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과 사생관에 대한 고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구국의 성웅이신 이순신 장군께서 명량해전을 앞두고 휘하 장수들에게 목숨을 거는 각오로 전투에 임할 것을 강조하실 때 하셨던 말씀이다.(난중일기 정유년 9월 15일) 여러분은 역대 국내 상영 흥행 1위에 (1700만 명) 빛나는 ‘명량’의 이 장면을 기억하는가?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정녕 싸움을 피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냐? 육지라고 무사할 듯싶으냐? 똑똑히 봐라!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하였다.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형국을 두고 하는 말 아니더냐?” - 영화 ‘명량' 중 이순신 장군의 대사
결국 이순신 장군을 믿고 전장에 나간 조선수군은 13척의 배로 300여 척이 넘는 왜군의 함대를 격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지형 연구, 전략 등이 뒷받침되었겠지만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조선수군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에 임하는 임전무퇴의 기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에게 생존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본능일 텐데, 도대체 죽음을 무릅쓴 쓴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래서 선정한 오늘의 주제는 군인과 사생관이다.
사생관(死生観)의 사전적 의미는 ‘죽음을 통한 삶의 견해’이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 영혼이 있다면 어디에 가는가?” “사는 것은 무엇인가? 또 죽는 것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을 떠올릴 때 던지는 의문들이다. 일반적으로 사생관을 바라볼 때 1. 종교적인 관점 2. 철학적 관점을 택한다. 종교적 관점으로는 도교의 불로장생, 힌두교의 윤회전생, 불교의 극락 사상, 기독교의 내세관이 있다. 철학적 관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담론부터 근대의 니체의 ‘신은 죽었다.’ 대표되는 허무주의 그리고 현대철학에는 논리와 이성으로 삶과 죽음을 고찰하는 셀리 케이건 교수의《죽음이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필자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로 이 글에서 종교적, 철학적 관점을 자세히 다룰 수 없다. 비단 군인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 중 살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 참인 명제에서 결국은 죽을 것이니 대충 살겠다는 허무주의적 태도를 도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끝이 있으니 더 소중하고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은 사색을 하지 않는다. 그런 고민을 하기엔 삶이 바쁘고 고달파 서일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죽음은 임박하지 않은 먼 미래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왜 사생관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꺼냈는가?
군인에게 사생관이 중요한 이유는 군인의 사고와 행동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전장이라는 항상 죽음의 위험성이 도사리는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에게 사생관의 유무는 그 사고·행동·리더십에 영향을 줄 것이다. 만약 이 순간 전쟁이 발발한다면 군인은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상호 의지의 마찰을 수반하기에 피·아예 많은 피해를 가져온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많은 전·사상자가 발생한다. 군인에게 올바른 사생관을 확립하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전장에서 군인들은 열악한 지형과 기상, 생명 위협, 지속되는 긴장과 불안 예측의 어려움 인접 동료의 죽음 등 수많은 스트레스 유발요인에 노출된다. 이는 전투원들에게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신체적·정신적·행동적 반응을 보이는 다음과 전투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1. 신체적 및 정신적 피로 누적
2.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공황 발생
3. 전사상자 목격으로 인한 심한 정신적 충격 발생
4. 고립, 정보의 단절과 부족으로 인한 불안감 고조
5. 동료의 죽음이나 부상에 대한 분노 등과 관련된 도덕적 가치 기준 하락
이런 순간에 직면한다면 이성을 통한 육체의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 만약 이 상황 집단적인 규모로 악화되면 상관살해, 전투 이탈(탈영), 이적행위 등이 군 기강 와해의 단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극한의 전투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 군도 전투 스트레스를 예방-식별-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그중에서 장병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은 종교활동일 것이다.
군대에서 종교를 하면 왠지 모르게 신병훈련소에서 갔던 종교시설에서 받아본 초코파이가 떠오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군 입대하고 처음으로 종교행사에 참석해봤다는 사람도 여럿 봤다. 사실 필자도 그중에 한 명이다. 군에서는 법률에 의해 종교생활의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제15조(종교생활의 보장) 따르면, ① 지휘관은 부대의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군인의 종교생활을 보장하여야 한다. 군에서 종교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를 위해서는 군종업무에 관한 규정(국방부 훈령 제822호)을 살펴봐야 한다. 훈령에 따르면 군에서의 "종교활동"은 장병의 신앙심 함양과 신앙전력화를 위하여 행하는 제반 활동이다.
출처 : https://www.law.go.kr/LSW/admRulInfoP.do?admRulSeq=68050#J6:0
군종은 그런 종교, 교육 및 선도활동을 포괄하는 업무이며 장병의 정신무장을 강화하고 사기를 진작시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게 하기 위함을 목표로 한다. 아, 그리고 군대에도 계급과 신분을 가진 신부님, 목사님, 법사님, 교무님이 계신다. 이분들께서 군 장병들과 그 가족들이 참가하는 종교행사를 주관하신다. 이 외에도 많은 업무를 수행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종교활동을 통하여 장병의 사생관을 확립하고, 필승의 신념을 배양하는 것’이다.(제5조 1항) 종교활동은 군인에게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며, 군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앞서 다뤘던 사생관을 바라보는 첫 번째 관점이 종교적 관점이었는데, 군에서도 각 종파별 종교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종교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생 관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 때문에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그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 우리가 불사의 존재라면 생명이 지금처럼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확고하게 정립될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군인에게 사생관은 국가와 동료 그리고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우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희생이다.
2016년도 온 국민의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도 유시진 대위의 대사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는 유명한 시가 있다. 청은 시인의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다. 전선의 참호 속에서 싸우는 군인에게 전투복 = 수의라는 생각을 이끌어낸 짧지만 아름다운 시다. 여러분에게 이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수의를 입고 사는 사람들 -청은-
군인은 언제나 군복을 입고 산다
청춘도 생명도 조국에 저당 잡히고
국비로 지급되는 생명수당으로
부모 봉양 자녀 양육하며 산다.
군인이 죽으면 안동포 수의 대신
깨끗한 군복에 계급장, 명찰, 휘장, 훈장
모두 달아 입히고 군화까지 신겨서
마지막 길로 보낸다.
이름 모를 전선의 참호 속에서
장렬하게 죽어가면 그 자리는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조국이 원할 때 지체 없이
죽음으로 뛰어들어야 하기에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당장 올지도 모를 죽음을 준비해놓고
군인은 언제나 수의를 걸치고 산다.
<표지 배경 출처 : 국방일보 '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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