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이유
지금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엉덩이가 아프다. 노트북 대신 아이패드를 들고 온 게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업무로부터도 벗어나 있을 수 있고, 이북 리더로 독서도 할 수 있고, 이렇게 글도 적을 수 있다. 이것저것 돌아가면서 하다 보면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초조하지 않다. 그리고 평소의 나라면 이런 대기 시간은 초조하고 짜증 날 것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조금 있으면 나는 떠날 테니. 당신들은 머무르고 나는 이 지리멸렬한 땅에서 솟아오를 테니까.
공항은 기다림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공항만큼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있을까? 다른 약속은 항상 늦어도 공항에 갈 땐 2시간 전에 가는 것이 사람들의 이상한 심리 아닌가? 자신이 타야 할 비행기를 놓쳐 버리면 일상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긋하고 시큼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일상의 감옥 속에서 우리는 하늘을 가르는 교통수단을 타고 공중으로 탈출하고 싶은 이카루스적 본능을 갖고 있다.
글을 적다 스마트폰을 보니 친구도 연착됐다고 카톡이 와 있다. 친구는 제주 항공인데 언제까지 연착된다는 안내도 없이 연착이라고 한다. 친구가 기다릴지 알았는데 내가 기다려야 한다. 공항은 기다림으로 가득한 공간이 틀림없다. 안 그래도 늦은 도착 시각이 더 늦어져 숙소에 도착하면 바로 자야 할 것 같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어떤 남자아이가 나에게 돌진했다. 왜 그런진 모르겠는데, 그리고 오다가 멈출지 알았는데 와서 나에게 부딪친다. '어이가 없네?' 그러나 악의가 없는 행동으로 느꼈고, 기분 나쁘진 않았다. 정강이가 잠시 격하게 아팠을 뿐. 건너편에 있는 어머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미안하다고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숙인다. 평소에 자주 지어 봤을 법한 어색한 미소이다. 나도 이에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어른은 자기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서 어른인가 보다. 아이의 책임은 부모가 진다. 인간만큼 부모의 책임이 강요되는 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만큼 오랫동안 양육을 해줘야 하는 종이 없는데 그 이유는 그만큼 과도한 보호를 해주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스파르타처럼 밖에서 키우면 동물들처럼 빠르게 독립할 수 있을까? 나도 보호를 받고 자랐으면서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글로 적으며 나의 탑승은 가까워지고 있다.
친구가 연락이 온다. 자기도 이제 탄다고 연락이 온다. 누가 먼저 도착할진 모르지만, 누구라도 많이 기다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에서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웰컴하고 있기로 했다. '웰컴 마카오 권'이라고 아이패드 앱에 적어놔야겠다. 유심 세팅을 제대로 할 수 있길 바라며 살아서 보자고 하고 비행기 모드로 전환했다.
이 당시만 해도 나의 여행과 글이 동시에 흘러가고 있었다. 이후에 홍콩 도착 후엔 실제 시간을 글이 추격하느라 바빴다. <추격자>에서의 대사인 '너지? 4885'처럼 글이 실제 시간을 쫓고, 시간은 도망치는 끊임 없는 추격이 시작된다. 나는 그런 추격이 힘들면서도 재밌었다. '하루를 기록하는 기록적인 하루를 보내자'가 나의 인생 신조다. 그리고 나는 신조를 실천하기 위해 블로그에 매일 일상의 글을 올리고 있다. 나의 인생 신조에서 시작된 이 글을 이젠 형태를 가다듬어 대중에 공개하려고 한다. 모쪼록 나의 글과 실제 시간의 추격전을 끝까지 재밌게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