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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Aug 23. 2023

서울올림픽 개최

‘화합과 진전’이라는 기치 아래 냉전체제의 종식을 상징하는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가 1988년 개최되었다. 사실 서울올림픽은 국민체육심의위원회에서 유치를 결정하고 국가의 승인을 받는 1979년에 시작되었다. 박정희의 죽음과 12·12사태로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올림픽 유치는 계속 추진되어, 서울특별시가 1980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유치 희망서를 제출했다. 기존까지 올림픽을 유치한 국가 대부분이 선진국이던 상황에서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의 도전은 무모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모두가 발 벗고 유치에 나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에 국가올림픽위원회·국제올림픽위원회·국제스포츠연맹 조사단이 방한하여 서울이 올림픽을 개최할 여건이 되는지 확인했고, 대한민국은 인도와 노르웨이 등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초청하여 협조를 부탁했다. 또한 정주영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한민국 대표 추진위원회를 독일 바덴바덴에 파견하여 올림픽 유치에 힘을 기울였다. 당시 우리의 경쟁 대상이던 일본 나고야는 승리를 자신했지만, 막상 투표 결과는 52 대 27로 서울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자, 정부는 7년 동안 2조 3,826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투입하여 경기장 건설과 한강종합개발·김포공항 등을 확충하는 공사를 펼쳤다. 그로 인해 화장실 증축과 가로 정비 등 서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냉전으로 냉랭했던 국제상황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올림픽이 운영되도록 군경 11만 2,000여 명이 경기장과 선수촌 등 300여 개의 관련 시설을 보호하였다. 더불어 600여 개의 국제 테러 조직과 국제 테러 분자 6,000명의 정보를 확보하는 등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이외에도 11만 6,000명의 자원봉사자 응모자를 언어·지식·품행 3가지 기준으로 3만 명을 선발하여, 1년간 교육한 뒤 투입하여 원활한 경기 운영을 이끌었다. 


1988년 9월 16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손에 손잡고’ 노래를 시작으로 진행된 전야제가 세계 모든 국가에 방송되며,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같은 시간 그리스 헤라 신전에서 출발한 성화는 22일간 61개 시를 거쳐, 서울시청 광장에 도착하였다. 다음 날 10시 참가국 수를 나타내는 160개의 윈드서핑과 24회를 상징하는 24척의 선도 선단이 이끄는 458척의 배가 한강을 내달렸고, 12시 노태우 대통령이 올림픽 개회를 알렸다. 곧이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남문으로 나온 손기정에게 송화를 건네받은 임춘애가 성화대에 불길을 붙였다.

16일간 23개 정식 종목 외 3개 시범 종목과 2개 전시 종목이 펼쳐졌는데, 이때 태권도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소련으로 55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뒤로 동독이 37개, 미국이 36개를 획득하며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이때 대한민국 금메달 11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획득하여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종합 4위라는 성적을 거두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며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레슬링, 유도, 양궁, 탁구, 복싱, 핸드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그중에서 양궁의 김수녕은 개인전과 단체전 우승으로 한국 올림픽 참가 사상 최초의 2관왕이 되었다. 


서울올림픽은 세계 기록도 많이 나온 대회였다. 33개의 세계신기록과 5개의 세계타이기록, 227개의 올림픽신기록과 42개의 올림픽타이기록이 나왔다. 직전 대회인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12개의 세계신기록과 81개의 올림픽신기록이 나왔던 것과 달리 많은 기록이 나온 것은 참가국의 숫자에 있었다. 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국을 비롯한 67개국이 불참했고,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보복의 의사를 밝히며 불참했던 것과는 달리 서울올림픽에는 이념에 뛰어넘어 160개국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서울올림픽은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평화의 올림픽으로 기억되었다. 또한 성공적인 올림픽 운영으로 대한민국의 이름과 발전을 알리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많은 국가가 대한민국을 알게 되거나, 전쟁과 가난으로 기억하던 대한민국의 인식을 바꾸었다. 그로 인해 헝가리·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교역이 이루어지고 수교를 맺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서울올림픽은 10월 2일 아리랑과 강강술래의 음악 아래 모두가 춤을 추면서 다음 올림픽 장소인 바르셀로나의 성공을 기원하는 폐회식을 끝으로 16일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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