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구 물러가라, 백숙 먹고 낫자.

백숙 먹자 했쟈나

by 록록록

#1

아기가 수족구에 걸려 몇 일을 아파했다. 열도 오르고, 피부에는 수포가 온 데 덕지덕지. 미안한 마음에 수포로 얼룩진 아기의 몸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온다. 말그대로 손, 발, 입에 수포가 생기는 병인데 입 안에 생긴 수포가 말썽인지 몇 일을 잘 먹지도 못한다. 차가운 수박만 몇 입 먹을뿐 그 좋아하던 요거트도 시큰둥하다.


다행히 주말에 아기의 아픔이 극한에 치달아 남편과 함께 병수발을 들었다. 남편 혼자서는 아마 감당이 안됐을듯 싶다. (우리 집은 남편이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입이 아픈지 혀를 계속 만지작, 수포에 잘못 닿기라도 하면 있는대로 짜증을 내니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적잖이 힘들었다.


8월로 16개월에 입성한 그는 자아의 폭발적인 성장 때문인지 원하는 바가 많아졌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의사표현과 짜증을 마주할 땐 멘탈을 잡고 있기가 쉽지 않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린 엄마와 육아에 시달린 아빠. 그 누구의 피곤함도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어려움에 무거운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2

감사하게도 현재 다니는 회사에선 재택 근무가 가능하다. 오늘 재택 신청을 하고, 방에 들어가 업무를 보는데 30분 동안 아기는 20분을 울어댔다. 일을 해야하는데 아기 울음 소리 때문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 결국 남편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1시간 채 일하지 못하고 거실로 나왔다.


회사가면 밥이라도 편히 먹지. 늘 점심시간에 맛있는 걸 먹으면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방에 들어가 조용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블루리본을 검색하고, 마침 10분 거리의 백숙집이 있어 예약을 했다.


나: 남편아, 점심 예약했어.

남편: 뭐?

나: 백숙이랑 묵사발

남편: 또 백숙?

나: (...) 거긴 블루리본이야 맛있을거야.

KakaoTalk_Photo_2025-08-05-14-27-04 002.jpeg

백숙 먹은지 2주가 넘었는데 또라니. (나는 백숙을 좋아한다.) 블루리본을 받은 백숙집은 다를거라 생각하고 우리는 차를 타고 향했다. 식당은 문전성시였고 예약을 안했으면 앉을 자리도 없을뻔 했다. 5분만에 백숙이 나오고 이건 분명 '토종닭'이었다.

KakaoTalk_Photo_2025-08-05-14-27-04 003.jpeg

요 몇일 잘 먹지도 못한 아기와 혼자선 점심도 대충 떼우는 남편 두 남자를 꼭 잘 먹이고 싶었다. 백숙을 먹으며 남편의 눈에선 의심이 사라진지 오래고, 먹을걸 거부하던 아기도 들깨가루가 들어간 고소한 닭죽을 먹더니 연신 더 달라 입을 쩍쩍 벌린다. 아기를 챙기느라 내가 먹을 백숙은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맛있게 먹은 남편과 아들의 얼굴을 보니 든든해진다.


#3

낮잠도 안자고, 밥도 안먹는 아기에게 내린 나의 처방은 단순하다. '나가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배불리 먹인다.' 단순한 나의 방침이 다행히도 오늘 통했다. 현재 아기는 쿨쿨 단잠에 빠졌고, 남편은 오랜만의 여유에 에어컨 아래 재밌게 유튜브 시청중이다. (물론 나는 일하다 잠깐 짬을 냈다.)

KakaoTalk_Photo_2025-08-05-14-27-04 004.jpeg

오늘 재택은 가정도, 일도 균형있게 잡은 것 같아 왠지 만족된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맛있는 일탈을 꿈꾸며.


끝.




작가의 이전글짜게식은 F1의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