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욕심은 실패의 대가도 크다.

몸으로 경제를 배우게 된 청년의 이야기 - Chapter 10

by UC

강남 한복판에 있는 15층 빌딩 전체 내부 인테리어는 그 규모만큼이나 공사비용도 엄청났습니다.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회사에서 돌고 있는 소문은 30억 정도라고 했으니 소문이 가진 허세를 빼면 대충 20억 중반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코인, 주식, 부동산 등 수십억이라는 단어가 쉽게 들리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말하기도 듣기도 쉽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단편적인 예로 2022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10억 정도의 아파트가 그 당시 3억 중후반 정도였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이 공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임원들과의 자리에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부장님과 이사님 2분이 함께 하는 자리에 저와 집의 방향이 같은 이사님이 혹시 저녁을 함께 하고 운전을 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였는데 유령처럼 조용히 밥을 먹고 술자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지루한 자리지만 거절하기 힘든 분의 부탁이라 내 돈 주고는 먹을 일이 없던 고급 식당에 가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애써 이유를 납득했던 자리였습니다.


코스 요리였기 때문에 감질나게 나오는 음식이 안 그래도 지루한 시간을 더 지루하게 했지만 그 지루함을 한방에 반전시켜주는 말이 별 내용 없는 대화중에 비수를 찌르듯 나와서 순간 사래가 걸릴 뻔했습니다.

“이사님 우리 회사에 정말 중요한 공사입니다. 대표님께서도 공사가 잘 마무리되면 섭섭지 않은 상여금을 말씀하셨으니 FM대로 공사를 진행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이 좀 그러시네요. 제가 FM대로 안하고 있는게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공정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나중에 혹시 금전적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그 아시지 않습니까”

“뭔 말인지 알아먹었으니 긴 얘기는 안하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회사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섭섭하네요.”


어렴풋이 어떤 문제를 얘기하는지 감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먹었던 맛있는 음식이 한순간에 못 먹을 걸 먹은듯한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내가 왜 이런 자리에 껴있는건가 싶고 안 들어도 될 이야기를 들은 게 최악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때부터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즐거운 자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자리는 금방 마무리가 되었고 저는 비싼 밥을 먹은 죄로 운전을 하는 동안 엄청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이런 꼴을 보니 너도 내가 뭔가 뒤로 켕기는 게 있나 보다 싶지?”

“아니요 이사님 저는 솔직히 비싼 밥 먹느라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잘 못 들었습니다.”

“하하 웃긴 놈이네 이거 분위기 파악은 다 했다 이건가? 예상했던 대로 눈치가 빠르구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님”

“욕하는 거다 이놈아 눈치가 있으면 뭐하냐 표정관리가 안되는데 쯧쯧...... 너 대학도 못 나왔다며 누구 연줄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내 밑에서 배워라 제대로 배워야 오래가는 거야”

“...... 감사합니다. 이사님 (췌, 없는 놈이 먹고살려면 눈치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사님 왜 저를....."

"그거야 니가 연줄 없고 회사에서 찬밥인데다 눈치는 좀 있어보여서 일시켜먹기 좋겠다 싶었다."


누가보면 뭐 엄청난 기업인줄 알겠지만 고작 중소기업쯤 되는 회사에서 이 무슨 드라마 같은 대사를 현실에 듣자니 손발이 없어지도록 오그라들었지만 거절하면 이 좋은 회사를 조만간 그만둬야 한다는 건 알았기에 술 취한 상급자의 기분을 맞춰 주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저는 퇴근 후에 이사님 동네에서 술자리를 빙자한 교육을 받았고 알아서 득이 될 거 없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사님은 그동안 하도업체를 공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고 뒷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다른 업체에서 들어온 견적을 미리 알려줘서 견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하고 공사에 들어오면 사례금을 받는 식입니다. 이사님은 원래 이 바닥은 이런 거라고 회사에 있는 임원중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놈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놈의 어른의 세상 어디 가나 썩어가는 일들은 세상을 사는 지혜로 포장이 되고 그렇게 죄의식 없이 점점 당당해지고 자랑거리가 됩니다. 회사 내에서 이사님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자 저를 통해서 자료들이 전달되었고 하도업체에서는 심부름꾼에 불과한 저도 본사 직원이라는 명목 하에 대접을 해줍니다.


언젠가 일이 틀어지면 잘라내는 도마뱀 꼬리가 될 거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심심치 않게 생기는 부수입은 거절하는 일 없이 얼씨구나 하고 챙겼습니다. 하도업체에서 수고비라고 주는 돈이 정확히 모르지만 횡령은 아니겠지 싶어 감옥이야 가겠나 싶었고 나중에 잘려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덜 억울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웃기는 일이 생겼습니다. 정석대로 일하라며 경고를 날리던 그 이사가 횡령으로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정말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놈 없다는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삿돈으로 주식을 샀다는 소문이 들렸고 조사가 깊어질수록 아주 가관인 게 횡령에 회사 사장도 연루돼있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웃음밖에 안나는 이 상황이 진정 드라마가 아니고 현실인가 싶습니다. 이 와중에 15층 빌딩 리모델링을 의뢰한 중국 회사가 연락이 안 된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전체 공사비용의 절반밖에 결제가 안 된 상황에서 공정은 90%까지 진행이 되어있는 상태였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이유가 중국 회사에서 공사를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독촉을 했다고 합니다. 공사가 끝나고 모두 열심히 일하는 그림이 있어야 투자를 약속한 투자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어디 하나 정상인 곳이 없는 대환장 요지경 판입니다.


회사는 그동안 경험해 본 적 없던 대규모 프로젝트를 폭망으로 이끌면서 채권자들의 아지트로 변하고 있었고 아무런 죄 없는 말단 직원들은 그동안 사람 좋던 하도업체 사장님들의 육두문자를 다양하게 청취할 수 있는 VIP석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의 급여도 나오지 않게 되자 직원들도 하나둘 뭉쳐 고용노동부에 신고도 하고 여러 가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결국 3개월이 지나 대환장 파티는 회사의 부도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직원들은 적게는 2개월 많게는 4개월의 급여를 못받느 사람이 속출했고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엄청 많은 사람의 피해가 산불처럼 번져가는 현장을 보게 됐습니다. 망연자실하게 산불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피해규모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상상 이상으로 커집니다.


몇몇 사람의 욕심으로 생긴 피해를 그렇게 모두가 억울하게 나눠가지고 나면 상황은 마무리가 되고 이제 모두 새로운 삶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숙제가 남습니다. 이제는 적응이 됐는지 감흥도 없는 백수의 시간을 한두 달 지내고 언제나 그렇듯 재물복은 없어도 일복은 타고났는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자리를 소개해줍니다. 하도업체 사장님 중에 한 분이셨는데 주변에 영업사원을 구한다고 소개를 해주셔서 찾아갔습니다. 평소에 저와 특별한 친분도 없는데 어쩌다 일자리까지 소개해주게 되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렇게 찾아간 곳은 그동안 상업시설을 해서 그런지 인테리어를 그렇게 했어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주거용 창호 업체입니다. 이름은 누가 들어도 알법한 L로 시작하는 브랜드였고 이제는 종합 인테리어로 거듭나고 있는 브랜드 입니다. 저는 거기서도 그동안의 경험을 동원해 블로그로 개인영업 라인을 완성하고 본사에서 배분해주는 홈쇼핑 문의 고객과 전시점을 찾아오는 손님들로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또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영위해가고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관련 업을 1년 2년 해가면서 처음엔 눈앞에 새롭게 펼쳐지는 일들이 마냥 즐겁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 어느덧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6년 차가 돼가고 있을 때쯤 마음속에 찝찝함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술자라고 부르는 현장 노동자들은 그저 회사에 들어와 선배들이 알려주는 대로 또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이 전부였고 한국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기업인 본사에서는 교육이랍시고 주의사항을 메일로 배포한다던가 1주일 정도의 보여주기 식 교육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 홈쇼핑에서는 마치 엄청난 교육을 받은 본사시공팀이라는 이름으로 대단한 시공을 받을 것처럼 둔갑해서 광고를 합니다. 영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되고 요즘은 유튜브 등 외국의 사례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물론 외국의 시공법이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힘들고 맞지 않는 것들이 많으나 그래도 그 체계에 대해서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기술자를 배출하는 곳도 기술자를 비싼 급여를 주고 쓰고 싶어 하는 곳도 없습니다. 그저 와서 뚝딱거리면 모두가 기술자이고 싼값에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문제가 생기면 와서 화부터 낸다는 겁니다. 영업사원의 입장에서 봐도 어이가 없습니다. 기술자라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생긴 문제를 앞에 두고 화를 냅니다. 소비자가 이 모습을 보면 이 순간이 바로 영업사원이 사기꾼이 되는 찰나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비자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공사를 하고 싶어 하고 업체들은 그런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공정을 줄여 비용을 낮춥니다. 20개를 계약해서 공사를 끝내면 1~2개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도 18개는 잘 넘어갔으니 그냥 그렇게 영업을 하고 공사를 합니다. 문제가 된 곳은 건물이 너무 낙후되었다던가 하는 핑계들이 항상 존재합니다. 집수리를 낙후된 건물을 하지 누가 새 건물을 하겠습니까? 핑계가 아이러니합니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진정한 기술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인테리어입니다. 소비자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본인이 직접 일을 할 수는 없으니 업체에 어쩔 수 없이 맡기는데 남들보다 저렴하게 하면 기분이라도 챙길 수 있으니 무조건 싼 가격에 하는 게 장땡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상황에서는 그게 제일 현명한 소비자라고 영업사원도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점점 더 저렴한 가격을 원하고 그만큼 업체는 남길 게 없으니 자재, 노동자의 급여를 줄이려 합니다. 덕분에 오랜 시간 제대로 배운 기술자는 일이 없게 되고 낮은 급여를 받아도 일을 하는 노동자만 넘쳐납니다. 이 업계에서만 10년 가까이 지내도 변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쪽 업계 계신 모든 분들이 자신들은 정직하고 성실하다 얘기하는데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잘못된 방법을 배워와서 자신이 배운 대로 했다고 그게 정직하다 할 수 있을까요? 사기꾼을 10년 넘게 꾸준히 했다고 하면 성실하다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일을 하면서 직장 동료들에게 술 한잔 하고 이런 고민을 터놓으면 다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양심적으로 하는 거다. 우리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다 그렇게 한다. 그게 싫으면 직접 해라. 온갖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말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그 누구 하나도 우리라도 이렇게 해보자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성격이 유별나서 인지 직업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왔습니다. 결국 몸에 이상이 생기고 몸도 마음도 모두 만신창이가 돼있었습니다. 어쩌면 능력도 없는 주제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큰 욕심이 큰 화를 부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돈 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는데 결국 그 정도 수저와 그 정도 레벨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정도 말고는 안되는가 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중에도 당장에 다음 달 생활비와 나가야 하는 돈의 액수가 생각나는 건 모든 사람들의 슬픈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와이프가 묵묵히 지켜보다 어느 날 이런 말을 합니다.


“돈을 떠나서 힘든 일은 이겨내도 하기 싫은 일은 죽기보다 싫은 게 사람인데 이 직장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 같아. 2~3달 시간을 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나에게 항상 믿음을 줬듯이 자기한테 정말 잘 맞는 일을 찾아올 거라 믿어”


남들처럼 번듯한 내 집 마련도 못한 남편에게 그동안 적지 않은 수입을 가져온 직장을 그만두라는 와이프의 말이 고맙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합니다. 2~3개월 나에게 맞는 다른 돈벌이를 찾는 것과 내가 정말 영업이라는 일이 맞지 않는 건지 냉정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40대가 된 저에게 또 한 번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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