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한국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잘 뭉치는 것 같다.
해외 주요 도시에는 한인촌이 있고 한국 가게와 한국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서 반갑다.
한국인들의 저력이라고 할까?
일본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한인촌이 번화하다.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와는 달리 많은 애증이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특히 많다.
그렇기에 도쿄뿐만이 아니라 주요 도시에는 한인촌이 있고 도쿄에는 신오오쿠보 한인촌은 특히 번화한 곳이다.
사실 필자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도 아니고 많은 친구들이 있는 편도 아니다.
해외에 살아도 여기서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거주 초기에 일로 만나는 사람들, 특히 회사 사람들과는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해 상당한 노력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먼저 말을 걸고, 더 많이 말하고 업무 이외의 일도 돕고.
언어의 장벽이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필자가 열심히 하면 친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친해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제일 가까이해야 하는 매니저는 다른 담당 가수들에게 정신이 없었고 필자의 스케줄은 일일이 본인이 챙겨야만 했고 사장은 기본적으로 바빠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드물었다.
공연 제작 직원들과는 더 어려웠다.
초기에 그들의 일을 많이 도왔는데 그들의 입장은 일일이 가르치기도 귀찮고 어차피 좀 있으면 하지 않을 거니까 신경 쓰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항상 웃으면서 대하는 것 같았지만 필자와 이야기할 때는 금방 끝내고 본인들만 아는 농담이나 화제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회식을 하거나 술을 같이 마시면 금방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의 문제는 회식이 없었다.
아니, 회식에 필자를 초대하지 않았다. 한일 국적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일본인들만 모인 자리에 본인들끼리만 모이는 회식에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반 년동안 회사와 관련된 누구와도 친해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메이크업 담당자도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전에는 일절 말을 하지 않고 대화가 없었다. 메이크업을 받는 시간대도 본인이 여러 직원을 거쳐 확인해야 했다.
뭐가 문제일까를 생각했다.
반년 정도만에 이유를 알았다. 정확하게는 공연을 시작하게 되고 나서 알았다.
단순히 필자가 옴으로 인해 일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또 지금까지 본인들이 담당해왔던 연습생들과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회사에 소속했던 누구보다 잡일을 많이 하며 동료로 인정받으려 했지만 사실 별 필요 없는 일들이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공연을 시작하며 필자의 무대를 만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어느 집단에도 스며들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초기의 회사생활은 일본에서, 일본 사회에서 10년을 버틸 수 있는 많은 경험을 주었다. 이 시기가 없었다면 포기하고 돌아왔을 수도 있다.
‘입장’에 충실한 사람들.
한국인들과 같은 ‘정’에 의한 유대감은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느낀 적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장이 회식을 하자고 했다.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점을 이해하고 난 후부터는 일할 때가 편해졌다.
상대보다 위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모든 일이 힘들다.
이것만 명심하고 일하면 대부분 이해가 되었고 일하기가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