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경제를 배우게 된 청년의 이야기 - Chapter 3
어느새 누가 봐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일하는 모습이 위화감 없는 시장 사람이 돼있었고 1년 정도가 지나자 매일같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 사석에서도 능글능글 장사꾼이 됐다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타임까지 땜빵을 하거나 매출이 높으면 인센티브가 있던 시스템 때문에 열심히 일하면 기본급보다 더 많이 버는 달이 꽤나 있었고 1년 정도 지나자 대학 입학을 하면서 받았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도 돈을 조금 모을 수 있었습니다.
장사꾼으로 성공하는 미래를 그리며 하루하루 돈을 모아가던 중에 동대문은 그동안 와서 돈을 펑펑 써대던 일본 관광객이 줄어가고 중국 관광객들이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비싼 가격을 불러도 붙잡고 늘어지면 마지못해 물건을 사 가던 일본 사람들과는 다르게 중국사람 들은 흥정은 기본이었고 흥정마저 호락호락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매출을 올리던 습관이 중국 관광객들에게 통하지 않자 대부분의 가게들이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중국 관광객들은 소매시장이 아닌 도매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고 갑자기 호황을 누리는 도매시장은 그동안 거래처 중심으로 장사를 하던 기존 관습을 벗고 일반인, 관광객 누구에게든 물건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은 급격하게 상황이 변하고 있었음에도 소매시장 상인들은 누구에게든 물건을 팔기 시작한 도매시장을 욕하며 장사가 안 되는 것에 대한 우울과 분노를 해소하고 있었고 가끔씩 나타나는 글로 배운 한국 쇼핑을 시도하는(소매시장에서 도매가격을 제시하고 흥정하는) 중국 관광객들은 그저 개념 없고 재수 없는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놀랄만한 호황이나 불황이 있으면 뒤이어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온다는 걸 개념조차도 알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그저 인생 처음으로 월드컵이라는 큰 호황을 보았고 인생의 성공가도가 여기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오늘 걸린 손님에게 몇 천 원이라도 더 뜯어낼 생각을 하는 것이 시장의 순리였고 장사의 진리였습니다.
매출이 저조한 나날이 이어지면서 일 끝나고 마음이 맞는 형들과 맥주 한잔 하면서 푸념을 하는 게 일상이 돼갈 때쯤 평소 잘 붙어 다니던 형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정말 재수 좋게 가게를 접는 업자에게서 물건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물건 값은 있으나 가게 보증금이 없어서 물건을 매입해도 가게를 낼 수가 없어 고민이다 혹시 돈이 있다면 둘이서 동업을 해보지 않겠냐 라는 정말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동안 동업하지 말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던 터라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먼저 생기긴 했지만 나는 다를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최근 시장 상황이 돈 되는 시기가 몇 년 안 남은 거 같아서 3~4년 정도만 고생하고 도매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은 계획이라고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돈이 부족했던 나는 결국 대출까지 모조리 끌어서 동업을 시작했고 뭔가 잘 못 돼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밀리오레에 가게를 계약하고 물건이 들어오기로 한 날 물건을 진열하다 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유행이 많이 지나거나 상품성이 없는 물건이 1/3이나 되었고 눈탱이를 맞았다고 생각해서 물건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물건을 넘긴 업자는 이미 중국으로 간 상황이라고 일이 이렇게 된 거 상품성 있는 제품이라도 열심히 팔아 새 물건을 사입해서 좀 채우다 보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냐는 동업자의 말에 물건도 없이 돈만 떼인 건 아니니까 최악은 아니라 생각하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동업자가 내가 투자한 가게 보증금과 같은 금액을 물건을 매입하는데 썼기 때문에 수익은 5:5로 나누기로 사전에 합의를 본 상황이었고 직원 없이 둘이서 교대해가며 진열에 공을 들여 노력하니 그래도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쉬는 날 없이 강행군을 이어가던 차에 가게를 오픈하면서 결혼을 하게 되어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동업자는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되서인지 아니면 신혼이라 그런 건지 교대시간에 늦는 건 일상이고 와이프의 휴일에 맞춰 일을 쉬고 일당 알바를 채용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가게는 점점 관리가 안 되고 체력의 한계에 도달한 나도 의욕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크게 싸우게 되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동업자는 자기가 나갈 테니 남아있는 물건값이나 계산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해보자고 설득해 봤지만 정말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설득은 되지 않았고 그렇게 동업은 깨져버렸습니다.
혼자서 거의 22시간 오픈된 가게를 운영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직원을 구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 하지만 지출은 점점 감당이 안 되고 매출은 전혀 오르지 않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계약기간도 다 채우지 못한 채 가게는 정리를 하게 되었고 잠시나마 꿈꾸듯이 달고 있었던 사장님이라는 타이틀은 듣기 민망한 이름이 돼버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창업을 하게 되면 사장님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허상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을 꽤나 봐왔던 터라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다를 게 없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다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동대문을 돌아다니며 얼굴을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닙니다. 동대문 특성상 구인광고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닌 소개로 직원을 채용하는 일이 대다수였고 역시나 이 바닥 생리를 알고 있는 나였기에 1년 만에 망한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알리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다 정말 오랜만에 예전에 같이 일하던 형을 만났고 마침 식사 때가 가까워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거기서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나랑 동업했던 그 형이 매입한 옷들은 사실 나한테 말한 금액의 1/3도 안 되는 돈으로 시장을 떠나는 사람에게 넘겨받은 물건이었고 그걸 판매이익의 절반을 주고 남은 물건값까지 정산해준 나는 이 바닥의 유명한 호구가 돼있었습니다. 나와 헤어지고 나서 그 동업자 놈은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그걸 자랑처럼 떠벌리고 다녔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가게를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하고 있던 거였습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습니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부끄럽고 창피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그놈을 찾아서 죽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수소문하며 찾아다녔습니다. 만나면 가만 안 두겠다고 다짐하면서 동대문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지만 어디 가서 뭘 하는지 내가 찾고 있는 걸 누군가 알려줬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일조차 손에 안 잡히게 만들었고 이제 남은 건 가게를 정리한 돈과 이 돈으로 다만 얼마라도 빚을 줄여야 하는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써야 하는지 선택만 남아있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도매시장에 물건을 사입하러 다니면서 알게 된 도매 사장님이 내 번호는 어찌 아셨는지 연락을 주셨습니다. 할 얘기가 있으니 한번 오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분이 왜 나를 만나자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나 일자리를 소개받을까 해서 약속한 시간에 찾아갔습니다. 가게를 살리려 고군분투하던 모습이 꽤나 기특해 보이셨는지 뒤통수를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주신 거였습니다. 감사하긴 했으나 사실 위로는 되지 않아서 괜히 왔다고 생각할 때쯤 사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요즘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옷이 팔릴까 했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요즘 인터넷 쇼핑몰 하는 얘들이 도매 물건을 싹쓸이하고 있다 너는 아직 젊으니 하루라도 빨리 배워서 인터넷 장사를 해봐라 우리 집 물건 빌려줄 테니 가져다 사진을 찍고 물건이 팔리면 그때 물건값을 치르면 되지 않겠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굳건한 시장바닥 생태계를 위협하는 아니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온라인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