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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Mar 26. 2024

가족 불화가 나라를 망쳤다.

진성여왕이 신라를 통치할 때 경주 인근 외 지역은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자신만의 세력을 형성하며 반신라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양길, 기훤, 아자개 같이 자신의 군대로 인근 지역을 장악하고 스스로를 성주 또는 장군으로 불렀던 이들을 호족이라 한다. 궁예와 견훤같이 힘이 강한 호족은 약한 호족을 흡수·통합하면서 국가를 세웠다.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와 견훤이 세운 후백제가 등장하면서 후삼국시대는 시작된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어린 시절부터 강한 완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무예를 자랑했다. 견훤이 강한 힘을 갖게 된 이유와 관련된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견훤의 아버지였던 아자개가 농부로 살아가던 시절 젖도 못 뗀 견훤을 나무 밑에 두고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다가 견훤이 잘 있는지 살펴보니 아주 커다란 호랑이가 견훤 옆에 누워 있었다. 순간 아자개는 아무것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그런데 견훤은 호랑이가 무섭지도 않은지 호랑이의 젖을 잡고 열심히 빨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호랑이는 매일 견훤을 찾아와 젖을 물렸고, 견훤은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용력과 용맹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성인이 된 견훤은 농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넘어 뛰어난 무력과 군사적 재능으로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우며 비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서남해 연안을 방비하기 위해 떠난 견훤은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호남 지역의 여러 호족을 복속시켜 나갔다. 경남 진주에서 시작된 진출은 무진주, 광주를 넘어 빠른 속도로 전라북도까지 차지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900년 완산주(전주)에서 후백제 건국을 선포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출발한 견훤의 후백제는 서해를 통해 중국의 여러 나라와 교류를 활발히 한 결과 선진 문물 수용이 빨랐다. 특히 후백제는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인 호남평야를 차지하면서 후고구려와 신라보다 풍요로운 경제력을 갖추었다. 풍요로운 나라 살림은 자연스레 군사력 강화로도 이어져 후고구려나 신라를 압도하였다.


아자개의 불화가 있다. 아자개는 농부 출신이었지만, 후삼국이 서로 맞닿아 있는 상주의 호족으로 성장하여 인근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후고구려와 후백제 그리고 신라에게 상주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어서 모두 아자개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일반적으로 견훤이 아버지인 아자개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둘은 부자 관계를 넘어 경쟁국의 지도자였다.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면 화해하기가 더 어려운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아자개와 견훤 부자의 갈등은 골이 깊어졌다. 거기에다 아자개는 슬하에 4명의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자개와 견훤의 동생들은 견훤이 경주에 들어가 왕비를 겁탈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상주를 견훤이 차지하면 자신들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떠나서 목숨도 보장받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인정하겠다며 다가오는 고려 왕건에게 상주를 갖다 바쳤다. 아자개가 고려에 귀순하는 순간 왕건이 자리의 상석을 양보할 정도였으니 상주가 가지는 지리적 위치와 함께 견훤이 받았을 타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만약 견훤이 자신의 아버지 아자개와 동생들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을 갖고 다가갔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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