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9
무더운 여름이었다.
혼자 일본으로 첫 여행을 왔던 기억.
여행이라기보다는 학교 방문을 하러 왔었다.
한국에서 활동 중, 전문적인 부분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작곡, 연주, 가창, 음향, 제작전반에 걸쳐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고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기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귀’가 별로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단시간에 음악적인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느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유학
당시에 국내에는 위의 조건을 만족시켜 줄 기관이 거의 없었고 비슷한 예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에 유학경험이 있는 선배들에게도 조언을 얻으며 자료를 모으고 유학원을 돌기 시작했고 조사한 학교에 직접 자료를 청구했다.
무엇보다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장학금 제도나 최대한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유학박람회라는 행사가 있어 참여해서 여러 가지 비교를 해보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생각한 나라는
독일/영국/캐나다/미국/일본
영국은 학비와 체류비가 너무 비싸서 제일 먼저 제외되었다.
캐나다는 장학금과 함께 기숙사 제공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왔지만 졸업자 중에서 필자가 원하는 스타일을 성취한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는 미국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졸업 후의 방향성이었다. 재즈 강국인 미국에서는 모 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교육이나 재즈 연주자들이 많아 추구하는 방향성과 차이가 컸고 4년제 학교가 많아 학비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각 학교에 연락해서 자료를 제일 성실히 보내준 곳은 일본의 학교들로부터였다.
대중음악에 활동 중인 졸업자들과 방향을 구체적으로 알려 줬고 필자가 원하던 ‘음악적인 능력’ 전체를 향상시킬 수 있는 커리큘럼을 제시했다.
그래서 일단 좋다고 생각한 학교들을 전부 들러보기로 하고 일본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일본어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영어가 통하는 곳도 아니었기에 걱정을 했다.
물론 그 시기에는 지금처럼 한류가 일상적이지도 않았고 구글지도가 실용화되지도 않아 지도를 들고 전자사전으로 번역을 하며 대화를 하는 방식을 예상해야만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실행력을 발동하여 도쿄를 방문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습도와 더위에 경악을 하며 암호같이 보이는 한자와 가타카나에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그럼에도 4일간 도쿄의 유명한 학교는 전부 방문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학교에서 달갑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약속도 잡지 않고 유학을 목적으로 학교 시설과 커리큘럼을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라 K학교의 경우는 아예 관리처에서 안된다고 잘라버렸고 B학교의 경우는 지금의 일본어서 실력으로는 어차피 유학을 할 수 없다고 거절, M학교의 경우는 상당히 불편한 표정으로 억지로 교내를 조금 보여주는 정도로 끝났다.
필자의 방식이 무모한 것도 있지만 입학을 원해 해외에서 방문한 이를 이런 식으로 차갑게 대하는 곳은 입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중 한 곳은,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학교를 전부 친절하게 보여주었고 재직 중인 한국인 교수와도 만나게 해 주었고 재학 중인 한국인학생들과도 인사를 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필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중 태도가 전혀 다른 한 곳이 있었다.
관리처에 들른 순간, 익숙하게 대기실로 안내하고 한국어로 인사하는 교무원이 있었다.
가장 감동한 것은 들렀던 곳에서 유일하게 차가운 음료와 간식을 주었다는 것이다.
2시간을 넘게 넓은 학교와 시설들을 둘러보고 설명을 받았다.
물론 필자가 일본어를 거의 할 수 없었기에 느낌으로만 대충 알아 들었지만 시설, 커리큘럼의 자유도, 유학생에 대한 태도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귀국 후 결국 이 학교로 유학을 결정했고 3달간 벼락치기로 일본어를 공부해서 유학자격을 획득했다.
(B학교 관계자의 헛소리를 갚아줬다고 생각했다.)
유학 후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을 항상 귀찮게 쫓아다니며 궁금한 것을 해소해 나갔다.
담당 학과장 선생님으로부터 너같이 말을 잘하는 학생은 유학생 중에 처음 본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는데 이는 일본어를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어떤 식으로도 전달했기 때문이다.
본전을 빼겠다는 생각(?)으로 학년에서 1명 지급하는 유학생 장학금도 받았고 교내제작공연참여, 학교에서 제공하는 공연 관람은 빼지 않고 신청했다.
수업은 학점을 넘어서는 정도로 신청해서 성우수업을 듣기고 하고 기타 피아노 드럼 등 악기 기술은 물론 음향과 제작전반에 관한 것을 교수들을 쫓아다니며 수업시간 외에도 연락을 자주 하며 쥐어짰다.
휴일에는 학교 연습실이나 스튜디오로 출근했고 SSL 등 평소에 만지기 어려운 기자재는 음향학과 학생과 공동사용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커리큘럼 이외에도 사용법을 익히고 경험치를 늘렸다.
또한 재학시절에는 Loudness의 미노루 니하라 님, Gley 등의 프로듀서로 전설적인 고 사쿠마 마사히데 님, 일본 록키보드의 최고 연주자 중인 한 명 고 오가와 분메이 님 등 최고의 아티스트들에게 직접 조언을 얻고 배우는 행운을 얻었다.
현재도 연락하는 당시 선생님들은 지금은 음악 동료로서 2022년에는 재즈선생님이었던 히로세 사네유키 님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유학도 준비할 시간이 없어 급히 가게 되어 언어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필자의 지식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떠난 길지 않은 유학 생활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아티스트 인생에서 전문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겪었던 에피소드는 별로도 기술하겠다.
현재는 국내에서도 많은 수의 대중음악 교육기관과 함께 실용음악학과의 확대로 유학을 가는 이들은 줄었고 이는 상당히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한다.
어디에서 배우든 공부에는 끝이 없고 새로운 지식은 계속 태어나며 배워나가야 한다.
필자의 음악능력을 한 단계 성장시켜 준 일본 유학생활.
더운 여름에 건넨 음료수가 그 첫 발이었다.
열정을 알아보는 사람.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하나라고 생각한다.
*표지는 학교홍보잡지 모델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