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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별 Jan 14. 2021

세 달에 한 번 보는 게 연애라고?

엄마 아빠의 연애시절

사랑하는 '순'아~

아주 어렸을 때 시골에 내려갔다가 아빠 엄마의 연애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곤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엄마한테 보낸 편지였는데, 세상 무뚝뚝한 아빠가 엄마 이름의 '끝 글자'를 부르며 달콤하게 쓴 그 연애편지는 그야말로 쇼킹이었다.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종종 아빠와의 연애 때 얘길 해주신다.

 -나   : "일주일에 몇 번 만났었어? "

 -엄마: "일주일? 일주일이 뭐야~ 세 달에 한번 봤나?"

 -나  : "헐.. 그게 연애야? 3년간 연애할 때 만난 횟수가 그럼 나 두 달간 연애한 횟수랑 비슷하네! 어휴~ 요즘 3달에 한번 보면 바로 헤어질 거 같은데... 허허~"

 -엄마: "그땐 그랬지 뭐. 편지에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서 보자.라고 보내면 그날 거기 가있는 거지.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고 공중전화도 흔치 않아서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거야. 아~ 그 옛날엔 아빠가 엄마 졸졸 따라다녔는데. 한 번은 네 막내 이모가 누가 창문에 돌 던지길래 봤더니 아빠였었데. 아빠가 그랬던 사람이었어. 호호호~ "


엄마 아빠의 연애담을 듣고 있으면 '아~ 우리 엄마 아빠도 젊은 시절에 설렘 가득한 연애를 했었구나'란걸 다시금 느끼곤 한다.



엄마 아빠의 연애담 중 한 100번을 들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엄마 아빠는 편지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예산 수덕사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엄마는 오랜만의 만남이라 예쁘게 차려입고 기쁜 마음을 안고 수덕사 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몇 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아빠가 거주하던 셋째 할아버지 댁에 전화했는데 사촌동생이 "형 오늘 일 있다고 아까 나갔어요"라고 했단다.

엄마는 '아~ 나랑 만나는 걸 까먹고 다른 거 하러 갔구나.'라는 생각에 서운한 맘을 갖고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엄마는 '아~ 이렇게 헤어질 수도 있겠구나..'라며 마음의 상심을 안고 있었는데, 아빠한테서 편지가 왔단다.

'우리 순이' 왜 그날 안 나왔냐고. 나는 수덕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아빠도 엄마도 설렘 가득 안고 여자 친구 남자 친구 만나러 수덕사에 가 있던 거였다.

단지 수덕사 절인 지 입구인지가 엇갈렸을 뿐.


핸드폰이 있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엄마 아빠가 연애하던 80년대 초반에는 이런 일들이 수두룩 했단다.


두 분은 아직까지도 "수덕사 절이 맞다" "수덕사 입구가 맞다"며 각자가 기다린 곳이 맞다고 아웅다웅하신다. 허허~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헉!!!!

그때 장소에 대해 서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던 '편지' 아니었음 나 이 세상에 엄마 아빠 딸로 못태어 났을 수 있었네!!!


편지야 고맙다! 네 덕에 내가 세상에 빛을 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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