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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tro May 24. 2022

남이사 정신

- '미지근하게 해 주세요.' 

- (무슨 말이냐는 표정)

- '얼음 조금 넣어주세요.'

카페에서 이 말을 해야 하는 추운 계절이, 이제 끝나간다. 


  나는 일명 고양이 혀를 가지고 있다.

  중 3 때 물상 선생님이 해당 연령대 아이들의 건강기초조사? 비슷한 걸 하시면서 알려주신 건데 내 혀의 돌기가 노출된 표면적이(돌기 개수인지 노출된 개체의 표면적 자체가 커서인지는 모르나) 일반 사람보다 약 1.5배 넓어서 맛을 예민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편했던 것은 혀의 통각ㆍ압각에 의해서 얻어지는 매운맛과 뜨거움이었다. 매운맛은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급격히 적응된 것 같은데 뜨거움은 학습이 되지 않는다. 남들보다 이 두 가지를 심하게 느끼는 편이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모든 사람들이 혀를 데면서 차를 마시고 탕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온 가족이 둘러앉은 명절 밥상에서는 빈 그릇에 물을 떠서, 학교 급식실에서는 국에 김치를 씻어먹었던 나는, 특이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어렸을 때는 김치를 씻어먹으면 재료가 아깝다며 한 마디씩 하시는 어른도 계셨다. 뜨거운 코코아나 율무차, 김치 그대로를 먹을 수 있는 또래의 아이들이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난 이게 더 맛있는데 뭐' 라며 스스로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런 나를 그대로 존중해줬던 가족 덕분인 것 같다.


  정말 사소한 걸로 보일 수 있지만, 중3 때 일명 고양이 혀 사실을 알고 나서 남들이 혀를 데면서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랐고 큰 배신감(!)까지 들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내가 느끼는 감정, 판단하는 가치들을 좀 더 신뢰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활 속에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불편이고 더 큰 불편과 편견 속에서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은 다르다. 그리고 그것이 존중받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면, 기꺼이 그래야 한다.


  저녁 바람에서 여름의 시작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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