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경제를 배우게 된 청년의 이야기 - Chapter 4
평소에 컴퓨터는 게임을 하는 거 말고는 쓸 일이 없었기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혔습니다. 다행인 건지 온라인 쇼핑몰 성공신화를 보고 수많은 청년들이 온라인 쇼핑몰 창업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기저기 오프라인 강의는 홍수를 이루는 중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강의를 찾아다녔고 필수라고 불리는 포토샵을 인터넷을 보며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온라인 쇼핑몰 창업은 독립몰과 오픈마켓 두 가지가 주류였고 독립몰은 충성고객이 생기면 꾸준한 매출이 나오는 대신에 매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쇼핑몰을 알리기 위한 광고비용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아낌없이 홍보비용을 투자하는 대형 자본 쇼핑몰도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오픈마켓은 매출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나 내 가게의 충성고객 확보가 어려웠고 플랫폼 기업에 많은 수수료를 내야 했기 때문에 장단점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이 돈이 되는 사업이라는 것이 증명되자 초기 시장처럼 아이디어로 승부를 하는 창업자들보다 더 많은 투자금을 확보한 창업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쇼핑몰의 퀄리티는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고 더불어 창업비용도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자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픈마켓을 목표로 아이템 선정을 위해 우리나라 3대 오픈마켓과 온라인 쇼핑몰 구석구석 돌아봤습니다. 새벽에는 도매시장을 나가서 장사가 잘되는 집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도매 시장에서 장사가 잘되는 집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도매시장이 오픈하기 전에 각 공장에서 물건들이 도착하는데 쇼핑몰 1층밖에 지정된 공터에 커다란 여왕개미가 알을 낳아둔 것처럼 옷을 가득 담은 대봉들이 쌓이게 됩니다. 도매시장이 오픈하면 지게꾼들 또는 젊은 남자 직원들이 대봉들을 짊어지고 각 호에 물건을 올립니다. 직원이나 사장님이 출근해서 하는 일이 그 봉투를 풀어 상품들을 진열하는 일인데 그 일이 시간이 1~2시간 필요합니다. 그럼 이때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각 가게 앞에 대봉이 얼마나 쌓여있는지를 보는 겁니다. 신상이 나오는 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 평균 어느 정도의 양을 생산하고 있는지 보면 장사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화가 되지 않는 양을 매일같이 생산하는 가게는 없기 때문에 나름 정확도가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낮에는 수십수백의 쇼핑몰의 상품을 눈에 익히고 밤에는 어느 가게에서 나오는 물건인지 찾고 가격을 적어둡니다. 그런 식으로 평균적으로 쇼핑몰에서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남기는지 알아내고 판매 가격을 산정합니다. 쇼핑몰에서 보기 힘든 스타일인데 장사가 잘되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가격을 알아내고 왜 쇼핑몰에서 보이지 않는지 원인을 찾아봤습니다. 원가가 워낙 높은 상품인 경우도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쇼핑몰은 사진으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데 실물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옷인데 소위 사진빨이 안 받는 옷들이 있습니다. 당시에 사진 기술이 떨어지는 쇼핑몰들이 포토샵으로 사진을 수정하면서 대량 반품 등 여러 문제가 생겼고 쇼핑몰 전문 포토그래퍼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동대문 근처에 쇼핑몰 사진을 위한 렌탈 스튜디오가 생기기 시작했고 강남 가로수길에 가면 길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10m당 한 팀씩 볼 수 있었습니다. 없는 살림이지만 카메라는 좋은 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전 처음 DSLR 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입문자용 보급형 기기였지만 렌즈까지 20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고 카메라를 손에 쥐었을 때 배워야 할 것이 늘었다는 생각에 과연 내가 이 장사를 할 수 있을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가까워 오는 새벽 늦은 시간이 되면 안면이 있는 사장님들을 찾아가 사진 촬영을 위한 옷을 빌리러 다녔습니다. 장사를 오픈하자마자 옷을 빌리러 다니는 건 굉장히 실례였기 때문에(의욕만 앞서던 초기에 오픈 시간에 옷을 빌리러 갔다가 심기 불편한 사장님께 걸려 정말 민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장조사를 하면 보통 1~2시면 원하는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손님이 없어서 한가 해지는 새벽 4~5시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17년이 지난 지금에도 길에서 버텨야 했던 그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빌린 옷들을 사무실로 가져오면 3평짜리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침낭 속에서 얼었던 몸을 녹이며 잠을 청합니다. 동대문 근처에 엄청나게 생기고 있던 고시원 같은 쪽방 사무실들...... 도매시장까지 걸어서 20분이나 걸렸지만 그마저도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2~3시간 자고 나면 다른 사무실 사람들이 출근하느라 복도가 분주합니다. 그럼 일어나서 중고시장에서 사 온 마네킹을 모델로 빌려온 옷의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상품페이지를 만듭니다. 조악하고 형편없는 사진과 상품페이지임에도 이틀이나 걸려야 상품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기회를 잡았을 때 하려고 오픈마켓 안에서 광고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품을 올려도 내 상품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나 조차도 찾기 어려운 상품이라 당연히 주문은 없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빠르게 정신력에 대미지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게 나 자신에게 달려있었습니다. 사진 기술도 포토샵을 다루는 것도 상품 선정, 가격 책정, 밥값, 월세 모든 일을 혼자서 정하고 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잠도 오지 않습니다. 하루 두 번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서 쪽잠을 자고 옷을 빌리러 다니는 것도 한 달이 넘어가니 응원을 해주던 도매 사장님들도 넌 그쪽은 아닌가 보다고 비수를 날립니다. 매일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매일 다른 쇼핑몰을 참고해서 상품페이지를 만듭니다.
두 달이 넘어갈 때쯤 내 수준이 어떻든 간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모든 정성을 쏟아부어 상품페이지를 만들고 광고를 진행해 봅니다. 일단 옷을 계속 빌리려면 내 마진보다 판매건수를 올리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서 마진도 최소마진을 붙여 가격을 정했습니다. 인기가 높은 키워드는 광고비가 엄청났기 때문에 광고비가 싼 키워드 중에 하나를 골라 낙찰받고 기다립니다. 마음은 초조하고 1분이 10분 같은 느낌으로 흘러갑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주문은 안 들어오고 정말 쓰러질 정도로 지쳐있는 탓에 눈물이 날 거 같은 기분으로 일단 침낭을 깔고 쪽잠을 청합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5~6시간이나 깨지 않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일어나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작 10개도 되지 않는 주문이지만 0이 아닌 다른 숫자가 쓰여있는 걸 상상할 수 없었던 주문 항목에 0이 아닌 다른 숫자가 쓰여있었습니다. 창문 하나 없는 사무실이라 현실감은 전혀 없었고 마치 꿈인가 싶었습니다.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라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해둔 매뉴얼을 읽어봅니다. 지금도 그 매뉴얼을 왜 만들어 놨는지 웃음이 납니다. 도매시장에 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돈 아끼느라 자주 가지도 않던 같은 건물 지하에 있는 찜질방을 가서 아직 남은 피로도 풀고 밥도 편의점 도시락이 아닌 국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웁니다. 세상 날아갈 거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들어온 주문건수로는 한 달 내내 이 정도 판매를 지속한다 해도 월세도 생활비도 그 어떤 것도 아직 해결이 되지 않지만 이미 기분만은 성공한 장사꾼입니다.
도매시장에 옷을 빌리러 가는 게 아니라 사입을 하러 가는 발걸음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오픈 시간부터 저놈이 왜 왔나 쳐다보던 도매 사장님들도 판매가 돼서 옷을 사러 왔다는 말에 정말 본인 일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은 주문이 들어온 사입을 해야 하는 상품이 페이지 작업이 너무 오래 걸려 이미 끝난 상품이 돼버린 겁니다. 도매에서 끝난 물건이라는 말은 더 이상 생산할 계획이 없는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10개도 되지 않는 주문 중에 2개나 상품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다음날 구매자에게 전화를 해서 구매 취소를 안내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는 오히려 바쁘지 않을 때 빨리 경험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지속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지자 포토샵을 다루는 손도 눈에 띄게 빨라지고 조금씩이지만 매일매일 판매건수도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택배 포장을 하고 출하시간을 맞추느라 혼자서는 그나마 쪽잠을 자던 시간도 부족했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도매시장을 돌다가 예전의 나처럼 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방황하던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손에 쥐고 도매시장의 조명을 보며 새벽 공기를 맡으며 지난 몇 달간의 이야기를 했고 사무실 바닥에서 쪽잠을 자고 식사도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꿈을 함께 하자 말했습니다. 아직 매출이 직원 월급까지 주기에는 빠듯했지만 내가 수입이 없더라도 더 이상 혼자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회사의 첫 번째 직원이 된 그 친구에게 시장 사입을 맡기고 상품페이지와 사진을 맡아 작업했습니다. 점점 사진에 대한 욕심이 생겨 피팅모델 온라인 카페에서 일당 모델을 섭외해 야외 촬영을 진행했고 사입을 맡아하던 친구가 사진을 배우고 싶어서 일 끝나고 사진을 배우러 다닌걸 저에게 말하고 자기가 촬영을 해보고 싶다고 의사를 전했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그렇게 일은 착실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20대 중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꿈은 그렇게 성공을 향해 가는 듯했습니다.
몇 달을 그렇게 서로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사업의 진도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판매건수는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늘지 않았고 매출도 꾸준히 나오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매출이 계속 늘어갈 거라 생각해서 상품페이지를 작업하는 직원도 한 명 더 늘어난 상황이라 더 넓은 사무실로 이사를 했고 지출도 훨씬 늘어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비싼 키워드에 광고를 하면 매출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광고비용 대비 늘어나는 매출은 저조했습니다. 이건 사업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경쟁이 없던 키워드 마저 경쟁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었고 광고 단가는 매일 오르는 출혈 경쟁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인원으로 더 이상 업무가 수월하지 않을 때 인원도 늘리고 사무실도 옮겼어야 했는데 너무 빨리 진도를 빼려고 한 것이 독이 되었습니다. 고생을 함께 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과 그리고 더 잘 될 거라는 자만에 빠르게 인원을 충원했던 것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또다시 사업을 말아먹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상품페이지를 담당하는 직원이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미용실을 다녀온다고 말하고 나갔습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기라고 생각되었을 때 출퇴근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자율근무로 변경을 했는데 그 당시 유명했던 구글의 업무시간에 영향을 받은 허세 일수도 있으나 혼잡한 시간을 피해서 출근을 해도 사실 셋이서 자기가 맡은 일만 잘 처리하면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업무시간 자유로웠고 근무시간에 개인적인 볼일을 봐도 상관없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직원은 근처 미용실에서 소셜커머스를 진행했고 저렴한 금액으로 그 쿠폰을 구매해서 사람이 적은 시간을 택해서 미용실을 간 거였습니다. 생소한 개념이라 그저 박리다매에 어려운 이름을 붙여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케팅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고 쿠폰뿐만 아니라 상품도 판매하는 걸 보고 이거 혹시 돌파구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소셜커머스! 이름도 생소한 새로운 플랫폼이 저의 오감을 강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