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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14. 2023

경북 지산동 고분군






지산동 고분군은 4~6세기 축조된 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봉분 직경이 20m가 넘는 대형분과 10~15m 가량 되는 중형분이 70여개나 있습니다.

직접 고분군을 보면 대가야가 얼마나 강한 나라였는지 알게 해줄 만큼 웅장함을 줍니다. 

또한 가야가 역사에서 얼마나 과소평가되고 있음도 느끼게 합니다. 







73호분은 최초의 왕릉으로 5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순장자가 11명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74호분은 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4명이 순장된 것으로 확인되고요.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순장의 규모가 작아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분에서 가야의 갑옷과 토기, 유리목걸이 등이 발굴되는데, 이는 가야의 철기문화가 매우 발달했으며 한반도 밖 주변 여러 나라와 교류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산동 44호분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고분으로 1977년 조사되면서 문헌에만 기록되어 있던 우리나라 고대 숝장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특히 이 고분은 37명 이상이 순장되었으며, 야고아조개국자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오키나와는 조선 시대는 유구국으로 불리던 곳으로 일본과는 다른 나라였습니다.








지산동 고분 모두를 발굴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과거를 알기 위해 고분을 발굴하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개의 고분 발굴을 통해 가야연맹이 김해의 금관가야에서 고령의 대가야로 중심이 넘어왔으며, 백제와 신라의 압력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확인하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야의 역사가 더 많이 연구되어, 삼국시대가 아닌 열국시대로 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산동 고분군을 가보면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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