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자면 오래 꾸준히 하는 일이 없다. 오래 하고 있는 게 딱 두 가지 있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과 독서모임일 것이다. 둘 다 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 회사는 이미 질림의 과정을 수업이 겪었지만 다른 훨씬 더 좋은 선택지가 없어 다니고 있는 것이고, 독서모임은 사람이 계속 바뀌니깐 그나마 질림이 덜한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이 질렸다고 그것을 아예 다시 쳐다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시 그것들을 그리워하면서 돌아오게 된다는 게 어찌 보면 개인적인 고민이고 문제점일 수 있다. 끝을 보지 않고 그만뒀다가 다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일 수 있겠다. 결국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질렸던 대상들을 공유해보며 혹시 이런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
영어 학원
영어 학원 다닌지 한 달이 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평소 하지 못했던 영어 회화를 공부할 수 있다니. 그리고 20대 학생들과 함께 하니 에너지도 얻는 것 같았다. 선생님도 재미있고, 단어 외우는 것도, 딕테이션 하는 것도 재미 있었다. 그런데 이게 한 달을 가지 못한다. 어느 새 수업의 형식이 눈에 들어오고, 학생들이 말하는 건 세상을 아직 맛보지 않은 이들이 하는 푸념인 것 같았다. 한계 효용이 빨리 온다고 해야 할까? 조금 더 욕심이 났다. 조금 더 말하고 싶고, 조금 더 깊은 내용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다음달 수강을 고민 중이다.
블로그
오래 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했다. 욕심을 부리다 저품질을 한번 먹고 나서 다시 시작했는데 아무도 보지 않아도 1년 정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유튜브가 나타나면서 유튜브를 해야겠다 싶었다. 스스로 꾸준히 올리는 건 만족스럽지만 그 형식과 내용 자체에 내가 먼저 질려 버린다. 다른 사람들이 질리기도 전에. 새로운 것, 보다 나은 것, 에너지를 덜 쓰는 것을 추구하다보니 정성이 덜 들어가고,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영상 형식에 눈이 가고 블로그를 그만둔다 하고 유튜브로 넘어갔다. 유튜브가 잘 되지 않자 다시 글에 대한 욕구가 샘솟으면서 일상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왔다 갔다의 연속이다. 언제 또 블로그가 질려서 그만할지 모른다.
중간 정리를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즌은 없다. 다만 그 에너지가 한 곳을 향하지 못하고 흩어져 있고, 산발적으로 다른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는 인상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다 높게 생각해서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지속적 불만족적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성장의 동력일 수도 있고, 그냥 지속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운동
돈 내고 하는, 피티는 제외하고 말하겠다. 처음 필라테스 피티를 다닐 땐 주 2회 수업 외에도 집에서 열심히 운동했다. 매일 내 몸이 변화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밌었다. 그리고 실제로 몸이 많이 좋아졌었다. 지금은 주 2회 수업 외에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무리하다가 다친 적이 많아서 그렇다. 몸에 고장이 많이 난다. 어깨, 허리, 발목 등의 부상이 잦은 편이다. 이건 몸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렇다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안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필라테스 수업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 효용이 줄어든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한계 효용이 빠르게 다가오는 듯 하다.
글쓰기
지금도 글을 쓰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한다. 매주 하나의 글이라도 적자 싶어서 성장판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벌금 장치가 없으면 글을 아예 쓰지 않는다. 글을 잘 쓰려면 계속 써야 하는데 글을 계속 쓰지 않는다. 매일 써나가는 일상 블로그는 하루를 토해내는 수준이고, 나머지 글쓰기는 연습하지 않고 있다. 잘 하고 싶으면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 나를 나도 잘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성과는 하나씩 드러나고 있으나 개인적인 만족감은 크지 않다.
책쓰기
스스로 오랫동안 해온 기록에 대한 에세이를 출판했다. 올해 초에 책이 나왔고 이후 나는 매년 책을 한 권씩 낼지 알았다. 더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쓸 수가 없다. 쓰고 싶은 주제를 선정한다해도 그 주제에 금방 질려 버린다. 꼭지를 몇개 써나가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책쓰기 수업의 넛지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서 꾸준히 적기가 힘들었다. 이런 게으름의 원인도 어찌 보면 질림이다. 형식에 질리고, 내 글쓰기 실력에 질린다. 남들이 질리기도 전에.
유튜브
작년 중순부터 유튜브를 했다. 정말 채널이 크지 않는다. 이제 한 두달 정도 하면 500명을 모을 것 같다. 유튜브는 특히 영상이라서 다양한 양식을 찾아 다녔다. 이 양식이 질리면 저 양식으로 하고, 또 다른 양식으로 갔다가 원래 양식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올리는 콘텐츠도 계속해서 바뀐다. 생산성 프로그램 강의를 올리다가, 일상을 올리다가, 책이나 영화 리뷰를 올리다가 계속해서 바뀐다. 채널 아이덴티티는 개나 줘버려 하는 마인드로 운영하고 있다. 한 형식으로 계속해서 진행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정리를 하면, 누군가 시켜서 하거나 감시하는 걸 좋아하는 수동성이 내재돼 있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을 표현하고 스스로 해나가는 능동성을 갖고 있지만 그 에너지가 오래 가지 못한다. 성냥 같은 화력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 바싹 타오르다가 사그라드는 성냥(?) 말이다.
하고 있는 활동을 살펴보면 자신을 발산하는 걸 좋아한다. 지금 이 글도 나 자신에 대한 내용이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면서 스스로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는 일을 좋아한다. 다만 그 형식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것이다. 아마 나는 이렇게 계속 살아갈 것이다.
나의 무차별적인 질림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다동력>이란 책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배움에 대한 에너지가 넘친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 대상에 질린 적이 있는가? 나는 거의 모든 것에 질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