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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재현 Feb 17. 2024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길다.

적자생존, 기록을 통해 강해지는 나

혹시 1년 전 오늘 여러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고민이나 걱정들이 기억나시나요? 아니면 한 달 전에 읽었던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구는요?   


솔직히 저는 가끔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나질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때로는 아프게 했던 문제들은 조금씩 잊힙니다. 물론 불행한 기억들만 사라진다면 큰 축복이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들 또는 특별한 순간에 느낀 감정들처럼 소중한 기억들도 조금씩 잊혀갑니다. 기억은 신의 선물,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격언처럼 잊어버린다는 것 역시 당연한 생명의 자연스러운 섭리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기억, 필요한 정보들이 개인의 의지에 반하여 희미해져 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기록하는 습관이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은 1864년 영국의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가《Principles of Biology》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인간들의 사회적 생존경쟁의 원리를 함축시킨 사회-철학 용어[1]입니다. 이후에 세계적인 생명학자인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에 의해서 생물체나 집단체의 다양한 환경 적응력이 높을수록 오래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가진 진화론 영역의 과학 용어로 더 확고한 뜻으로 발전했습니다. 강한 존재(적응력이 높은)가 오래 살아남는 적자생존이 기록하는 습관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아마 어디선가 들어보셨겠지만, 이 적자생존이란 용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적이나 인터넷 블로그에서 “적으니까 생존했다.” 또는 “적는 사람이 생존한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역사는 승자의 역사였고, 기록하는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 또한 기록하는 습관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적는 자가 생존한다고 하였나요? 우리의 기억은 짧지만, 당신의 기록은 길기 때문입니다. 희미한 기억보다 한 줄의 명확한 기록이 더 강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저는 일기를 쓰는 것을 하루의 필수 루틴으로 삼고 있습니다. 과거 육군사관학교에서 수학하던 사관생도 시절에는 ‘수양록’이라는 이름의 일기장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손으로 직접 쓰는 행위가 품이 많이 들어 그런지 가끔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경우에만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평범한 계기로 꾸준한 기록 습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스마트폰 앱으로 기록 플랫폼을 바꾸면서였습니다. 그 후 2016년부터 저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아니 순간을 기록한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당시에 저는 기록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종이 대신에 스마트폰 앱(Daygram)을 활용해서 하루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장벽을 낮춤으로써 기록을 남기는 빈도가 자연스럽게 증가했습니다. 이전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만 일기(기록)를 작성했지만, 이제 기록은 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날의 평범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생한 사건에 대한 제 생각을 기록하는 분량을 늘려갔습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그 속에서 느꼈던 제 감정과 생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록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꼈던 순간을 소개합니다. 2017년도에 군 위탁교육에 선발돼 약 7개월간 미국에서 군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가를 대표해서 군사 강국에서 교육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선발의 기쁨은 사실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향하는 13시간의 비행기 안에서 당시 제가 작성했던 일기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졌습니다. 왜냐하면 미군의 군사교육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과정이었고, 무사히 수료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일기장에는 선진 군사강국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무사히 교육을 잘 마치고 귀국할 수 있겠지?”와 같은 걱정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7개월 동안 정말 치열하게 배우며 생존했습니다. 가능한 한 매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부대로 복귀 없이 1주일씩 이어지는 고된 야외 훈련이 끝날 때 찾아오는 감동을 적어나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스러운 신체의 반응과 심리적 압박감 역시 놓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배울 수 있는 지식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일기장에는 7개월의 시간을 꼭꼭 눌러 담은 소중한 기록들이 쌓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행 비행기에서 그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았을 때 받았던 감동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당시 일기를 읽으면서 힘을 얻습니다.   


“그래, 어렸던 내가 더 힘든 순간도 이겨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 당시보다 더 성숙했으니 당장 눈앞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겨낼 수 있어!”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기록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선물입니다.  


아마 내가 기록으로 선명하게 당시의 감정을 남기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또렷하게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00 훈련을 했다 등)만 기록하고 느꼈던 감정이나 솔직한 마음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약 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당시를 회상한다면, 아마 “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만 떠오를 것입니다. 만약, 제가 사건의 나열 정도의 기록조차도 남겨두지 않았다면은요? 아마 제가 몇 년도에 미국 군사교육을 다녀왔는지도 정확히 기억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보물 같은 일기장 덕분에 2017년 4월 29일 토요일에 재외국민 대통령선거 투표날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절친 동기와 함께 2시간 편도로 차를 몰아서 애틀랜타 한인회관에 방문하여 투표권을 행사했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관용여권을 들고 온 군인 아저씨들을 보고 놀라던 영사관 직원분도 떠오릅니다. 그냥 집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 왜 편도 2시간의 운전을 했는지, 저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등 이런 작은 부분까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이면 저는 7년 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그 순간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도 있습니다. 물론 매일 이렇게 과거 제가 작성했던 기록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일기장은 그냥 기록될 뿐 한동안 다시 읽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제가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궁금해질 때면 다시 저에게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 기록을 오로지 저를 위해서 그렇게 쓰임 받습니다. 이처럼 제 기록은 종종 현재 제가 마주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저는 기록을 통해 적자생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는 인간의 본성 중 하나를 망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니체는 ‘망각’을 상실 혹은 부재가 아니라 기억 발생의 토대가 되는 생산의 과정이자 동시에 역사와 문화에서 삶을 유지해 주는 힘으로 보았습니다[2].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동시에 경험과 지식의 축적인 지혜를 통해 성장합니다. 그리고 성장은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또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다음엔 얼마나 다른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꾸준한 하루의 기록은 더 나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매일 쌓여가는 기록 속에서 과거의 당신보다 더 성장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록들이 단순히 어딘가에 저장된 활자의 의미를 넘어설 수 있을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기록하는 삶에서 오는 기쁨을 여러분도 느껴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적자생존, 기록을 통해서 강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p.s. 아 그래서 군대에서 주는 일기장의 이름이 수양록(修養錄)이었군요!     
수양(修養) :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품성·지혜·도덕을 닦는 것  
수양록(修養錄) : 수양을 쌓으며 적은 글. 또는 수양하기 위하여 쓰는 글



표지그림 출처

:  나무위키, '수양록' 검색 (2024년 2월 17일) (https://namu.wiki/w/수양록)


내용 출처

[1] 위키피디아, '적자생존' 검색 (2024년 2월 17일) (https://ko.wikipedia.org/wiki/적자생존)

[2] 홍사현. "망각으로부터의 기억의 발생-니체의 기억 개념 연구." 철학논집42 (2015): 32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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