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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재현 Jul 18. 2021

Made Not Born (2)

만19살 변재현이 국가와 맺은 계약

만약 100개의 다중우주가 있다면 그중 내가 직업군인을 하고 있는 경우는 몇 개나 있을지 종종 생각한다. 주변에서 왜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질문을 받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군인이 무슨 일은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복은 멋져 보였습니다.” 였다. 사관생도 제복에 대한 나의 동경과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는 나를 육사로 이끌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공직생활을 하셔서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생도들에게 지급되는 소정의 품위유지비와 전액 국비로 서울 4년제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점은 진로 선택 시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왜 육사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답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육사를 졸업하면 무엇을 하는가, 아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취업률 1등 취업 사관학교 000, 길거리 광고를 통해서 사관학교라는 상호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올바른 쓰임이 아니다. 

士 선비 사 , 官 벼슬 관 , 學 배울 학, 校 학교 교

사관학교는 관직을 수행할 사람을 양성하는 학교다. 국가에서 양질의 장교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 국가방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교육기관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개인에게 수억 원을 투자해서 4년간 양성을 했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법률 제18000호 군인사법의 제7조 의무복무 기간에 의하면 장기복무 장교의 의무복무 기간은 10년으로 하며, 다만, 장기복무 장교로 임용된 날부터 5년이 되는 해에 한 차례 전역(轉役)을 지원할 수 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졸업하면 임관과 동시에 장기복무 장교로 임용된다. 5년 차 지원도 일정 인원만 가능하도록 군에서 인사관리하고 있으니 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빨라야 30대 중반이 되어야 군복을 벗을 수 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육사는 입학하는 것보다 졸업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입학이 곧 졸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입교자 중 82.7%만이 소위로 임관했으며, 지난 10년간 육사 퇴교자 243명에 달한다.[1] 퇴교자의 사유는 개인마다 무척이나 다양한데 개인의 희망에 따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교칙으로 정한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육사가 제시하는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자유 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한 국가관 확립  

2. 위국헌신의 군인정신과 리더십 함양

3. 군사전문가로서의 기본소양 함양 (부대 지휘능력 함양)

4. 창의적 · 통합적 문제 해결 능력 배양  

5.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연마  

위 5가지 학교 교육목표를 달성한 사람만이 소위로 임관할 수 있다. 군인에게는 신분과 계급이 있는데, 사관생도라는 신분에서 장교로 신분의 전환을 하는 것이다. 위 5가지 자질은 수억 원의 세금으로 양성되는 장교들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가가 육사에 부여한 임무는 올바른 가치관 및 도덕적 품성과 군사전문가로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국가와 군에 헌신하는 정예장교 육성이다. 사관학교 졸업생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그 이름에서부터 자명했다. 제복을 동경했던 만 19살의 필자 변재현은 장교로서 군과 국민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국가와 '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 변재현의 국가와의 계약을 통한 재사회화 과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필자는 ‘21년 군 위탁교육에 선발되어 국방대학교관리대학원에서 운영분석을 전공하고 있다. 임무는 국방자원의 (예산, 인력, 물자 등) 효율적인 운영에 최적화 기법 및 의사결정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는 인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책 표지에서 스스로를 문과형 인간이라고 기술했는데, 지난 30년을 문과로 살았던 필자가 다시 이과형 인간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매일 드라마틱하게 겪고 있다. 이 역시 나의 선택이며, 군에 필요한 장교로 거듭나고 있다고 확신하며 매 순간 학업에 임하고 있다. 몇 개의 다중우주가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어떤 우주에서도 군인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 생각한다. 이는 군인이라는 소명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래도 이제는 왜 군인이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생에서 나는 스스로 군인의 길을 택하였고 육사는 나를 군인으로 만들었다." 

대학생 최위진에게 주어진 첫번째 면접 질문’

R.O.T.C는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의 약자로, 학군단이 설치된 4년제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군사관 후보생을 선발하고, 2년간 군사훈련을 거쳐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는 병역제도이다. 

제도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대학생활과 연계한 장교양성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임관 후 학과와 연계된 병과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의무복무 기간은 2년 4개월이며, 경우에 따라 장기복무를 희망하는 장교들은 선발 절차를 거쳐 장기복무를 할 수 있다. 나는 이 '경우에 따라' 장기복무를 희망하여 장기복무 중인 학군 장교다.

R.O.T.C 제도가 제시하는 교육 목표와 지향점은 다음과 같다.

‘지 · 신 · 용 의 교훈이 내재된 문무를 겸비한 장교’

학군장교들에게 내재하여야할, 그리고 복무 간 계속 좇아야 할 가치로, 내게는 지금도 가슴 속에 품고 지내는 가치이며 나의 지향점이다.

지금은 꽤나 오래전 일이지만 선발 과정이 명확히 복기 된다. R.O.T.C 선발 면접 당시, 대학생 최위진에게 처음 온 질문은 [당신이 군에 지원한 동기가 무엇인가] 였다.

군인이 된 이유, 지원한 동기는 군문에 들어서는 순간에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처음 발을 딛는 순간에는 물론이거니와,군인으로 살아가며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자주 하게 되고 받게 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할 때, 가장 많은 빈도수를 차지하는 대답은 무엇일까? 아마 ‘애국심, 충성심’이 포함된 대답일 것이다. 

지금 이 시각 우리나라의 국방을 책임지는 모든 이들은 애국심과 충성심이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공통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본 장에서는 사(私)적인 이유를 당시 대학생 최위진의 대답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선발면접 당시 나의 대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전투복] 때문이었다.

당시 나에게 전투복은 막연히 ‘멋있었다.’ 외형적으로 멋있는 무엇인가였고, 그 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담긴 의미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던 것 같다. 멋있는 대상이기에 관심이 계속 갔고, 그러다보니 그 전투복이 갖는 근본의 의미에까지 관심이 확장됐다.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에까지 관심이 확장된 순간, 더 큰 멋이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전투복이 주는 ‘멋’을 알아갔던 것이 이 길의 시작점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의미있는 삶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의미있는 삶에 대해 무척 복잡하게 바라보고 정의하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어야 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는 삶이어야 하고, 인류에 어떤 부분에서 기여를 하는 삶 등. 이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는 삶은, 당시 생각에서 군인으로의 삶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 생각은 변함없다. 마찬가지로 입대 후 복무 간에도 늘 돌이켜보며 군인이 된 이유에 대해 자문했다. 물음에 대해 앞서 기술한 두 가지 이유가 즉각적으로 대답 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다른 의미가 추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군 복무 시작의 이유였기에, 지금도 군복무의 큰 방향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이유다. 

입대 후 장기복무 선발 면접, 위탁교육 선발 면접 등 각종 면접에서도 군인이 된 이유가 주된 질문이었다. 군인이 되고 나서의 나의 대답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적성의 일치]이다. 

다시 말하면 군대 생활이 적성에 맞고, 복무 간 적성에 따른 성과를 마주한 순간이 많았다. 군대에서의 적성이라함은 군 내 다양한 병과와 보직, 업무가 있기 때문에 한정 지어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연구분야에 복무하는 이들에게는 연구직의 적성이 필요하고, 전투원으로 현장에서 임무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전투원으로서의 적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군인의 적성은 한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 이전에, 군 복무에서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이라던가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드리는 정도가 나는 타인의 것에 비해 덜했다, 이것이 내게는 적성이라고 여겨져, 내 적성과 군인으로서의 삶은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입대 전 이유와 연계해서 전투복이 늘 내게 주는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을 좇아가고 있다.

어떤 때는 과업에서 느껴질 수 있는 스트레스로, 어떤 때는 날 가장 잘 설명해주는 나 자체로, 어떤 때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어떤 때는 애국심, 충성심, 책임감, 희생 등 내게 다채롭게 다가온다. 늘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전투복이 내 복무의 원동력이고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이다. 

가지 않은 길

모두가 정중부의 아들 정균처럼 장군감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결정론적 세계보다 누구든지 노력을 통해 장군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 모두가 군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는 군인이 돼야 한다. 

이 장을 통해 거시적·미시적 차원에서 군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아직 살면서 ‘장군감’이라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고 애석하게도 이미 그런 말을 들을 나이는 지났다. 비록 그런 칭찬은 듣지 못했지만 우린 각자가 정한 목표와 기준에 따른 선택을 통해서 군인이 되길 택하였다. 그리고 국가와 군이 정한 프로세스를 통해서 군인으로 만들어졌다.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크게 쓰려면 잘 만들어야 한다. 각자의 삶을 영위했던 청년들을 잘 재사회화해서 강한 군인으로 만드는 것은 국가와 군대의 역할이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필자들은 인생에서 가장 밝게 빛났던 20대 시절 대부분을 군에 바쳤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희생들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군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기에 선택에 후회는 없다. 동시에 가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통해서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 나의 선택이 곧 나 자신이며, 우리는 그를 통해 군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필자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한 편의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1916年作)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1] 민홍철 의원, 사관학교 임관율 92.4%에서 86.2%로 6.2%p 하락 (프레시안, ’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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