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목전에 두고

늘 그렇듯 다음은 없다

by 록록록

외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들리신다. 보청기를 껴도 들릴까말까 한 수준의 청각을 갖고 계신지 내가 기억하는 것만도 5년이 넘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걸까. 언젠가부터 말수도 적어지시고, 활력이 없어지셨다고 느꼈다. 유일하게 소통이 되는 사람은 외할머니인데, 외할머니가 있는 힘껏 소리쳐서 말을 해야 들으셨다. 하지만 나는 이모, 외삼촌이 할아버지와 소통하고자 소리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외가댁은 오래된 2층짜리 건물의 작은 단칸방과 주방이 딸린 곳이었다. 샤시는 언감생심,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온전히 느낄 수 밖에 없는 건물이었다. 그러다 2년 전 엄마가 살고 있는 옆 아파트에 엄마의 형제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전세가 매물로 나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거기로 모셨다.


할아버지는 온전히 걷기도 어려우시다. 걸을 때 보조장치가 있어야 하고, 산책을 나갈 수 조차 없다. 병원을 가야하는 어쩔 수 없는 순간 외에는 아마 이사온 곳의 정취도 제대로 느껴본 적은 있으셨을까?


외할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 부모님과 이산 가족으로 헤어졌다고 들었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시간즈음 이산 가족 찾기가 한창 대한민국을 떠들썩 하게 했을 때 방송에도 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가족을 찾지는 못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딸 두 명과 아들 두 명의 자식이 있다. 두 명의 아들 중 한 명은 딸만 낳았고, 한 명은 자식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항상 남동생에게 할아버지의 성을 따르자고 농담처럼 이야기 하셨다. 딸로써 아들 선호사상을 전혀 지지하지 않지만 아이를 낳아보니 할아버지의 서운함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가 딸을 낳고 연이어 아들을 얻은 할아버지는 정말 기뻤다고 한다. (물론 딸도 사랑하시지만) 할아버지의 성씨를 이어나갈 수 있는 존재여서 그런걸까? 그래서 그런걸까. 할아버지의 눈엔 콩깍지가 씌어 아들을 굉장히 오냐오냐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외삼촌들은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바른 어른이 된 것 처럼 보이진 않는다.


할아버지가 아프단 소식을 듣고 큰외삼촌이 내려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컨디션이 들은 것 보단 괜찮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이모와 엄마가, '아들이 와서 그렇다. 딸은 다 필요없다.'고 얘기한다. 그 얘기를 듣는 외할머니는 묘하게 설렌 표정이다. 아들이 와서 좋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안타까웠다. 아마도 포옹 한 번, 따뜻한 말 한마디 한 번 주고 받지 못하고 헤어질 것 같다.


큰외삼촌은 경기도에서 사업을 이유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공장 옆 컨테이너에서 살았다. 늘 컨테이너에서 사신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그거다. 아마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계획처럼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삼촌이 어려워지자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시 내려오셨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들의 관계는 풀 수 없을만큼 매듭이 엉켜있는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할아버지의 몸엔 암 세포가 덩어리져 간, 대장이 모두 망가졌다. 그렇게 망가질 때까지 누구하나 총대메고 할아버지를 돌보지 못했다. 연이은 외할머니의 아픔에 가려 외할아버지 죽음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는 의사에게 아버지의 수명이 많아야 세 달 남짓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픔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셨다. 아마 올해를 넘기지 못하실 것이다.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안계시는 집이 무섭다고 말한다. 듣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해도 할아버지의 존재만으로 의지했던 할머니와 자식들은 아버지가 없는 하늘아래 살아가야 한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평생 말해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인생이 애석하다 느낀다. 살아있다는 것은 느끼고 교감하며 표현하는 것인데. 표현해 본 적이 없어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이별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주말 할아버지 면회를 갈 것이다. 할아버지가 내게 준 소중한 기억들을 얘기해주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주려 한다. 그리고 새신발을 드릴 것이다. 여기선 마음대로 걷지 못하셨겠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 신발로 꼭 자유롭게 표현하며 사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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