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과정일 뿐 목적지는 아닌 그곳 “직장”

몸으로 경제를 배우게 된 청년의 이야기 -직장이 내게 준 삶-

by UC

20대를 남들보다 빨리 달리고 싶어서 창업이라는 길을 선택했고 결과는 실패자라는 낙인과 몇 년을 차근차근 갚아 나가야 하는 빚이 그리고 허비했던 시간만큼 먹어버린 30대라는 나이가 남았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실컷 실패해보고서야 이제야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기 위해 취직을 해야 했고 그 직장에서도 형편없는 스펙으로 살아남을 방법과 남들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영업이라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인지 모르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어른의 방식이 영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다가왔고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윤리의식이 작동되지 않는 안정된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직장이 왜 좋은 직장인지 새삼 깨달았고 그런 직장 중에도 남들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를 대기업이라 부르는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왜 부모님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공기업, 대기업 취직하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지만 이미 30대를 넘어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깨달아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느덧 마음 한편에는 유년시절 각인된 양심을 기준으로 불편해져 가는 마음에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이렇게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양심적이라고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양심을 조금이라도 챙겨보려 합니다. 모두가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똑같은 변명을 하고 결국 많은 돈을 벌게 되면 내가 공개적으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이나 방송인이 아니라면 딱히 큰 비난을 받지 않고 돈으로 이룬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기에 이런 논리가 진리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선가 이런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양심적인 사람이라 평가받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깟 양심 지켜서 뭐하냐고 세상은 가난이 죄가 되는 시대인데 아버지는 가장으로도 남편으로도 죄인이고 실패한 삶이라는 자식의 분노 어린 대사였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말 중에 ‘양심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비양심이 밥 먹여 주는 세상도 이상하다 생각합니다. 내가 먹고사는데 양심을 지킬 필요 없다는 듯이 여기는 이 말을 개인적으로 경멸합니다. 성인이 된 사람이라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가 양심, 도덕, 예절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되면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이 될지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어서 점점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지’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화가 나있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알게 된 세상의 불합리를 고발하고자 하는 글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려 쓴 글도 아닙니다. 40대가 된 지금 어느 한 사람이 나서서 바꿀 수 없는 세상임을 알고 평등한 기회가 평등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지금 스스로를 불행하다 생각하고 지금의 모든 현실이 본인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당신들보다 더 운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지금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드리고 싶어 시작한 글인데 어쩌다 보니 창업도 하지 마라 직장도 뭐 같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는 글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창업으로 이루려 했던 20대 청년의 꿈은 본인도 정확히 목표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성공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손에 쥐고 있었고 그 성공을 돈이 가져다 줄거라 믿고 살아갑니다. 30대가 돼서도 창업으로 생긴 실패의 그림자를 돈이 사라지게 해 줄 거라 생각했고 돈을 좇아 갈수록 마음의 그림자는 더 커지는 걸 느끼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돈의 능력을 부정하는 정신승리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목표로 삼았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니 인생에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내 아이의 아장아장 걷는 모습과 언제까지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이 일거 같은데 내 옆에서 청춘을 지나 보낸 아내를 보며 스스로의 무능함과 돈 몇 푼에 소중한 시간을 맞바꾸는 아둔함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후회스럽습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40대가 돼서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되고자 했던 아들, 남편, 아빠의 모습이 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얻을 수 있는 직장이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도로에 불과하다는 걸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쉬지 않고 찾아오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사람들에게 받는 마음의 작은 생채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도 직장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내가 갖고자 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됐는지 문뜩 궁금해집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해보니 직장생활은 적당히라는 단계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직장은 단순 노동부터 큰 프로젝트까지 내가 편하려면 동료 누군가가 내 몫만큼 더 일해야 하는 곳이라는 걸 알고 난 이후부터 쉬엄쉬엄 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회사는 구성원들이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업무량을 주기 때문입니다. 혹은 정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만족스러운 급여를 챙겨갈 수 있도록 설계가 돼있습니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휴일이 되면 녹초가 되어 마냥 쉬고 싶습니다.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많은 여가생활을 하고 싶지만 이미 방전된 채 휴일을 맞이한 사람에게 쉬는 것 외에는 모두 사치입니다. 그렇게 가족과 불만이 쌓이고 정말 힘들게 일하는 사람에게 불만을 갖는 가족들이 원망스러워집니다. 가족은 그렇게 서먹해집니다.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연휴의 기회가 찾아오면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바람을 쐬러 갑니다. 휴일이라 많은 가족들이 나들이를 나왔는데 혼자 조금 떨어져 전화를 하는 아빠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업무상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이미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 그 아빠가 고스란히 집중을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금전적 여유, 시간적 여유, 마음의 여유 이 모든 게 엄청나게 많은 돈이 있으면 한방에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나게 많은 돈 과연 내가 가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혼자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상황에도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그 엄청나게 많은 돈의 정확한 기준은 얼마일까 궁금했습니다.


돈은 사람마다 필요한 크기가 모두 다르다고 합니다. 누구는 오늘만 살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고 누구는 10년 20년을 위한 돈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람도, 없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소유, 내려놓음 훌륭하신 분들의 가르침을 아무리 내 것으로 만들어 보려 해도 저는 돈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고 집도 있으면 좋겠고 정신승리가 아니라 더 나은 수입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럼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누리면서 순수하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 정도 돈이 얼마인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했던 2막을 정리하고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생각하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40대가 되어 시작한 일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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