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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노트

독서노트 : 무기가 되는 생각법(3)

문제를 해결하는건 AI가 아니라 인간이다

by CalmBeforeStorm

무기가 되는 생각법

변창우 저| 세이코리아| 2024년 07월 01일


https://m.yes24.com/Goods/Detail/128248046


『무기가 되는 생각법』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용적인 가이드북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비정형 문제를 다루기 위한 통합적 사고와 적절한 질문을 통해, AI를 도구로 활용하면서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지적 역량을 확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자인 변창우 작가님은 30년 넘게 국,내외 글로벌기업에서 근무하시면서 다양한 산업현장의 문제를 고민하셨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지능의 본질인 문제해결 능력에 대해서 저자의 깊은 통찰력을 배울 수 있습니다.

* 책의 내용중에 인상 깊은 문장이나 문구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 분량이 많은 관계로 나누어 업로드하겠습니다.



경영 기법 광풍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식스 시그마의 틀인 DMAIC, 즉 정의Define, 측정Measure, 분석Analyze, 개선Improve, 관리Control에 맞추어 풀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럴 필요가 없거나 맞지 않는 문제들도 틀에 억지로 꿰맞추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결국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통계학을 대충 배운 자칭 블랙벨트 선무당이 설치는 경우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문제 가운데 생산 현장의 불량률 문제를 제외하면 과연 어떤 것들이 식스 시그마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할까?’, ‘정말 모든 문제가 통계 기법을 사용한 측정과 분석만으로 해결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 문제는 개선하는 대신 아예 혁신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과연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식스 시그마 광풍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특정 경영 기법이 유행하면 기업들은 너도나도 그 기법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여기저기에 적용하려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얼른 떠오르는 경영 기법들만 해도 ‘BCG 매트릭스’,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Ananlysis와 경쟁 우위 전략’,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가치사슬분석Value Chain Analysis’, ‘SCMSupply Chain Management과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스타트업을 위한 린 캔버스Lean Canvas’,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그리고 최근의 ‘빅데이터Big Data와 데이터 과학Data Science’ 등 시대에 따라 수많은 문제해결 기법들이 유행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갔다. 새로운 경영 기법이 나타나는 일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문제는 기업들이 그때마다 모든 문제를 특정 방법으로만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 ‘몰빵’ 기질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윗분들의 선호를 맞추려는 성향이 결합된 결과일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특정 방법에 편중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유행은 언젠가 바뀌기 마련이다. 기껏 한 가지 방법론에 맞추어 조직을 재편했더니, 난데없이 경영 트렌드가 바뀐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때마다 드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닐 것이다.바람직한 방향은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과 프레임워크를 문제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유행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기본기를 다지고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새로운 기술의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혹시 다른 기업들보다 뒤처질까 걱정된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먼저 움직인 기업들은 시행착오에 빠져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AI 열풍

최근 불고 있는 AI 열풍도 마찬가지다. 그냥 모델링이나 알고리즘 하나 적용하는 것에 일단 ‘AI’ 용어를 갖다 붙이고, AI를 업무에 적용한다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그런데 정작 일반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AI는 보고서 쓸 때 초안을 만들어주고, 자료용 그림 몇 장 그리고, 외국어 문서 번역하고, 날것인 데이터를 보기 쉽게 정리 하는 일 정도인 게 현실이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모든 기업이 자체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을 개발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나 네이버 정도의 기업이 LLM을 개발하면 나머지 기업들은 이것을 도구로 가져다 쓰면 된다.


이때 기업들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AI를 어떤 업무에 어떤 식으로 적용하여 성과를 낼 것인가’다. 굳이 AI가 필요 없는 곳에까지 AI를 도입하려 들면 쓸데없이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업무와 고객이 먼저고, 기술은 그다음이다.




세 가지 문제해결 방법론과 특징

90년대는 맥킨지Mckinsey, 베인Bain, BCG로 대표되는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의 전성기였다. 당시 나도 컨설팅 회사를 다니며 하루에 열네 시간씩 일했다. (미쳤다.) 이 회사들은 로지컬 씽킹Logical Thinking을 기본으로 프레임워크와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로 화려하게 무장하여 글로벌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삼았고, 손꼽히는 국내 대기업들도 고객으로 모셨다.

[표 3] 비즈니스 문제해결 접근방식의 변화



나는 카드사 CMO 시절에 IDEO와 협업할 기회가 있었다. 고객 경험 제고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컨설팅 회사를 다녔던 내가 보기에는 매우 특이했다. 체계 없이 즉흥적으로 놀면서 일하는 느낌이랄까?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던 임원으로서 나는 자칫하다가는 ‘폭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국의 카드 비즈니스를 알려주고 서로 토론도 할 겸 잘하고 있나 감시도 시킬 겸, 우리 직원들 몇을 IDEO 본사가 있던 팔로 알토Palo Alto까지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이것이 그들이 일하는 방식임을 깨달았다.그렇게 진행된 프로젝트의 산출물 중 하나가 직관적으로 단순화된 카드 대금 청구서였다.


당시만 해도 카드 대금 청구서란 카드사가 하고 싶은 말들만 잔뜩 적어놓은, 지극히 생산자 중심의 양식에 따라 작성된 문서였다. 그런데 IDEO팀은 금월 결제할 금액과 포인트 누적 금액만 남기고 자세한 것은 뒷면 혹은 홈페이지로 옮긴, 매우 단순화한 포맷을 제안했다. 이후 이 심플하면서 고객 지향적인 포맷은 모든 카드사를 넘어 통신사 등 그동안 자기들 입맛대로 청구서를 보내던 기업들의 모습이 완전히 뒤바뀌는 계기가 됐다.


IDEO와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그들이 무슨 대단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철저히 ‘고객 관점’에서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이고, 복잡한 솔루션보다는 ‘단순함Simplicity by Design’을 초지일관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문제해결 방법론별 장단점

2010년대부터는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데이터 과학이라는 개념도 알려졌다. 컨설팅 회사나 시스템 통합 업체들은 빅데이터로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려졌다시피, 빅데이터 시스템이나 인프라에 대한 투자보다는 데이터로 통찰을 만들어내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명확한 목표도 없이 대용량 데이터 처리 인프라만 덩그러니 마련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당수 우리나라 기업은 아직껏 데이터로 본격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실무진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자조 섞인 얘기들이 나돈다.


결국 의사결정자 단계에서부터 문제해결에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또 데이터 분석에 기반하여 토론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프로세스를 조직문화로 만들지 않으면 실무 인력들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결과를 만들기 어렵거나 단발성 시도에 그칠 가능성이 커진다. 개인적으로 당장 우리 기업들은 빅데이터보다는 스몰 애널리틱스Small Analytics와 분석적 마인드Analytical Mind를 가진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표 4] 문제해결 방법론별 장단점



각 방법론이 가진 한계와 더불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상황에서 한 가지 방법만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각 문제해결 방법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인력들이 있더라도,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전략/기획부서는 컨설팅식 보고서 작성에 매진하고(실제 솔루션이 아닌 보고서), 마케팅부서는 그저 임팩트 있는 한 방을 위해서 신박한 크리에이티브 어디 없나 찾아 헤맨다. 데이터 분석가나 데이터 과학자들은 문제해결을 정의하는 단계에서는 배제된 채 그저 현업에서 던져주는 과제만 수행하는 수동적이고 지엽적인 역할만 수행한다. 데이터 분석을 할 줄 안다고 하는 인력들은 많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현업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종합적인 역량을 가진 인력은 드물다. 결국 좋게 얘기하면 분업이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사일로 현상이고 부분최적화다.


많은 조직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처음에 지정한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려는 관성이 강하게 작용하고는 한다. 더욱 나은 솔루션이 있음에도 이미 어떤 프로젝트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또는 이미 누가 맡았기 때문에 그저 정해진 길로 따라가서 반쪽짜리 혹은 부분최적화된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점점 더 강하게 연결되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면서, 디지털 전환과 AI 활용이 현실이 되면서 기업은 더 복잡해지는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지금 기업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보다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다.✽ 그리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문제해결 방법론을 통합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World Economic Forum, Future of Jobs Report 2020.


어쩌면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겠다. ‘비즈니스의 문제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정형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사실 문제해결에는 이런 프로세스보다 천재적인 몇몇 기업가의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영감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내 30년간의 경험을 통해 답변하자면, 비즈니스에서의 문제해결은 스치는 영감보다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안 되는 방법을 제거하고 다시 보다 나은 방법을 찾는,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 과정이다.


만약 누군가 번뜩이는 영감으로 단번에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런 반복의 과정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되풀이하여 나온 결과다. 우리에게 문제해결 프로세스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렇게 답을 찾는 과정에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내해줄 지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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