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어려움

by 유정호

조랭이떡은 눈사람처럼 생긴 귀여운 모습이지만, 이 떡의 유래에는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개성에 살던 사람들은 큰 피해를 봤어요. 그동안 고려의 수도에 살면서 누렸던 많은 특권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거든요. 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한마음 한뜻으로 이성계의 목을 조르는 형상을 가진 조랭이떡을 만들며 복수를 다짐했어요. 이성계만 죽으면 고려 왕조가 부활할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말입니다.


이처럼 관료들과 백성들이 조선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고 반발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기득권이 누리던 사람들의 반발이에요. 특히 경제와 관련해서요. 이성계는 위화도회군 이후 권문세족이 불법적으로 백성을 수탈하는 모습을 바로 잡기 위해 과전법이라 불리는 토지개혁을 추진했어요. 이를 위해 이성계는 불법적으로 약탈당했거나 누락된 토지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이들이 관행이라 부르며 백성을 수탈하던 악습을 모조리 금지했어요. 이로 인해 고려 말 불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던 권문세족 등 기득권 세력은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었어요. 이들은 자신들이 손해 보는 만큼 이성계와 그가 세운 조선을 미워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커요. 문제가 있어도 한 번에 바꾸기보다는 조금씩 잘못을 바로잡아가기를 바라죠. 그런데 조선은 천년 가까이 민중의 삶에 영향을 미치던 불교를 탄압하고, 백성에게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성리학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강요했어요. 갑자기 불교를 탄압하고 성리학을 숭상하라며 부처님에게 복을 못 빌게 하고, 남녀 간의 자유로운 연애도 하지 못하게 막는 조선을 백성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그 결과 구관이 명관이라고 아무리 힘들게 했어도 고려가 조선보다 낫다며 그리움을 표시하는 백성도 많았습니다.


민심이 고려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성계는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실제로 조선에 대한 거부감이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역모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고요. 결국 이성계는 고려의 부흥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제공하는 고려 왕족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고려 왕족을 거제도와 강화도 등 섬으로 유배 보내는 과정에서 물에 빠뜨려 죽였어요. 당연히 반정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과 그의 두 아들도 죽여요. 이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이성계는 이 세상에서 왕씨 성을 아예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해요.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으면 고려를 세울 수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왕씨 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모두 죽일 수는 없어서 왕씨 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만 했어요. 그 결과 왕 씨를 가진 수많은 사람이 성을 바꿨어요. 왕(王)에 간단하게 점을 찍거나 덧붙이는 방식으로 옥(玉), 주(主), 전(全) 등으로 말이에요. 더러는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박씨나 이씨로 바꾸기도 했어요. 이런 행동은 자신들이 왕씨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한 나름의 강구책이었습니다.


왕씨를 사용해도 처벌받지 않게 된 것은 태종 이후부터예요. 국가의 토대가 단단해졌다고 자신한 태종은 “만약 이씨가 도(道)가 있다면, 비록 백 명의 왕씨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능히 우환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왕씨가 아니라 할지라도 천명을 받아 대대로 흥하는 자가 없겠느냐.”라며 왕 씨의 후예를 발견해도 처벌하지 말라고 명령해요. 여기에는 왕씨를 사용하는 사람 대부분이 사라진 사회적 배경도 한몫했어요.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왕씨를 사용하는 사람은 2015년 통계에 따르면 25,565명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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