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6
어릴 적에는 공부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책을 읽거나 관심 있는 분야는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학교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중 관심 있던 것 중 하나가 그림.
어릴 적부터 그림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고 학원에서 다닌 뒤 조금씩 두각을 보였다.
중학교 때는 크고 작은 대회에서 수상하고 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하기까지 이렀다.
그럼에 그리게 되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만화’였다.
처음에는 한국 만화만 읽었는데 어느 정도 읽다 보니 한계에 왔다.
그림체도 그렇고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며 별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케이블방송에서 봤던 애니메이션의 다양성을 생각하게 되고 커다란 차이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일본만화
2004년까지는 일본문화 금지로 인해 일본만화 자체가 양지로 언급되지 못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그림체, 창의적인 내용은 한국 만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재미와 상상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물론 애들(?)이 보기에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도 적지 않아 화면이 통째로 잘리거나 무리하게 색깔이 칠해진 것에 불만이 많았지만 점점 여러 작품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본 만화의 화보집이나 작가들이 발간한 교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교제가 아닌 화보집은 정식으로 수입되는 곳이 거의 없었고 수입이 되는 곳도 상당한 고가라서 학생이 용돈으로 쉽게 구입할 수 없었지만 용돈의 거의 대부분을 음반, 미술교제에 썼다.
여러 작품에 감명을 받았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작품이 바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超時空要塞Macross)였다.
1980년대에 나온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엄청난 작품인데, 우주적인 스케일과 전투기에서 로봇으로 변신하는 메카닉, 혁신적인 인물구성과 스토리로 극장에서 관람 후 충격을 받았다.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愛、覚えていますか)와 별도로 TV판이 있었는데 OTT로 최근에야 전 화를 볼 수 있었다.
이후 이 작품의 그림작가였던 미키모토 하루히코 님의 교본이나 작품집을 모으기 시작했고 습작을 했고 후에 OST도 어렵게 구입하고 전 사운드트랙을 거의 다 외우게 되었다.
2022년에는 도쿄에서 열린 그의 작품전도 보러 갔다.
유년기에 ‘문화충격’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현재 일본에 와서 활동하게 되고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국 만화원작의 ‘아마겟돈’ 영화판을 극장에서 보고 극심하게 실망했던 때부터. (사운드 트랙은 구입했다…..)
지금은 한국 웹툰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고 일본에서도 한국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일본의 유명작품 ‘주술회전’(呪術廻戦)은 한국인감독이 제작하는 등 과거 일본의 하청작업만 하던 시대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문화는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경과 이념을 넘어 영향을 끼친다.
일본문화가 금지되던 시절도 명작은 필자에게 영향을 끼쳤고 현재의 활동을 이끌었다.
슬램덩크에서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강백호로 국적(?)과 이름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 기억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재미있는 작품은 시공을 넘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지금은 한국의 작품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방심이나 자만은 금물이다.
순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