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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산적자 Sep 04. 2016

돈을 받고 나의 시간을 팔다

현대의 시간팔이






회사는 우리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킨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회사 생활, 우리는 시간을 돈으로 바꾸고 있다. 부장도, 과장도, 선배도 일을 계속 시키고 무한한 책임을 원하면서 유한한 경제력을 쥐어주는 회사, 이 안에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문제는 통제감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컨트롤 하고 있다는 감각. 이것을 우리는 일에서나 개인적 삶에서나 가지고 싶어한다. 통제감을 잃은 건 자아를 잃은 상태와 비슷하다.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개인은 규칙 안에서라도 자율성을 가져야 하는데 회사는 그것마저 앗아가버린다.  회사가 준 업무를 개인적 우선순위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은 드물다.




개인은 점점 힘들어진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다니는 회사인데 회사를 위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희생해야 한다. 자율성을 상실한 개인이란 부품은 그저 회사라는 기계가 돌아갈 수 있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부품은 언제나 대체 가능하기에 언제든지 회사는 개인이라는 부품을 버릴 수 있다. 회사에게 필요한 건 교체하는 시간 정도 (인수인계) 뿐이다.




우리는 의식을 가진 부품이 되어야 한다. 의식을 갖고 있다는 건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서 자율성을 발휘 할 순 없다.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분야를 넓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회사 일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관리 수준이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품의 기능과 내구성은 한정적이다. 그런데 다른 보조 부품은 새로 설치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참 힘든 삶을 보내고 있다. 관리도는 점점 올라가고 사람은 뽑지 않고 관리자가 원하는 업무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진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마련, 일도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모든 것을 받아내는 하수 처리장과 같은 나의 일 주머니는 엄청난 카오스와 분노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인생에 대한 배반이 아닐까? 그리고 항상 스스로를 억제하고 관리하고 조절하며 사는 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라. 그 자유분방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엉엉 울던 그 시절을. 운명은 편안함과 서로의 무한정 합의를 통해 소리 없는 죽음을 양산 하고 있다. 인간다움을 앗아가는 공간, 과연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옳은 건지 고민한다. 나를 드러내고 통제감을 가질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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