 법과 제도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세종의 애민정신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제도는 후대 왕들과 관료들이 이어가려는 의지 부족과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능력이 없는 상황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합니다그로 인해 많은 임산부와 고아 등 사회적 약자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농업발전 1등공신 조백현 박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