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는 봉준호 감독 영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영화가 개봉 예정이라고 들었고, 황금 종려상을 받았다고 한다. 개봉과 수상 소식과 비슷하게. 봉준호 감독은 심각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이 부분을 적으며 괴물에서 장례식에서 가족들이 드러눕는 장면이 묘하게 오버랩됐다. 가족 모두가 온전한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설정 자체가 극적이었다. 모든 장면이 영화를 위해서 흘러가는 듯했고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세태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보여줄 뿐이다.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듯한, 계획이 없을 수밖에 없다는 말은 그럴 듯 했으나 그는 초반에 계획이 있냐고 아들에게 물어본다. 모순된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게 인간의 삶인가보다 하고 느꼈던 지점이었다. 친구 할아버지가 주신 돌을 보면서 기계적으로 뱉는 상징적이라는 영화의 대사처럼 기생충은 상징적인 영화다. 도대체 그 상징이 뭔지 모른다는 건 함정이다.
기생충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어떤 곳에든 들러 붙어서 몰래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집단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아는 모든 이들을 동원해서 끝까지 해먹는 비리의 모든 것을 은유적으로, 그리고 초반에 나오는 돌 같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닌가 추측을 해본다. 봉테일이라고 하는 감독이 만든 영화라서 많은 디테일이 있을텐데 한번 본 나로서는 캐치할 수 없다. 대만 카스테라가 두번이나 나오는 걸로 봐서 감독은 이영돈 피디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이영돈 피디도 기생충이 아닐까?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일부의 안 좋은 사례를 통해 자영업자들의 피를 빨아먹은 존재, 기생충들도 기생충에게 빨리고 기생충끼리도 싸우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아닐 수 없다.
기생충은 주인이 그어 놓은 선을 절대 넘어서선 안 되고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넘어서면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이 위협받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도 무시 당하면 욱한다. 그래서 무시해선 안될 일이다. 이런 면에서 기생충은 기존의 기득권에 대한 시민들의 반란 가능성을 표현하는 영화로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들끼리 작은 밥그릇을 두고 치고 박고 싸우는 광경을 보면서 조그마한 이익을 몰래 챙기는 게 당연하게 여겨져선 안될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회 구조상의 억압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는 시민의 모습이 영화에 투영됐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기생충들은 결국 정체가 탄로나게 된다. 속이고 살아가는 삶은 전반적 분야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 거짓말은 다른 삶의 피로도를 불러온다. 그리고 결국엔 본성이 드러나고 주인은 눈치채게 된다. 하나씩 새어 나오는 본성을 영원히 숨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베테랑 드라이벌를 자처하던 아버지가 차가 끼어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씨발’을 외치는 장면에서 나는 속이고 사는 삶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JTBC 로고가 그대로 나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보통 방송사는 MBS, SBC, KBC 이런 식으로 로고가 이상하게 바뀌어서 나온다. 나는 잘못 본줄 알았다. JTBQ 이런 걸로 바꾸지 않았나 싶었는데 아나운서도 그대로 나온다. 최순실 태블릿 보도를 진행했던 여기자가 그대로 방송에 나온다. 봉준호 감독은 현재 정권에 대한 고마움을 JTBC에 나타낸 것일까? 뉴스를 당시에만 줄기차게 봤던 사람이라 JTBC와 영화의 연결점이라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 이것밖에 모르겠다.
컵스카우트가 뭔지 몰라서 찾아보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카우트라고 한다. 양성 평등시대에 걸맞게 젠더를 삭제한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가 합쳐진 활동 단체인지 알았는데 아니라고 한다. 어릴 때 아람단 했었는데 아직까지 있다. 유니폼도 거의 안 바뀐 촌스런 형태 같고, 당시에 왜 집을 놔두고 학교 운동장에서 자야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어릴 때부터 나는 캠핑을 싫어했고 30대 중반에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성향이 나이 든다고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는 것 같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컵스카우트는 모르스 부호를 배우고 지하에서 보내는 신호를 아이는 해석하는데 그것은 맥거핀 같다. 아무런 행동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칼부림이 일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부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이 술을 즐기는 장면, 그리고 다른 기생충의 존재가 드러나는 장면, 그들이 숨어 있는 탁자 근처 소파에서 벌어지는 섹스 장면일 것이다. 그 희극적인 술자리 장면은 막장 가족이 술을 함께 마신다는 측면, 다들 일정 정도는 미쳤다는 측면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가 생각났다. 김윤석이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말하는 그 희곡 작품이다. 영화라는 것 자체가 극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장면은 너무나 작위적이라 느낄 정도로 희극적이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한 가지 단면을 다룬다고 보기엔 너무나 다층적이다. 그리고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별명을 볼 때, 보다 많은 상징과 암시가 숨어 있을 것이다. 영화 보고 나선 한번 더 봐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리뷰를 적고 나니 한번 더 보고 싶게 만든다. 내가 적은 리뷰와 영화의 결이 일치할지, 그리고 다른 이들이 적은 리뷰는 어떨지 궁금하다. 기생충은 재밌다고 하기엔 스토리가 기이하고, 재미 없다고 하기엔 관객의 긴장감을 끌고 나가는 드리블이 환상적이었다.
다양한 측면에서 내가 느낀 점을 맥락 없이 펼쳤다. 내 리뷰는 어떤 주제 의식을 담는다기 보단 영화에서 느낀 감상을 남기는 데 주목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러분이 본 영화와 얼마나 다를지, 얼마나 같을지 궁금하다. 이제 리뷰를 다 썼으니 다른 사람 리뷰를 찾아봐야겠다. (온전히 혼자서 읽어낸 후에라야 다른 이들의 리뷰를 보는 악취미를 가졌다. 그래서 리뷰를 안 적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예상 반응 : 그래서 기생충이 어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