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노트

독서노트 :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현대 물리학의 거장, 폴 데이비스가 정리한 우주론의 최전선

by CalmBeforeStorm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폴 데이비스| 반니 | 2022년 07월 08일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0365747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는 우주론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제공하는 과학도서입니다. 저자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그에 관련된 과학적 발견들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서사를 진행합니다. 이 책은 우주론의 기초부터 최신 이론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며,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주론, 상대성이론, 중력파 등 다양한 과학적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서론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어지는 장에서 나는 인류의 우주론적 발견을 자세히 탐구하고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검토할 것이다.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는 왜 이러한 형태를 갖추었는가? 자연법칙은 왜 지금의 형식으로 존재하는가? 지능과 목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입자들의 모임이 어떻게 의식을 갖추고 생각하는 존재, 즉 그들 자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었는가?



우주론

우주론은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분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여러 면에서 간접적으로 모든 것과 닿아 있다.

우리는 세상이 왜 지금과 같은지,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유사 이래 인간은 창조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그 열망을 해소하려 시도해왔다.


그 이야기들은 과학적 차원의 설명은 아니었지만, 인간을 거대한 맥락 속에 위치시키려 했다. 우주론 cosmology 은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등장하여, ‘미용의cosmetic’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아름다움, 온전한 전체, 완전함을 의미했고 카오스 chaos 와는 대척점에 있었다─에서 유래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경탄할 만한 개념적 선회였는데, 세상의 기술에서 설명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에 뒤따른 이해의 비약적 발전은 1632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가 시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은 수학의 언어로 쓰였다.” 수학이 없다면, “어두운 미로 속을 헛되이 맴돌 것이다.”


갈릴레오는 우주의 실마리가 수학으로 암호를 해독하는 것에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생각은 3세기를 넘어 천문학자 제임스 진스 경 Sir James Jeans 에게까지 울려 퍼졌고 그는 “우주는 다름 아닌 순수 수학자가 설계한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갈릴레오는 숨겨진 수학적 질서를 드러내는 일에 착수했지만, 모든 것이 통합될 때까지, 특히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과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ottfried Leibniz의 작업과 한데 뭉쳐질 때까지는 한 세대가 더 필요했다.


때는 18세기 중반, 스위스의 무명 천문학자 장-필리프 로이스 데세초 Jean-Philippe Loys de Cheseaux 는 마찬가지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데세초의 생각은 이랬다. 만약 뉴턴이 제안한 대로 우주에 경계가 없고 별들이 모든 공간에 무한히 흩뿌려져 있다면 밤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구는 이미 파삭파삭 튀겨졌을 것이다.


1823 년 독일의 천문학자 하인리히 올베르스 Heinrich Olbers 도 같은 결론을 내렸는데, 그 결론에 ‘올베르스의 역설’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었다. 1912 년, 관측 자료를 충분히 그러모은 슬라이퍼는 성운들이 대부분 우리은하보다 확실히 더 붉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곧 분명한 설명도 내놓았다. 광원이 빠른 속력으로 멀어지면, 그곳에서 방출된 빛의 파동이 늘어나서 파장이 색 스펙트럼 colour spectrum 의 빨간색 끝단 쪽으로 이동하는 ‘적색이동’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에드윈 허블 Edwin Hubble

이로써 슬라이퍼는 대다수의 성운이 우리로부터 서둘러 후퇴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슬라이퍼의 발견이 유명세를 얻기까지는 수년의 세월과 수많은 관측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에드윈 허블 Edwin Hubble이라는, 담배 파이프에 환장한 변호사 출신 천문학자가 슬라이퍼의 발견에 관심을 보였다.


1924 년, 캘리포니아 윌슨산에 오른 허블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구경 2.5m 짜리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에 속한 개개의 별을 관측하여 그 성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허블은 안드로메다가 사실은 성운이 아니라 우리은하 같은 은하 그 자체라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이어서 허블은 또 다른 은하 23개의 거리까지 추정해냈다. 그러고는 자신의 관측 결과를 슬라이퍼의 적색이동 측정과 결합하여 무언가 규칙적인 것의 윤곽을 엿보았다. 은하가 더 멀리 위치할수록 그로부터 오는 빛이 더 빨갛고 은하의 후퇴 속도도 더 빠르다는 사실을. 더구나 그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경향을 가장 간단히 해석하는 방법은 우주가 점차 팽창하여 수십억 년에 걸쳐 크기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1924년 11월 23일 <뉴욕 타임스>를 통해 허블은 적시에 자신의 성과를 세상에 알렸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20 세기의 가장 중대한 발견이었고, 곧이어 담배 파이프를 꼬나문 천문학자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고 슬라이퍼는 팽창 우주의 역사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영웅으로 남고 말았다.


우주가 그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기묘한 발광체가 모여 이룬 불변의 집합체─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진화하는 역동적인 계系임을 깨닫자, 사람들은 우주의 인생 경로에 대한 질문을 무수히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계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우주의 팽창 속도를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일까? 팽창 속도는 시간에 따라 달라질까? 우주는 언제 시작되었으며, 영원히 지속될까?



허블 전쟁

우주의 팽창 속도는 숫자 하나로 표현된다. 바로 ‘허블 상수’ 혹은 H라고 부르는 값이다. 허블 자신은 H에 500 이라는 값을 부여했다(천문학자들이 선호하는 독특한 단위계에 따르면, 500 이라는 값은 33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의 평균 후퇴 속도가 초당 500km 라는 것을 의미한다).


H값이 주어지고 중력의 제동 효과를 고려하면 우주의 나이를 구할 수 있다. 허블이 원래 도입했던 값으로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가 고작해야 약 20억 년이라는 결과가 나오는데, 이것은 지구 나이의 반도 안 되는 결과였다! 천문학자들은 학문의 수준을 끌어올려 H값을 추정해냄으로써 원래 예상했던 우주의 나이를 서서히 높였지만, 천문학계는 두 개의 분파로 갈라서고 말았다. 한쪽은 H값으로 180을, 다른 한쪽은 55를 내세웠는데, 두 개 분파 모두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결과였다.


의견을 좁히기에는 관측의 오차 범위가 충분히 작다고 양쪽 진영 모두 주장했다. 이 불일치는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우주의 나이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1990 년대에 들어서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데이터가 불안한 형국을 매듭지었다. 현재 추정에 따라 73으로 결정된 H값은─멋진 절충이지 않은가?─우주의 나이를 138억 년으로 확정지었다.


하지만 최근에 새로운 불일치가 표면 위로 떠올랐다. 우주배경복사 데이터를 이용하여 측정한 H값은 67 에 지나지 않았고, 이 사실은 우주의 나이가 140억 년을 훌쩍 넘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초 우주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어딘가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뜻일까? 시간만이 답해줄 것이다.


우주론은 순식간에 과학계의 주류로 떠올랐고,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로저 펜로즈 Roger Penrose와 스티븐 호킹 같은 연구자들이 모여 빅뱅을 기초로 하는 우주의 기원을 마침내 진지하게 취급했고, 빅뱅은 이론적 분석이 열렬히 쏠리는 중심이 되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배경복사 cosmic microwave background─간단히 줄여 CMB 라고 부르는─를 좀 더 정확하게 관측해야 한다고 떠들썩댔다. 우주배경복사에 초기 우주에 관한 핵심적 단서가 들어 있다는 확신이 천문학계에 널리 퍼졌다. 대기가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우주배경복사를 제대로 조망하려면 위성을 띄워야 했고, 마침내 천문학자들은 위성을 마련했다.


1989 년 11월 NASA(미국 항공우주국)는 탐사선 COBE 를 발사했고, 그렇게 우주론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우주 팽창

우주 팽창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빛나는 덩어리가 주변 공간에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하는 장면으로 빅뱅을 묘사하는 TV 애니메이션은 깨끗이 잊는 게 좋다. 우리가 아는 한,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 가까이에 있다는 막연한 느낌은 그저 착각일 뿐이다. 모든 은하는 다른 은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은하에서 보든 전망은 거의 같을 것이다.


우리가 점유한 장소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사실, 은하들이 공간을 통과하며 움직인다는 생각은 완전히 지워버리는 게 좋다. 대신에 은하들 사이의 공간이 부풀고 있다고 상상하자. 이 이미지는 단순히 시각화를 돕는 요소에 그치지 않으며 공간은 실제로 점점 커지고 있다. 나날이 1만×1 억×1 억(=1020) 세제곱광년에 해당하는 공간이 관측 가능한 우주 observable universe에서 추가로 생겨난다.


빈 공간(진공)이 늘어나거나 부풀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리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공간은 신축적이다. 사실, 공간은 늘어날 뿐만 아니라 구부러지고 꼬이고 마구 요동칠 수도 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은하들 사이에 ‘공간을 집어넣는다’는 뜻이며, 그 결과로 은하들이 서로 점점 더 멀어진다.


이 새로운 공간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온 것이거나 무엇인가를 향해 팽창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공간은 원래 그럴 따름이다. 이 새로운 통찰로 무장한 우리는 이제 ‘빅뱅은 어디에서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을 돌파할 수 있다. 그 답은 바로 모든 곳이다.



우주의 끝

우주배경복사─빅뱅의 잔광─의 진원지는 없다. 우주배경복사는 공간상의 특정한 점으로부터 뻗어나온 복사의 흐름이 아니다. 우주 전체는 마치 거대한 화덕에 갇힌 것처럼 마이크로파에 파묻혀 있다.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는 동안 당신은 하늘의 모든 지점에서 우주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히 우리는 그보다 멀리 떨어진 곳을 볼 수 없는데, 우주의 나이만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빛이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 공간에는 우리의 시야를 제한하는 지평선, 즉 빛 지평선 light horizon 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에,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도는 전혀 없다. 관측기구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지구의 지평선이 세상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우주 지평선도 ‘우주의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 끝이란 없다. 우주 지평선은 그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 조각의 테두리일 뿐이다.


우주가 공간적으로 무한히 뻗어 있다고 해도 갈 수 있는 거리가 시간상의 한계로 제한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우주를 볼 수 없다. 망원경은 바로 지금 우주의 즉석 사진을 찍어주는 기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신에 여러 이미지를 합쳐 하나의 모음집을, 층층이 배열된 역사적 연속물을 구성한다. 마치 영화를 여러 프레임으로 잘라서 질서 있게 쌓아올린 뒤, 위에서 더미 전체를 한꺼번에 내려다보는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우주가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대상임이 틀림없는데? 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세세히 설명하려 든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도록 복잡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참전 군인의 행위를 언급하지 않고도 베트남전쟁의 역사를 묘사할 수 있듯이, 특정한 세부사항에 과하게 억눌리지 않고도 우주 역사의 기본적 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우주의 서사

그렇지만 몇몇 매우 특별한 특징이 없다면 이 대강의 서사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해도, 우주가 조직되는 방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교향곡 5번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해보자. 오케스트라가 각기 다른 수많은 음악가로 이루어져 있을지언정,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고 말하더라도 완벽히 마땅할 것이다. 음악가들의 연주가 ‘조정되어 orchestrated’ 있다면 그 결과로 조화로운 협화음이 뒤따른다. 만약 음악가들이 다른 연주자들은 무시하고 저마다 다른 악보를 연주한다면 끔찍한 불협화음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가 어떤 구체적인 곡을 연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실, 독립적인 음악가들의 집합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 것조차 무의미할 터다. 우주도 비슷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 다수의 복잡한 부속품이 저마다 작동하는 게 아니라 어울림과 조화, 조정이 존재한다. 이러한 특징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어디에서나 똑같이 관측된다는 사실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더구나 하늘을 비슷한 크기로 나누었을 때 한 부분에 포함된 은하의 개수는 모든 부분에서 같다.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빅뱅은 놀라울 만치 정연한 방식으로 ‘폭발bang’했다. 지구에서의 폭발과 대비해보라. 가스관에서 가스가 새어나와 집을 날려버린다면 그 파편들이 아무렇게나 온 사방에 멀리까지 흩어진다. 결과는 엉망진창이다.



상대 측정

중요한 점은, 비행기 안에서는 내가 움직이고 있는지 멈춰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비행기가 방향을 바꾸거나 하강한다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일정한 운동은 느끼지 못한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명시한 사람은 갈릴레오였다. 그는 일정한 속력의 운동은 오직 다른 물체와 비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측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내 자동차의 속도계는 도로와 비교하여 제 속력을 측정한다. 비행기의 속력은 지면 혹은 대기와 비교하여 측정된다. 도전에 응수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는데, 그의 작업은 1905 년에 발표한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의 첫 단계에서 극에 달했다. 아인슈타인은 에테르의 존재를 거부했고, 빛의 속력은 관찰자가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값을 갖는다고 선언했으며, 등속운동은 언제나 다른 물체에 상대적이라는 갈릴레오의 입장을 재차 확언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공간 자체를 기준으로 물체의 상대적인 속력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즉 중력은 실제로 공간을 구부린다. 공간 왜곡은 1919 년 일식을 관측하고자 서아프리카로 원정을 떠난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 Arthur Eddington 경이 최초로 관찰했다. 점성술사들은 점을 치기 위해 항성을 배경으로 황도십이궁을 따라 이동하는 태양의 운동을 쫓는데, 간혹 태양이 움직이다가 한 항성과 거의 겹칠 때가 있다. 이때는 천문학자들도 관심을 기울인다.


에딩턴은 태양의 중력이 항성으로부터 날아온 빛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낮에는 항성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일식이 일어날 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단 몇 분간이라도 달이 태양의 강렬한 빛을 가려준다면 하늘이 어두워져서 항성들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천문학자들은 태양이 근처에 있지 않을 때의 항성들의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에딩턴의 계획은 그러한 항성의 위치 기록을 일식이 일어나고 있을 때의 항성 위치와 비교하여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중력파

그리고 정말로 차이가 있었다. 항성의 위치는 실제로 아주 살짝 삐뚤어져 있었다. 태양계 중심에 거대한 어안렌즈가 존재하는 셈이다. 항성에서 빠져나온 광선이 태양 주변을 지나다가 휘어진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구부러진 공간을 따라 빛이 가장 짧고 곧은 경로로 이동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 중력파 누군가 마법을 부려서 낮 12시 정각에 태양을 없애버린다고 상상해보라. 태양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에 출발한 태양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12시 8분이 될 때까지,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중력은 공간을 가로질러 곧바로 작용한다는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지구의 궤도운동은 정확히 낮 12시 정각에 중단될 것이고,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행성은 태양의 소멸을 감지할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 없으며 중력의 변화조차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만약 태양이 돌연 사라진다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중력의 교란은 유한한 속력으로 물결치며 뻗어나간다. 1918 년, 아인슈타인은 공간의 물결이 실제로 존재하며 빛의 속력으로 전파한다고 예측했다. 이 ‘중력파 gravitational wave’는 블랙홀 한 쌍의 충돌과 같은 격변이 일어날 때마다 만들어진다.


블랙홀이 병합하면서 발생한 공간의 미세한 진동을, 섬세하게 배치된 레이저 광선에서 교란 형태로 포착하는 데 한 세기가 흘렀다. 이 극도로 민감한 장치는 현재 ‘중력 망원경’으로 쓰이며, 우주로 향하는 완전히 새로운 창을 열어 격렬한 우주적 사건의 세부사항을 연구하는 길을 닦아놓았다 1000m 멀리 떨어진 과녁 중앙을 맞히려면 신중함과 기술이 필요하다.


1000광년 멀리 떨어진 과녁을 맞히는 것은 어떨까?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우주가 애초에 얼마나 정밀히 구축되었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설명해보자. 만약 우주가 ‘작은 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더라면 우주는 모든 물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원래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폭발 규모가 커질수록 붕괴에 더욱 오래 버틸 수 있다. 우주가 수십억 년을 버티려면 폭발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중력을 정확히 상쇄할 만큼 충분히 강하게 일어나야 한다.



우주배경복사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그 정확한 일치가 바로 우주 공간의 편평함이 의미하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초기 우주의 잔광은 빅뱅이 일어난 지 38만여 년 뒤부터 출발하여 우리에게 도달하고 있다. 당시에 빛은 어느 방향으로든 기껏해야 38만 광년만큼만 이동할 수 있었을 텐데, 빅뱅 이후 138 억 년이 지난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에서 고작 1°를 가로지른 것에 불과하다(보름달의 겉보기 지름이 약 0.5°이므로 우리에게 보이는 보름달 지름의 2배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주배경복사는 온 하늘에 걸쳐 균일하다. 심지어 우주의 반대편 영역에서도 그 온도가 동일하다. 그 어떤 물리적 과정도 빛보다 빠르게 일어날 수 없다면, 언뜻 보기에 결코 접촉하거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는 구역들이 왜 똑같이 뜨거운 것일까? 구역들이 서로 열을 주고받아 온도를 균일하게 만들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또한 바늘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까다로운 문제다.


이토록 정교한 조화가 이루어지려면 빅뱅의 초기 조건은 ‘위대한 우주의 명사수’에 의해 미묘한 차이까지 완벽하게 맞춰져야 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조정 fix’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1814 년, 독일의 물리학자 요제프 프라운호퍼 Joseph Fraunhofer는 햇빛의 스펙트럼─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만들어낸 무지개─에 그어진 검은 선들을 발견했다.


선들은 마치 슈퍼마켓의 상품 바코드처럼 생겼다. 바코드는 그 자체로 제 정체를 나타낸다. 각각의 패턴은 특정한 원소가 만들어낸 것인데, 어떤 바코드는 탄소, 또 다른 바코드는 산소… 이런 식으로 쭉 이어진다. 이 독특한 패턴들은 천문학자들에 의해 어디에서나 목격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 전체가 사실상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태양

태양은 우리와 아주 가깝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가장 수월한 별이다. 이제 우리는 태양의 핵이 1초당 1000 억 메가톤(핵폭탄의 폭발력을 나타내는 에너지 단위. 1 메가톤은 TNT 100 만 톤의 폭발력에 해당한다.)으로 폭발하는 거대한 수소폭탄이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그 폭발로 산산조각 나지 않는 이유는 태양의 핵을 50만 km 두께로 둘러싼 기체의 무게가 폭발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 통제된 핵폭발은 날마다 해마다 계속되고 놀랄 만큼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한다. 태양이 방출하는 에너지가 1%만 감소해도 지구는 빙하기에 빠지고 지구온난화는 먼 옛날의 기억으로 남으리라는 흥미로운 추측도 해볼 수 있다. 별의 수명은 그 질량에 달렸다. 무거운 별들은 원료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서 빠르게 성장하다가 일찍 죽고 만다. 초창기 별들은 다음처럼 살다 갔다.


태양 질량의 100 배 혹은 그 이상인 초거성 superstar으로서 고작해야 수백만 년간 활활 타다가 주변 공간에 화학 생성물을 뿌려대며 폭발했다. 태양계는 45억 년 전에 그러한 별 파편의 무더기를 주워 담아 형성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 몸은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천문학자들이 즐겨 말하는 이유다. 좀 더 딱딱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핵반응의 재로 이루어져 있다. 뉴턴이 중력 법칙을 발견했던 무렵에는 지구를 제외하면 오직 5개의 행성만 알려져 있었다.


상황은 1781년 3월 13일에 바뀌었다. 독일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영국에서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된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이 손수 만든 망원경으로 여섯 번째 행성 ‘천왕성’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천왕성의 발견은 천문학 역사에서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천왕성은 맨눈이 아닌 인공 기술의 도움을 받아 발견한 첫 번째 행성이었기 때문이다.



빛 보다 빠른 가속(?)

E=mc2 과학자가 아니어도 이 유명한 방정식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에너지 E를 질량 m, 빛의 속력 c와 연결한 이 방정식은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상대성이론의 핵심 예측, 그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원칙에서 도출되었다.


만약 빛의 장벽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한다면, 이를테면 스위스 제네바 근방의 유명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 Large Hadron Collider, LHC’─27km 길이의 지하 원형 튜브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고에너지 양성자 빔들을 정면충돌시키는 기계─같은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사용해 그 일을 꾀한다면 어떻게 될까? 돌고 도는 입자들을 빛보다 빨라질 때까지 가속시킬 수는 없을까?


불가능하다. 물론 충돌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양성자로 전달된 에너지는 대부분 속력을 높이는 데 쓰인다. 하지만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입자들은 서서히 무거워진다. 속력을 더하려면 충돌기는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수확 체감(자원의 투입량이 증가할 때 투입량당 생산량은 줄어드는 현상)의 한 사례인 셈이다. 에너지 투입량이 최고에 이르면 거의 모든 에너지 투입량이 질량을 추가하는 데 쓰이고 여분의 속력을 만드는 데 쓰이는 양은 극히 적어진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에너지를 아무리 많이 투입해도 입자는 빛의 장벽을 돌파하지 못한다. LHC 가 실현할 수 있는 속력은 광속의 99.9999%가 최선이다. 이 실례는 에너지가 속력과 질량 둘 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mc2 이라는 식은 주어진 양의 에너지가 얼마만큼 질량으로 나타날지 정량화해준다. 반대도 유효하다. 즉 질량은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c(빛의 속력)의 값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아주 작은 질량도 많은 양의 에너지와 대등하다.


예컨대 질량 1g을 전부 전기에너지로 바꾼다면 평균적인 중산층 가정에 수년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아직도 나는 시간이 뒤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딱 잘라 거부하는 회의론자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논박하려고 별의별 논리적 밧줄을 끌어와서는 자기 자신을 동여매곤 한다. 시간은 우리 마음속에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러한 가장 원초적인 경험이 사실은 실재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격하게 반응한다.



블랙홀

빛에 의해 속력이 절대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블랙홀 내부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블랙홀은 모든 것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못하는 가상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안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지는 밖에 있는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기에 ‘사건의 지평선 event horizo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아무것도 내뱉지 않는다. 무엇이든 블랙홀에 빠지면 정체성이 소실된다는 뜻이다. 물질로 이루어졌든 반물질로 이루어졌든 혹은 생치즈로 이루어졌든, 블랙홀은 밖에서 보면 전부 똑같이 생겼다.



시간여행

공상처럼 들리지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시간 여행을 하는 한 가지 방법을 나는 이미 언급했다. 중력의 효과를 활용하여 시간을 늦추는 것. 만약 중력장이 강한 곳으로(이를테면 블랙홀 가까이에) 휴가를 간다면 당신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미래의 날짜를 향해 지구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동안 잠시 빈둥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블랙홀 근처를 서성거리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다. 상대성이론은 미래로 도약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공하는데, 실행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아인슈타인이 1905 년에 발표한 독창적인 논문에 따르면 중력뿐 아니라 속력 또한 시간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그저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더 먼 미래로 도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엄청 빨라야 한다. 숫자로 가늠할 수 있게 말해보자면, 장거리 비행 중인 항공기 내부의 시계는 공항에 남은 똑같은 시계와 비교했을 때 일반적으로 대략 10 억분의 1 초가 차이 난다. 인간이 경험하는 관점에서 보면 승객들이 나이를 적게(극미하게만) 먹는다는 뜻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서노트 : 떨림과 울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