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6
흔히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한다.
많은 이들의 자유를 위해는 독재와 불합리함에 시민들이 맞서 싸워야 하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다수의 행복 따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실로 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김대중 대통령 이전까지는 상당한 수의 데모가 있었고 용감한 시민들이 권력자들의 부정에 대항하여 현재까지의 민주주의를 이루어 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거친 국가라면 데모는 집회의 자유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자 권리인데, 일본에 와서 놀란 것은 데모에 대한 이미지였다.
우선, 일본에서는 국가 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극단적으로 데모를 하지 않는다.
2020년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지만 흔희 볼 수 있는 데모는 우익세력들에 의한 혐오 데모(Hate speech) 정도로 정부의 정책이나 문제에 대한 데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데모가 일더라도 미디어는 이에 대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도 직접 목격하거나 한국의 기사를 보고 일본에 이런 데모가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거나 거의 유일하게 NHK 관련 기사에서 볼 수 있는 정도였는데, 후쿠시마 원전문제에서도 현지에서 많은 데모가 일어나 전국 각 지에서 퍼졌고 많은 예술, 문화인들도 나선 일본의 자위권발동 (헌법 9조) 변경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규모의 데모가 일어났지만 미디어에서는 거의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우선 , 일반 시민들의 데모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은 것
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애초에 집회의 자유라는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이는 일본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은 것도 이유로 작용한다.
이렇게 자라온 환경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인데 한국에서도 2000년 초까지 데모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사회문제나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적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사실 이상적인 것은 일반 시민들이 무관심하더라도 정치가 무난히 잘 돌아가는 것이다.
데모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 합리적으로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모든 데모가 합당하고 정의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데모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에 대한 대응과 해결이 정권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혐한데모를 반대하며 도쿄에서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이 제정되기까지도 수많은 시민들이 혐한세력에 반대하며 나섰고 카와사키시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혐한데모를 하는 이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해 시에서 헤이트스피치를 하는 이들에게 형사처벌을 내리는 조례가 제정되었다.
이외에도 불의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결코 적지 않으나 유감스럽게도 미디어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기레기가 넘치는, 미디어를 보고 바로 믿는 것도 어리석은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약자를 괴롭히고 부정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
이에 대한 저항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이며 성별, 세대, 국적을 넘어 일어난다.
카와사키시의 혐한세력에 반대하는 시민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정치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그들이 내 이웃을 그가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괴롭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라고 강한 의지로 답했다.
일본의 특성상 정치적인 부분만 건들지 않는다면 문화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제한이 없는 것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 적고 사회적 인식은 본인의 의견을 강하게 내는 것을 꺼린다는 것으로 비판과 데모가 긍정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본에서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정의를 가진 이들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변화는 더욱 긍정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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