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람의 신체 일부를 으뜸으로 쳤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병으로 앓아누운 부모를 위해 자녀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약으로 드려 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많다.
단종 1년(1452년), 경성에 사는 박자창의 어머니가 몹쓸 병에 걸려 기절하는 일이 발생했다. 박자창은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 백방으로 치료 방법을 수소문하던 중 사람의 뼈를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뼈를 구하기도 어렵고, 인간의 도리상 타인을 해칠 수도 없던 박자창은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장지를 잘랐다. 박자창이 잘린 손가락을 약에 섞은 뒤 어머니에게 먹이자,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 이에 조선 정부는 손가락을 잘라 부모의 병을 낫게 한 효자 박자창에게 정문(旌門)9을 세워주며 여러 포상과 함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종 7년(1476년)에도 무안현에 사는 자비라는 여인이 남편 박기가 병에 걸리자, 스스로 왼쪽 손가락을 잘라 음지에 말린 후 가루를 내어 국과 술에 타 남편에게 먹였다. 이후 남편이 완쾌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 12년(1875년) 기사에도 참판 박종길이 아버지의 병이 심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아픈 사람에게 사람의 피와 신체 일부를 먹여 병을 치료하려는 노력은 조선시대 내내 이루어졌다. 특히 효심을 강조하기 위해 신체 일부를 부모에게 드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자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타인의 신체 일부를 약으로 쓰거나, 죽은 시신 일부를 약으로 드리며 효를 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사람의 장기를 불법 매매하는 범죄자가 있었다.
선조 때 흉악한 무리가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홀로 길을 가는 성인을 납치하여 배를 가르고 쓸개를 꺼내는 범죄가 연신 일어났다. 사람의 쓸개가 비싼 가격에 거래되자, 산골짜기에 있는 나무마다 쓸개가 없는 시신이 묶여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신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는지 나무꾼들이 산으로 나무하러 가지 못할 정도였다. 조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범인을 신고하거나 잡는 사람에게 포상을 약속하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고 살인하는 범인을 체포하고자 노력했다.
사자성어에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다. 인과응보란 자신이 행동한 대로 대가를 받는다는 말이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그릇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마땅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인과응보, 너무도 당연한 네 글자가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사회라면 분명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최소한 나 자신과 후손을 위해서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인과응보라는 당연한 순리가 지켜지고 있는 사회인지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