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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 묻고 답하기

by 유정호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이잖아요. 장희빈이 사약을 먹고 죽임을 당한 만큼 왕으로서 국정을 이끌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경종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 장희빈이 미신을 이용하여 인현왕후와 숙빈 최씨를 죽이려고 하는 등 온갖 나쁜 짓을 일삼다가 죽는 것을 봤죠. 성장하는 과정에서 요부 장희빈의 아들이 과연 왕의 자격이 있느냐는 말이 늘 꼬리처럼 따라다녔을 거예요. 또한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으로 많은 신하를 죽였던 역사가 있는 만큼, 장희빈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던 노론들은 경종의 즉위를 매우 두려워했죠. 훗날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말이에요. 그래서 연신 경종의 흠을 잡는 데 혈안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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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고개가 좌우로 흔들며 아니라고 답하지 않을까요. 자연스럽게 세자 시절 경종은 모든 일에 소심해지고, 우울증과 같은 증세를 보였다고 해요. 숙종도 많은 고민이 되었을 겁니다. 과연 경종을 다음 왕으로 즉위시키는 것이 옳은지 말이죠. 하지만 소론과 남인 계열의 관료들이 경종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세자를 바꾸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여 세자의 지위를 박탈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은 경종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며, 국왕으로서 주도권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국왕으로 즉위해서 신하들에게 끌렸다는 말인가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나요?

경종이 즉위한 지 1년밖에 안 되었을 때, 노론은 경종의 병을 내세워 이복동생이던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자고 주장해요. 특히 노론의 조성복은 경종이 신하를 맞이하거나 업무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연잉군을 옆에 두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칫 역모로 보일 수 있는 발언이지만, 경종은 덤덤하게 자신에게 병이 있음을 시인하며 연잉군에게 국정을 운영하라고 지시합니다. 즉 대리청정을 허락한 거죠.


여기서 연잉군이 누구인지 궁금한데요.

연잉군은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로 훗날 영조입니다. 우선 숙종과 숙빈 최씨를 이야기해 볼까요. 인현왕후를 폐위시킨 지 5~6년이 지난 어느 날 숙종은 궁궐을 거닐다가 우연히 늦은 밤 궁녀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게 됩니다. 잠을 안 자고 밤늦은 시간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던 숙종은 궁녀의 방을 엽니다. 그곳에는 한 젊은 여성이 인현왕후의 건강하게 무탈히 지내도록 기도를 올리고 있었죠. 이것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쫓아낸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날따라 숙종은 여인의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인현왕후가 잘못이 없는데도 쫓겨나 힘든 생활을 하는 것이 내심 미안한 숙종이었거든요. 그래서 숙종은 인현왕후를 걱정하는 젊은 여인이 아름다워 보여 품에 안았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 여인이 숙빈 최씨로 궁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무수리로 아주 낮은 신분이었어요. 여인은 얼마 뒤 아들을 낳았지만, 곧 죽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낳은 아들이 바로 연잉군 영조입니다.


숙빈 최씨는 장희빈이 사약을 먹고 죽는 데 크게 일조한 인물이기도 해요. 장희빈의 오빠인 장희재가 숙빈 최씨를 죽이려고 장모로 하여금 독이 든 음식을 보낸 일이 있어요. 숙종은 이 사실을 알고 숙빈 최씨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죠. 이 일로 숙빈 최씨가 사실을 시인하면서 장희빈이 죽고 남인이 몰락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경종은 연잉군을 굉장히 미워했겠는데요.

아니요. 경종은 연잉군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어찌 보면 동병상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낮은 신분의 어머니를 같이 두고 있으며, 붕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야사에서는 경종이 동생 연잉군 영조를 위해 일부러 아내를 멀리하며 아들을 낳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리청정을 허락한 것도 있고요.


그렇지만 경종을 지지하던 소론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연잉군을 세제로 삼고 대리청정을 맡긴다는 것은 소론이 정치권력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론은 왕이라 할지라도 대리청정을 사사롭게 결정할 수 없다며 뜻을 접어달라고 연일 읍소했죠. 경종도 이들의 주장에 힘입어 대리청정을 철회합니다. 이에 노론도 강하게 반발하자, 소론은 대리청정을 요구하던 이이명, 이건명, 김창집, 조태채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리고 얼마 뒤 이들은 유배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듬해 목호룡이 이들의 아들과 손자들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고변해요. 이를 계기로 노론의 많은 인물이 내쫓기는 신임사화가 일어납니다.


이런 일들 사이에서도 연잉군 영조는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나요.

경종은 평소에도 연잉군 영조가 어떤 불이익도 당하지 않도록 굉장히 아끼고 보살폈어요. 경종이 자식을 낳지 않은 이유로 연잉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 외에도 경종에게 자식이 없는 이유로 여러 추측이 있어요. 저번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장희빈이 죽기 직전 경종의 사타구니를 너무 꽉 쥐어 성불구자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고요. 경종의 첫 번째 부인인 단의왕후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잠자리를 멀리하다 보니까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무엇이 사실이든지 간에 37살에 죽은 경종에게 자식이 없었다는 것은 훗날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파장이 일어나는데요?

경종의 죽음에 연잉군 영조가 깊이 관여되었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돈 거죠. 경종이 갑자기 고열과 설사로 기절을 여러 번 하는 등 아파져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드러눕게 됩니다. 병세를 걱정한 영조가 게장과 감을 진상하자, 경종은 이를 먹고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 듯 보였어요.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병의 증세가 심해져서 죽게 됩니다. 이때 경종이 소화가 잘되지 않는 생감과 완전히 익힌 음식이 아닌 게장을 먹은 것이 문제가 되어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퍼집니다. 영조가 일부러 경종의 병세를 악화시키고자 벌인 짓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것은 영조의 재위 기간 늘 꼬리뼈처럼 따라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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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경종은 재위 기간 어떤 일을 했나요? 특별한 일들이 기억나지 않아서요.

경종은 3살에 세자로 책봉되고 나서 30년 동안 국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아요. 실제로 눈병이 난 숙종을 대신하여 3년 가까이 국정을 이끄는 대리청정 기간에도 별일 없이 국정을 잘 이끌었죠. 경종은 연일 자신을 압박해 오는 신료들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던 임금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 큰 기근이 들자, 충청도와 경상도의 쌀 7천 석을 옮겨 굶주린 백성에게 나눠주고, 말의 공납을 중지시켜 조세의 부담을 덜어줍니다. 양민의 딸을 궁인으로 선발하지 않도록 하고, 살아있는 노루의 공납을 죽은 것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등 백성에게 불편함을 주는 일을 막고자 했죠.


또한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여 사용하는 것을 권장했던 임금이기도 합니다. 밤낮과 날씨에 상관없이 시각을 알려주는 서양 시계가 청나라에서 보내주자, 관상감으로 하여금 제작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또한 불을 끄는 소화기인 수총을 청나라에서 수입하여 제작하도록 한 뒤 화재에 대비토록 했죠. 어찌 보면 영조와 정조의 뛰어난 업적과 장희빈의 아들, 그리고 짧은 재위 기간에 감춰져 우리는 경종의 진가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경종은 훌륭한 임금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지만, 좌우의 신료들이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이런 점도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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