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커머스 이름도 생소한 세상을 보다.

몸으로 경제를 배우게 된 청년의 이야기 - Chapter 5

by UC

오픈마켓에서 아무리 단기 매출을 위해 살인적인 할인판매를 적용해도 플랫폼에서 정한 광고 정책 때문에 광고 투자가 선행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박리다매의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투자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늘어나서 할인판매를 하는 게 알려진다 해도 매력적인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소셜커머스는 그 당시 이제 막 생성되어 엄청난 주목을 받고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 오픈마켓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쿠팡, 티켓몬스터, 위메프 등 주목을 받고 있는 플랫폼에서 상품을 판매하고 싶었으나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는지 주변에 아는 사람도 인터넷에 정보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ARS가 응대를 하고 상담원 목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기 일수였습니다. 저의 행동을 보고 소셜커머스에서 미용실 티켓을 구매했던 직원이 결제 관련 상담은 상담원이 바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나 결제 관련해서는 허무할 정도로 빨리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상품을 판매하고 싶다고 하자. 대표 메일로 제안서를 보내면 된다는 말 한마디 외에는 이렇다 할 설명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양식도 없고 제안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에서 인터넷에서 온갖 제안서라는 이름이 붙은 양식을 찾아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제안서를 작성했습니다. 결과는 며칠을 고민해서 작성한 메일을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답장 하나 받지 못하고 답답한 시간만 흘러갈 뿐이었습니다. 플랫폼에서 판매를 하고 있는 상품을 모두 살펴보면서 이 귀하신 회사들이 어떤 상품을 보여줘야 관심을 가질까 고민했습니다. 때마침 겨울이 끝나가는 시즌이라 온라인 쇼핑몰은 봄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동대문 주변의 스튜디오에서는 봄 시즌을 준비하는 촬영들 때문에 스튜디오의 예약이 꽉 차서 1~2주는 스튜디오 촬영을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쁜 상황에 모두에 손에 들려있는 옷이 있습니다. 바로 봄 원피스입니다.


그동안 시즌상 아주 짧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라 봄에 항상 등장하긴 했어도 그렇게 주목을 받지도 매출이 높지도 않았던 아이템이 무슨 이유인지 초대박을 누가 예견이라도 한 듯 모두가 준비하고 있는 옷이 원피스였습니다. 그중에 이건 여름용이 아닌가 싶은 민소매 원피스도 엄청나게 많은 신상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패션시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아래 그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며 온갖 카피 제품으로 수백, 수천 명이 먹고사는 이 시장바닥은 이미 유행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아서 약 20여 개의 원피스를 골라 마네킹에 입혀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모든 일이 초스피드로 진행됐습니다. 제안서고 뭐고 애초에 양식도 없는 거 그냥 사진만 몇십 장 첨부해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뭐 말도 별로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제가 이걸 그쪽 회사에서 팔고 싶다는 간략한 문장과 연락처만 적어서 말입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불과 이틀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양식을 드릴 테니 양식에 맞게 작성해서 다시 보내달라고 합니다. 제안서 양식 하나 받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양식에 맞게 사진과 설명, 가격, 수량 등등 작성해서 보냈습니다. 이번엔 더 빨리 연락이 왔습니다. 오전에 보낸 양식을 보고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주에 샘플을 들고 미팅을 할 수 있냐고 물어왔습니다. 일정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의 옆에서 눈만 말똥말똥 뜨고 결과를 기다리던 직원들과 환호를 지르고 다 같이 나가서 시원한 맥주로 기분 좋은 마음을 서로 맘껏 축하했습니다.


아직 판매가 결정된 것도 매출이 나온 것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작부터 우리가 이렇게 요즘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플랫폼에 연결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99% 였던 일이 가능성 50%의 상황이 되었다는 게 정말 너무나 기쁘고 힘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미팅 날짜가 되었습니다. 사입을 맡고 있는 친구와 샘플을 들고 잠실에 있는 회사에 도착해 연락을 하니 미팅룸이 있는 층에서 대기해 달라고 합니다. 생각했던 미팅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미팅룸이라는 게 전에 본 적이 없어서 막연히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딱딱하고 사무실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커피숍 같기도 하고 대형 휴게실 느낌이 나는 장소였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들이 생각보다 자유롭고 북적거려서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습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두 사람이 들어와서 두리번거리다 대충 우리일 거라 생각했는지 다가와서 인사를 합니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우리가 들고 온 샘플을 살펴봅니다.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다며 종류가 많아서 가져오지 못한 다른 상품도 비슷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딱딱한 표정을 풀며 칭찬을 합니다. 덩달아 좋은 신호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긴장을 모두 떨쳐냈는데 그제야 본격적인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안서에 쓰여있는 판매 가격에서 얼마나 더 낮출 수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 숨길 수 없이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독립몰에서 절대 판매할 수 없는 아주 낮은 가격을 제안서에 써놨기에 그 아래로는 판매할 수 없는 상품이었습니다. 우리가 당황한 기색이 너무나 역력했는지 옆에서 말없이 있던 팀장이라는 사람이 얘기를 꺼냅니다. 3~4일간의 판매 기간 동안 정말 많이 팔리는 상품은 약 1만 건 정도가 판매가 된다. 한 번에 두세 개를 구매하는 고객을 생각한다면 1만 개 보다 훨씬 더 많은 개수가 판매될 수 있는 거다 택배 백마진까지 포함해서 순수마진이 개당 1,000원만 남아도 3일 만에 1,000만 원이 넘는 순수익이 생기는 거라고 설명을 합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지금 이 자리에서 판매 가격을 정할 수 없으니 시간을 달라는 우리의 요청으로 미팅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미쳐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판매 가격보다 더 큰 문제는 정산기간과 배송 기한이었습니다. 운이 좋아 1만 건의 주문이 들어왔고 약 만 오천 개 정도의 옷을 발송해야 한다면 적은 수량이 아니기 때문에 주문생산을 해야 합니다. 대량주문은 계약금을 내야 하는데 최근 시장의 분위기가 이런 대량 주문은 계약금이 10%, 20%가 아닙니다.


도매에서 계약금 10%를 받고 상품을 모두 생산했는데 주문자가 잔금을 지불하지 못해서 상품을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상황처럼 보이겠지만 장사라는 게 결제를 받아야 할 돈이 제 날짜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주문자도 돈을 받아서 결제를 하려고 생각했다가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10%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해도 제품을 생산한 가게 또한 공장에 결제해야 하는 돈을 지불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미지급된 돈의 피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는 상황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도매시장은 대량 주문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계약금으로 받고자 합니다. 큰 기업들은 계약서도 쓰고 피해 청구소송 등 대처방안이 있겠지만 시장상인에게 주문 계약서 따위는 휴지만도 못합니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가게문을 닫아야 하는 시장상인은 소송하겠다고 법원 갈 시간도 사치입니다.


예전에는 친분과 오랜 거래처라는 명목으로 10%의 계약금만 받고 일을 진행하는 게 흔한 일이지만 IMF 이후에 시장은 사람은 믿지만 돈은 믿을 수 없다는 구실로 분위기가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많은 돈을 일단은 빌려서라도 일을 진행하고 싶지만 판매대금을 정산을 받는 기간이 한 달이 넘게 소요가 된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완불을 하지 않고 물건을 받을 수도 있으나 그 잔금의 비율이 최대 20%를 넘기 어려웠고 나머지 20%를 한 달 뒤에 지불하겠다고 도매를 설득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판매기간이 완료되면 최대 3일 안에 모든 배송을 끝내야 한다는 항목이었습니다. 그 말은 어떤 상품이 얼마나 팔릴지 모르니 20여 종의 상품, 사이즈와 색상까지 생각하면 약 150종류가 넘는 상품의 재고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면 가격도 재고 확보도 배송도 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꿈만 가지고 움직이는 이 젊은 청년은 바다에 도달할 수 없는 작은 개울에 피라미처럼 생존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실망만 남은 계획 때문에 분위기는 초상집과 다름이 없고 상세페이지를 작업하는 직원은 아는 언니가 일하는 제법 규모가 있는 쇼핑몰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찬스를 잡기 위해 퇴사를 했습니다. 직원이 그만두고 지출이 줄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이런 식이라면 나만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남아 있는 직원마저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두 번째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게 짜인 각본처럼 다가오는 순간인데 지출이 줄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떠올린 게 정말 한심하고 바보 같았습니다.


조건은 모두 알았으니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했습니다. 정말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내 머리에서 방법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리겠다는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조건에 맞는 상품을,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액세서리 도매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본인이 일하고 있는 가게에서 야구모자를 가져오는 모자가게가 있는데 한번 가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야구모자는 뒤통수에 사이즈를 조절하는 밴드가 있기 때문에 사이즈가 따로 없습니다. 색상도 한 종류에 한 가지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가를 물어봤는데 정확히는 모르나 사장님이 깜짝 놀랐다고 사모님과 얘기하는 걸 들었다 했습니다. 그 동생도 정확한 주소를 몰라서 어디 근처라는 말만 듣고 일단 찾아가 봤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골목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모자가 진열되어 있고 그중에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알파벳이 수 놓인 야구모자는 소매시장에서 보통 만원 불러 8천 원 받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야구모자입니다. 가게 주인인듯한 노부부께 가격을 여쭈어보니 위아래로 훑어보시고는 여기는 도매 장사하는 곳이라서 한두 개는 안 판다고 하십니다. 동대문에서 장사하는 청년들이라 소개를 하니 개당 2500원이고 최소 수량은 정해두신 게 없으신 듯 우물쭈물하십니다. 가격을 듣고 이게 뭔 일인가 싶습니다. 길에서 만원에 팔아도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적당하다 생각되는 그런 모양새를 갖춘 모자가 2500원이라는 말입니다. 그저 동대문을 돌아다니면서 원가가 5천 원 정도 하겠네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런 상품입니다. 대충 봐도 50개 넘는 종류를 종류별로 한 개씩 달라고 하고 저희가 많이 팔건대 수량은 충분히 있는지 물었더니 저를 보며 웃으십니다. 아주 잠깐 포장하는데 집중하시다가 젊은 사람이 패기가 있다며 말씀하십니다. 얼마든지 팔라고 종류별로 매주 2천 개씩은 생산이 되고 있다고 말입니다.


걷히지 않을 거 같았던 먹구름에 한줄기 빛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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