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여났다면 구태여 대볼 리가 없다*

by 록록록
어느 만큼 달라졌나 대본다는 건 한끝을 말뚝에 걸고 새끼줄을 풀다가 문득 그 길이를 재보는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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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여났다면 구태여 대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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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하고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시지 않는 한 우린 그 최초의 말뚝에 매인 셈이었다.

박완서 - 엄마의 말뚝 중


간혹 내 신수가 훤해졌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최저가 숙소만 찾아다니다 어느샌가 화려한 5성급 호텔에서 묵고 조식을 먹을 때. 5평도 채 안되는 원룸에 살다 신식 아파트에 사는 지금. 뚜벅이로 걸어다니다 차를 타고 왔다갔다 할 때. 상사의 말에 덜컥 겁 먹었던 신입사원과 달리 어쩌라고 마인드를 장착한 나를 발견했을 때. 분명히 내게 맛집이었던 그 곳의 음식이 더이상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입맛만 높아진 내가 가끔은 두렵다.


신났다. 신 나셨어. 그렇게 눈 높아져서 어떡할래?


처음에는 분명 즐거웠었는데. 고급 호텔, 식당 휘둥그레 커지던 눈이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심드렁 해진 내가 두렵다.


이상하게도 돈이 없었던 그때를 그리는 내겐 고생하면서 우물에서 탈출할 오기를 품는 것이 내 자존심을 지키던 때 같은 터무니없는 귀골스러움이었다*. 내가 정작 잃은 건 무엇일까. 내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소망의 부산물일까.


'그때에다 대면 지금 부자됐지?'


내가 세운 기준은 무엇일까.


인서울을 실패하고 내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을 가지 못해 망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삶의 성공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터무니없이 높은 이상과의 갈등,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과의 모순, 영원한 문밖 의식, 그건 아직도 나의 의식 내용이다*.


나는 겨우 세워놓은 나의 성벽이 무너질까 두렵다. 즉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내가 세운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제목과 내용은 박완서 작가 님의 [엄마의 말뚝]에서 감명을 받은 부분을 각색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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