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7
전의 에피소드에서 기술했지만 일본 유학 시절에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전부 즐거웠던 일만 있던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음악의 거장들과 만날 수 있던 것인데.
(사진은 초상권 문제로 생략)
사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수업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SMAP 등 일본대표 아이돌의 연주 편곡 등은 물론 분메이 스타일의 록오르간 연주는 일본 최고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지만 첫 수업의 인상은 별로였다.
커피를 들고 들어와서 간단한 인사. 그리고 코드진행만 알려주고 느닷없이 자신의 스타일로 연주해 보라고 했다.
소수정원 수업인 데다 필자는 피아노의 기초가 허약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연주를 했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조금씩 포인트를 알려 주셨다.
그의 진가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연주였는데, 특이한 퍼포먼스와 연주를 눈앞에서 듣고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이후 필자는 스토킹(?)을 시작하며 수업 후에는 열심히 쫓아다니며 정보를 캤다.
일본 음악계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고 Boowy, 히무로 쿄스케, Judy and Mary, Glay 등 일본 최고의 밴드들의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학교주관 공연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첫인상은 백발의 큰 키, 엄격한 인상이었고 그도 그럴 것이 재학생, 졸업생들의 연주를 평가하는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운 좋게 학년 대표로 출전했고 일본어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긴장하며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혹평(?)을 들으며 각오하고 있었지만, 필자에 가창 스타일과 곡에 대해 상당한 호평을 해주셨고 음악활동을 계속하라도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른 평을 해주셨다.
이는 훗날 필자가 일본활동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이스북으로 그와 연락을 하며 일본활동을 결심했음을 알렸고, 필자는 꼭 사쿠마님이 필자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주시길 요청했다. 사쿠마님은 일본활동이 시작되면 얘기해 보자는 답을 주었고 필자는 기뻐했지만, 투병 중에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
후에 일본에 오게 됨을 알렸고 사쿠마님의 누님이 사쿠마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주셨다.
90년대 록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Loudness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전무후무하게 록음악으로 빌보드 차트에 들었고 뛰어난 연주력과 곡들로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필자도 밴드시절 Loudness 곡을 커버했고 영상과 음악으로만 접하다가 보컬인 니하라 님의 보컬저서를 정독하게 된 이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의 공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공연장 관계자 중에 지인이 있어 바로 무리한 부탁을 했다.
대기실에서 만나게 해 달라!
아티스트들의 경우 공연 전에는 상당히 민감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이들도 많다.(필자포함)
하지만 니하라 님은 흔쾌히 허락했고 너무나 기대하며 대기실에 들어선 순간.
아니?! 이 분은 누구지…..??
영상으로만 보던 보컬리스트 니하라 미노루는 없었다…….(이하 생략)
하지만 관계자가 필자를 간단히 소개하자 바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라고 한국어로 먼저 인사를 건넸고 필자도 반갑게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팬이었던 지라 사인을 받았고 아직도 갖고 있다.
실망감이 넘치던 필자에게 공연 시작 5분 만에 감동이.
변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일본에서 유학시절, 필자의 오지랖과 함께 수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정말 많은 공부를 했고 기적적인 만남이 있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정치와 상관없이 국경을 뛰어넘어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을 만들었다.
이후 더욱 공감하게 된 부분이지만, 뛰어난 예술가일수록 보편적인 인간애와 정의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깊은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는 필자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고 국적을 떠나 ’ 좋은 음악‘ 을 만들고 전한다는 이념을 갖게 되었다.
배우고 싶다
라는 순수한 열정은 수많은 만남을 이어주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