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재현 Sep 03. 2021

군대 가면 공부 안 한다고?

끊임없이 배우는 직업, 군인

군대 가면 공부 안 한다고?

두 저자 모두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 (라고 생각한다) 둘 다 대기만성형 스타일로 고등학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능시험 오지선다 답안지를 통해서 학업능력을 평가받았다. 2010학년도 수능에 응시했던 수험생은 총 638,216명으로, 재학생은 503,095명이고 졸업생 등은 135,121명이었다.[1] 60만 명이 넘는 수험생들의 학업능력이라는 정성적 개념은 시험 점수라는 정량적 척도로 표현된다. 아쉽게도 두 저자 모두 수능시험에서 본래 목표했던 만큼의 좋은 결과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만족감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아마 더 높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아쉬움은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수험생활을 열심히 했고 후회는 없었기에 ‘재수’ 없이 대학에 입학했다.


변재현 대위의 경우 공부에 질렸다는 표현을 감히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19살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또 자연스럽게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면 군인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앞으로 공부는 많이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위진 대위도 학군 후보생으로서 군에 입대하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예 후보생을 거쳐 장기 복무 장교의 삶을 이미 꿈꾸고 있었으며, 그런 이유로 대학교 4년 동안 학점관리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왜 군대 가면 공부를 많이 안 해도 되니까! 잠깐 변론하자면, 저자 둘이 단순히 공부가 더 하기 싫어서 군인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대에 가면 공부는 많이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총 잘 쏘고, 달리기 잘하고, 튼튼한 신체와 정신을 겸비하면 충분히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착각이었다. “군대에 가도 공부를 계속해야 했다.” 그것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배움에는 끝이 없고, 군인도 예외는 없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 논어, 학이(學而)


유교문화권 국가들이 특히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자의 논어에 등장하는 첫 한자가 학(學)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간다.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좋은 말씀 중 “배움에는 끝이 없고,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는 진부한 문장의 출처가 논어인가 싶다. 공부(工夫, study)의 사전적 의미는 무언가를 익히는 것 또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실시하는 계획성 있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다. 좁은 의미로는 보통 책 따위를 펴 놓고 학문을 닦는 것을 일컫지만, 넓은 의미로는 어떤 지식ㆍ기술을 탐구하는 것은 모두 공부이다. 이런 사전적 정의를 바탕으로 생각해본다면,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는 클리셰(cliche)는 꽤 타당성 있게 느껴진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는 끊임없이 변한다. 변화를 이끌거나 혹은 앞서거나 아니 적어도 따르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지엄한 섭리다. 앞서 「군대의 미래, 그리고 군인」에서 언급하였듯, 군대도 끊임없이 변하는 중이다. 물론 군인이 제일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주장하는 바는 아니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각자의 위치에서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학습하며 살아간다. 그게 반드시 활자로 인쇄된 지식일 필요는 없다. 만약 내가 치킨집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라고 가정해보자. 유행하는 치킨 소스의 종류, SNS를 활용한 저비용·고효과 마케팅 방법, 배달 플랫폼에서 좋은 리뷰를 받는 방법 등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끝이 없다. 배움을 통해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군인이 배움을 통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성문화 된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군인은 배움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병사는 개인화기를 포함한 모든 개인 전투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병기본훈련은 기본이며, 주특기에 따라서 요구되는 전문적인 능력도 다르다. 매 분기 자격인증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평가받고 그 결과는 병 진급에 반영된다. 우수한 병사는 조기 진급의 영광과 달콤한 휴가증을, 기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진급 누락 등의 불이익이 기다린다. 이렇듯 의무복무 중인 병사들도 임무 수행을 위해서 많은 학습이 요구한다. 직업군인이자, 군 리더라 불리는 간부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학습이 요구하며, 이는 책무로서 규정에 명문화되어있다. 국방부 훈령 제2273 호 `부대 관리 훈령`에는 장교와 부사관의 책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장교는 군대의 기간이다. 그러므로 장교는 그 책임의 중대함을 자각하여 직무수행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건전한 인격의 도야와 심신의 수련에 힘쓸 것이며, 처사를 공명정대히 하고, 법규를 준수하며, 솔선수범함으로써 부하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아 역경에 처하여서도 올바른 판단과 조치를 할 수 있는 통찰력과 권위를 갖추어야 한다.


부사관은 군 전투력 발휘의 중추적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부사관은 군사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책무를 진다.

나. 전투기술자로서 해당 무기체계 및 장비의 운용 및 유지보수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다. 기능 분야 전문가로서 전투력 발휘 및 유지와 관련된 지원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위를 통해 직업군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으로 전문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성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군인 스스로 노력이 필요하며, 그 노력이 바로 공부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군사전문가 : 군사교리와 군사사 학습을 통해

인터넷에서 의학 관련 기사를 읽거나 영상을 시청한다고 하여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수련의 과정이 요구되며, 한 분야의 명의(名醫)가 되기 위해서는 최신 의학 논문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물론 수십 년의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인도 전문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군사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전문성을 획득하는 것은 단순 흥미에 기반한 일회성 지식의 습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군대는 전쟁을 위해 준비된 집단이며, 현대의 전쟁은 국가의 명운을 거는 총력전의 양상을 띠고 있기에 더 신중해야 한다.


1953년 7월 27일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따라 한반도는 전쟁을 휴전 중인 (armistice) 상태에 머물고 있다. 미치광이 전쟁론자를 제외하고, 명분도 없이 자국의 영토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는 것을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군은 끊임없이 적을 주도면밀하게 경계하고 있지만, 임박하고 긴급한 위협이 전제되지 않으면 적에게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는 대부분 군인들은 실제 전투 경험이 없다. 하지만 부족한 전투 경험을 채우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군사력 6위의 강력한 대한민국 국군이 보유한 무기는 사용되지 않을 때 더욱더 가치 있다. Peace through Power! 우리의 강한 국방력으로 적을 압도하여 감히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손자가 말한 부전승사상(不戰勝思想) 이다.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나약했던 고등학생인 주인공 송병태(재희 역)는 강해지고 싶어서 전설적인 싸움의 달인 오판수를(백윤식 역) 찾아간다. 그리고 고수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싸움에 반칙이 어딨어? 싸움엔 룰이 없는 거야." 이 말에 일부분은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100% 동의하진 않는다. 태극권 · 검도와 같은 전통 무예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비법을 담은 책이 존재하며, 수련에 임하는 자는 이를 통해서 심신을 단련한다. 복싱을 배운 사람은 상대의 한 두 번의 펀치만을 관찰하고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진정한 고수는 아무렇게 마구잡이로 싸우지 않는다. 군대는 국가가 유일하게 허락한 무장한 조직이며, 당연히 모든 군인은 전투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군인이 따라야 하는 싸움의 법칙은 군사교리를 통해 습득할 수 있다. 교리란 현존 전투력을 갖고 싸우는 방법을 체계화한 기본적 원칙 · 준칙을 말하며, 군사교리는 군사적 목표를 위해 국가적 여건을 고려하여 군사행동의 지침으로 승인된 군사행동 체계를 뜻한다.[2] 군사교리를 공식적인 문서로 만든 것이 바로 교범 (Field Manual, 敎範)이다.[3] 교범은 야전 교범과 기술 교범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야전 교범은 군사 교육과 작전에 관한 지시 · 첩보 및 원칙 사항과 참고 자료가 포함된 발간물이며, 기술 교범은 군의 주요 장비와 물자의 운용을 위한 원리 · 설치 · 사용 · 장비 점검 등에 관한 내용과 여기에 필요한 수리 부속품 · 특수 공구 목록과 전문 기술이 필요한 업무 수행을 위한 지식과 지시가 수록되어 있다.

<군사교리의 이해> [4]

이렇듯 교범은 군인에게 나침반과 지도가 되어준다. 교범을 통해서 각개 구성원에 대해 군사에 관한 개념을 통일할 수 있으며, 군사력의 사용 및 운용개념 전파한다. 교범은 “전장에서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라는 하나의 물음에서 출발하여 군인들에게 전쟁 수행개념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승리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결집할 수 있다.


군인의 전문성 획득을 위해서 군사교리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군사사(軍事史)에 대한 학습이다. 군사사는 전쟁, 안보, 군대 등의 주제와 관련된 역사로서 세부적인 학과목으로 전쟁사, 군사사상, 전쟁과 기술, 군사제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과거에 군사사는 협의의 군사사로서 전쟁사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군사사는 광의의 군사사로서 연구 범위가 크게 확대되어 군사제도, 군사사상, 민군관계, 군사문화 등 여러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광의의 군사사는 단지 전쟁사만을 의미하지 않고 각종 군사 인력, 전쟁 양상(육ㆍ해ㆍ공군의 전투방식 등), 군사제도, 그리고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자연, 문화와의 상호 관계를 연구의 초점이나 주제로 삼는 모든 역사적 연구를 포함한다. [5]


프로이센의 정치인 비스마르크는 “우매한 자는 직접 체험을 통해서 배우려 하지만 현명한 자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라고 말했다. 군인이 군사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군사사 학습이 실질적인 직무 수행 능력 향상에 매우 실용적인 도구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위한 지혜를 습득하는 데 있다. 그래서 군사사는 군인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한 지혜의 창고가 되어준다. 전쟁에 대 비하는 군인들은 평시에 직접 전쟁을 실험할 수 없으므로 군사사의 간접 경험을 통하여 유용한 지식과 교훈을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모든 나라 군사 교육 훈련 학교들은 교육과정에서 군사사를 중요한 필수과목으로 택하고 있다.


이처럼 군사사는 군인, 특히 군 간부의 전략적 통찰력과 리더십을 기르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되어왔다. 나폴레옹은 “알렉산드로스, 한니발, 카이사르, 구스타브 아돌프, 튀렌, 유진, 프리드리히의 전쟁사를 몇 번이고 음미하여 정독하라. 그리고 그들을 본받 아라. 이것은 전쟁술의 비결을 배우고 위대한 장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5] 군사사는 또한 군인들의 직업의식과 소속감을 고무시키는 학과목으로써 매우 중요하다. 역사학의 분야는 통상 전공 주제별로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외교사, 기술사, 종교사, 사상사, 여성사, 군사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군인들은 군사사에 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과거 선배 군인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하여 전문성 함양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 직업의식과 책임감 및 자신감을 함양시킬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사용했던 기준을 통하여 직무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며 전쟁에서 요구되는 중대한 책임감과 리더십 등의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의 짧은 생의 주기를 고려한다면, 아무리 실전과 실무에서 경험을 많이 쌓더라도 그것은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방대한 분량의 간접 경험과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군사사를 충실히 공부한 군인은 간접적이지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군인도 융합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혁명에 기반하고 있는 물리적 · 디지털 ·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 융합의 시대’로 정의했다. 그리고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 인재상으로 ‘융합형 인재’를 꼽는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교육부는 문과와 이과를 통합해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7] 융합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등 서로 다른 분야가 합쳐져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산소와 수소가 만나 물이 되듯이 서로 다른 것이 합쳐져 새로운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경계를 허물고 新영역을 개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군대에도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은 더욱 대두되고 있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그중 일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왜 군인들에게 군사 분야를 제외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인가?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간다. 만약 기술이 필요하면 민간의 전문가를 위탁하여 활용하면 되지 않는가?” 물론 군대 외부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많으며, 그들은 본인의 분야에서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군인이 아니며, 이는 국방 분야 도메인 지식의 부재를 뜻한다. 방산업체에서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연구자가 자신이 만드는 무기의 제원과 원리를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연구자는 군인이 아니다. 설령 이전에 의무복무를 통해 군대를 경험했다고 가정해도, 그것은 군대의 극히 일부를 잠깐 보았을 뿐이다. 연구자는 무기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무기를 개발할 수는 없다. 왜 해당 무기체계가 필요한지ㆍ어떻게 전술적으로 운용할 것인지ㆍ얼마나 배치할 것인지 등을 판단 후 현역 군인들이 소요를 제기한다. 그리고 이는 매우 복잡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무기체계의 성능을 의미하는 작전운용성능(Required Operational Capability, 이하 ROC)은 합참에서 무기체계 소요를 결정할 때 함께 결정된다. ROC는 무기체계의 획득은 물론 전술적 운용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ROC는 군사전략 목표 달성을 위해 획득 이 요구되는 무기체계의 운영개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성능 수준과 무기체계 능력을 제시한 것으로 주요 작전운용성능과 기술적·부수적 성능으로 구별된다. 주요 작전운용성능은 합참에서, 기술적·부수적 성능은 방사청에서 결정한다.[8]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이 투입되는 개발사업이라면, 그 중요성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전쟁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소요군 입장에서는 성능이 더 좋은(Better) 무기체계를 가능한 한 빠르게(Faster) 전력화하기를 원하며, 무기체계 획득 관계자는 소요 군의 요구사항에 더하여 효율적인 사업관리를 통하여 최소의 비용(Cheaper)으로 무기체계를 획득하기를 원한다. 이 과정의 실무를 맡은 군인은 아마도 많은 부담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본인의 실수가 국방예산의 낭비는 물론이고 연구개발에 차질을 빚어 계획한 군사력 건설에 제한사항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잘못되거나 과도한 ROC 설정에 대한 문제를 국회에서 제기하거나 언론에서 보도하여 무기체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기도 하였다. 그 예를 살펴보면 K2전차는 시험평가 과정에서 시속 32km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ROC인 8초를 충족하지 못하여 9초로 수정한 사례와 최근 파워팩 문제로 인하여 전력화가 지연되고 있음이 보도되기도 하였다.[9] 이는 군인의 전문성을 함양의 필요성을 바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 독자들은 필자들이 군대 내 융합인재의 필요성을 설파하기 위하여 방위산업 담당자라는 흔하지 않은 사례를 제시한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잠시 전투부대의 사례로 눈을 돌려보자. 일반적으로 보병사단의 보병대대는 3개의 소총 중대 1개의 화기 중대 1개의 본부중대 및 참모부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보병대대 화기 중대장이 융합형 인재라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직면한다면, 어떻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화기 중대장이 운용하는 박격포는 기동부대의 전투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 위하여 화력 수단의 경량화와 신속한 화력지원이 요구되고 있는 현대전의 특성상 기동력과 살상력이 강력한 그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시 방어진지를 구축한 상황에서 아군의 전방에 대규모 적이 출현했다면, 화기중대장이 지원하는 아군 부대는 다수의 화력 요청을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표적을 즉각 사격할 수 없는 대기 표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직전 표적 사격 후 대기 표적 사격까지 대기시간 동안 적이 이동하여 명중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아군의 요청에 즉각 부응하여 화력을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은 교전 상황에서 패배로 귀결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화기 중대장이 참고할 수 있는 다양한 군사교리에서 (교범, 교육 참고 등) 화력 운용에 대한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국방 도메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화기중대장이 위 문제점을 수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모델링을 구축한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현역 육군 장교가 앞서 기술한 문제점에 대해서 대기행렬 모형과 마코프 체인을 활용하여 하나의 답을 제시한 논문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는 참고하기를 바란다. [10]


비단 박격포의 사례뿐만 아니라, 이러한 융합적인 사고는 다양하고 보편적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공군의 동원관계자라면 전시에 필요한 민간항공기 소요를 판단해야 하며, 해군의 정비 담당자라면 장비 수리율을 고려하고 서비스 제공 시간을 예측해야 한다. 앞선 선임자가 만들어 놓은 훌륭한 매뉴얼이 물론 존재할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그냥 하던 대로 똑같이 업무를 수행해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무비판적으로 전례를 따르는 군인보다 비판적인 시각과 창의력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인 군인을 더 바라지 않을까?


앞서 필자들이 제시한 사례들이 대부분의 현역 군인들에게 다소 무겁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또 이 책이 군대를 소개하는 입문서의 성격임을 고려한다면, 그 거리감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부끄럽지만 필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하고 지금도 각자의 전공 분야 학업을 통해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 바로 달리기를 할 수 없다. 뒤집고 · 되짚고 · 기어가고 · 일어서고 · 걷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뛰어놀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만약 내가 미사일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육군 포병장교인데, 향후 미사일 전문가로 성장을 꿈꾼다고 가정해보자. 미사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대에서 근무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면 좋겠지만 (직접 경험), 사령부와 같은 전략부대는 신임 장교가 배정받아 근무하기에 어렵다. 차선의 선택으로 우선 출판물을 기반으로 한 간접 경험을 통하여 관련 지식을 쌓는 방법이 있다. 군에서 발간한 미사일과 교범을 우선 탐독하고 부족하다면, 시중에 출판된 도서를 구매해서 읽을 수 있다. 미사일은 무기체계 추진사업 중에서도 매우 주목을 받는 분야이기에 관련 기사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일례로 국방부가 발표한 `2022~2026 국방중기계획`을 살펴보면, 2022년부터 5년간 군의 전력 증강을 위해 315조2천억 원의 국방비가 투입될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점은 파괴력이 증대된 지대지·함대지 등 다양한 미사일을 지속해서 전력화하겠다는 국방부의 의지를 재확인한 점이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21년 5월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에 따라 기존 지 상표적 위주 타격에서 갱도와 건물 파괴가 가능하고, 오차 면적을 테니스장 크기에서 건물 출입구 정도로 줄여 정밀도가 향상된 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라 천명했다.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전력>[11]

미사일 전문가를 꿈꾸는 포병장교가 이런 정보를 학습하고 전문가가 되기로 노력한다면, 본인의 군 생활 간에 국방부의 청사진이 실현되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미사일 전문가가 반드시 현역 군인일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최근에 출판된 미사일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담은 도서 「미사일 바이블」의 저자는 군인이 아니라 대표적인 방산업체 LIG넥스원의 수석연구원이다.[12] 넓은 시야를 가지고 관심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를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 연합작전을 주도할 전문가로서 성장을 기대하는 육군 보병 장교라면 어떨까? 우선은 카운터파트너인 미군과 전술적 식견을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 회화 능력은 꼭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군의 군사 영어와 관련된 군사교리도 이해해야 한다. 놀랍게도 네이버에 군사 영어라고 검색하면 한국어로 출판된 책만 수십 권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미군은 대부분의 교범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정보가 없어서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은 통하지 않는 변명이다. 물론 전투병과의 초급장교가 미군과 같이 훈련을 받거나 협력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필자 변재현 대위는 1차 중대장 보직 중에 해당 경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군 육군 항공 부대와 미군 측 육군 항공부대와의 연합훈련이 있었는데, 목표지역 공중기동 후 패스트로프[13] 훈련을 실시할 지상군 부대로 우리 대대가 선발되었다.


<제55사단 기동대대 장병들의 패스트로프 훈련>[14]

그리하여 미군 부대 측에서 작전 브리핑을 위하여 대대를 방문하였는데, 변재현 대위가 통역으로 참석했다. 브리핑 참석 및 향후 필요한 세부 사항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미군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패스트로프 관련 교범을 찾아보았고 [15] 이해가 잘 안 될 때는 관련된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았다. 일정 기간 이상 군 복무를 한다면 미군과의 연합훈련에 참여할 기회가 반드시 또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연합작전의 전문가로 성장을 꿈꾼다면 이런 노력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계속 공부하는 군인 : 리더(Leader)는 리더(Reader)다.

두 필자는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사실 군인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군 중 하나임을 수년간의 군 복무를 통해 깨달았다.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함께 싸우는 동료와 부하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사람들임을 인식한다면, 군인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의무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지식의 총량은 사실상 무의미함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식보다 지혜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와튼스쿨의 Russell.L.Ackoff 교수는 DIKW (Data-Information-Knowledge-Wisdom) 모형을 통해 지식보다 지혜를 얻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획득한 데이터 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해 그것을 지식으로 가공하고, 지식을 통하여 지혜를 얻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공부의 방향이다. 그리고 군 리더의 지혜가 축적되어 빛을 발할 때 선진강군의 미래는 현실이 된다.

<DIKW 피라미드 모형의 도식화> [16]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질문과 그 답이 군사교리에 수록된 것은 아니다. 군사교리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작성되었고, 완성된 진리가 아니라 발전해간다. 그리고 발전은 공부하는 군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모든 군인이 전술한 바처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융합형 인재가 될 수는 없다. 교육계에서 주목받는 다빈치 형 융합인재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가 회화, 건축, 기계, 해부학 등에서 방대한 업적을 남겼듯이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말한다. 애석하게도 다빈치는 인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업적을 남긴 천재 중의 천재며, 대부분의 사람은 천재가 아니다. 전하고 싶은 점은 모든 군인이 다빈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틀에 박힌 사고를 넘어서는 시야를 가진 군인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다양한 군사 문제에 (박격포 대기시간, 전시 동원 소요 산출 등) 접근할 때도 이런 넓은 시각을 견지한다면, 지금 당장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방법론이 있을까 공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능력을 우리는 통찰력(insight) 또는 지혜라고 부르며, 그것을 기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공부다. 전투, 교전과 같은 직접 경험에 의한 공부가 제한되는 군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차선의 해결책은 간접 경험을 통한 학습(reading) 일 것이다. 군사사를 배움으로써 전쟁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를 다양한 사례에 적용해 본다면, 본인만의 전쟁 관을 확립할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명장들의 꾸되이(coup d`oeil), 즉 전략적 혜안은 오랜 고찰과 사색을 통하여 생긴다고 말했다. 인류에게는 수많은 전쟁 사례가 있으며, 이를 학습하는 것은 통찰력을 증진하고 전장에서 부딪치는 많은 우연성을 최소화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군인은 모두 리더이며, 승리하는 리더(Leader)는 공부하는 리더(Reader)다.


<배경사진 출처>

커피 한 잔에 책 한 권, 군 생활 활력 충전소 (국방일보, '2021.02.18.)


<각주 및 출처>

[1]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2009.12.08)


[2] 출처 : 군사용어사전 (이태규, 일월서각, 2012)


[3] 군사방침, 전술, 기술, 교육훈련 등에 따르는 지시와 장비, 검사 등. 참고사항을 기술한 간행물로써 야전교범(FM)과 기술교범 (TM)이 있음


[4] 군사교리의 정의 – KOCw (http://contents2.kocw.or.kr/KOCW/)를 참고하여 재작성 함


[5] 군사사의 중요성과 학습방법 (정토웅, 군사연구 제127집)


[6] 나폴레옹의 전쟁금언 (데이비드 G. 챈들러, 1998),  p.260.


[7] 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는 문·이과 구분 없이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국어·수학 영역에는 공통과목+선택과목 체계가 도입되고, 사회·과학탐구 영역은 17개 과목 중에 2과목을 고르게 된다.


[8] 국방부,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 2017, p.237.


[9] 무기체계 작전운용성능(ROC)의 수정 원인 및 최소화 방안 연구 (오원진, 한국방위산업학회지 2018, vol.25, pp. 68-82


[10] 대기행렬모형을 활용한 육군 박격포중대 운용방안연구 (고성혁&윤봉규, 한국경영과학학회, 2020)

* 해당 논문은 소부대 분권화 시나리오를 통해 소대에 할당하는 박격포 문수를 조정하여 최적의 결과 값을 제시함


[11] 내년부터 5년간 국방비 315조원 투입…최강 파괴력 미사일 개발. (연합뉴스, 2021.09.02.)


[12]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미사일에 관한 모든 것, 미사일 바이블을 (이승진, 플래닛 미디어,2020)


[13] FRIES(Fast Rope Insertion Extraction System)라고도 불리는 패스트로프는 헬기에서 굵은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훈련방식이다. 헬기 자체가 착륙할 수 없는 곳에 헬기의 병력을 배치하는 데 유용하며, 10-20m의 위치에서 빠르게 강하하는 훈련이다.


[14] “용어 어렵고 사명 광범… 승리 이론이 없다” (국방일보 '20.07.31.)


[15] USSOCOM MANUAL. Number 350-6. 15 September 2011. Training. SPECIAL OPERATIONS FORCES BASELINE INTEROPERABLE ROTARY WING AND TILTROTOR.


[16] [고영혁의 데이터 액션] 빅데이터 피라미드 (서울경제, 2017.01.31.)

매거진의 이전글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아닌 탁월함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