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있는 자신감, 세계 최강의 군대를 경험하다.
지난 글에서 동기 '최'와 첫 만남, 위탁교육 선발 및 출국 준비과정을 나눴다. 오늘은 미국 도착 후 적응기와 교육을 통해 느낀 점들을 공유하겠다.
위탁교육 합격 후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준비기간을 가졌다. 위탁교육 합격 후 오히려 더 바쁘게 시간이 흘렀다. 미군 측에서 요구하는 각종 서류들을 (신원, 건강 등)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했고 출국 전에는 미국 대사관에서 체류에 필요한 비자를 발급받았고 그것을 근거로 관용여권도 새로 만들었다. 생도 시절 해외여행은 몇 차례 다녀왔지만 관광을 위한 방문과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방문은 천지차이였다. 교육기간은 6개월로 비교적 짧았지만 준비할 것들이 꽤 있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체류기간 동안 급여 외 일정 금액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이 기본소득 및 물가가 높기에 개인 사비로 온전히 부담하면 중위의 봉급으로는 부담이 있었다. 당시 같이 교육을 받았던 미군 소위, 중위 동기들이 약 5만 달러 전후의 연봉을 받았으니 그들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교육에 임하려면 필요한 금액으로 군에서 판단하였을 것이다.
*미군의 봉급표 참고: https://www.goarmy.com/benefits/money/basic-pay-active-duty-soldiers.html)
매사 그렇듯 사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다. 때로는 직접 부딪혀보면서 답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다.
미국에서는 전투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면 박수를 쳐준다는 말을 들어봤다. 필자도 전투복을 입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같은 이유는 아니었고 외교관 입국절차와 동일한 간소화된 입국절차를 받기 위함이었다. 목적지까지 약 13시간 이상의 운항시간이 소요됐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이렇게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목적지에서 신나게 활동하기 위해서 미리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하지만 당일 잠이 오질 않았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16년도부터 매일 핸드폰으로 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당시의 추억이 담긴 일기를 다시 읽었다. 당시 나는 이런 걱정들을 했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 언어적, 신체적으로 높은 수준
못하면 안 된다 : 그들에겐 내가 대한민국을 대표
부상에 대한 두려움 : 필드에 나가면 기본 일주일
퇴교를 당하면 본국으로 귀국 : 국민의 세금을 낭비
2017년 3월 8일 수요일 출국 비행기에서 많은 고민으로 잠을 설쳤던 나를 토닥여주고 싶어 졌다. 가끔씩 군 생활을 하면서 힘든 순간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럴 때마다 더 힘들었던 시기에 작성한 일기를 다시 읽는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그래 내가 이렇게 힘든 일도 잘 이겨냈는데 지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용기를 얻는다. 아마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뜬눈으로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미국에 도착했다.
Welcome to Fort benning! 'Home of the Infanry'
필자가 교육을 받았던 곳은 미 육군의 기동센터(보병+기갑학교)로 미국 남부 조지아주 콜럼버스시에 위치한다. 포트베닝은 미 육군의 종합 군사기지로 여러 군부대들이 위치해 있고, 기초 군사훈련과 육군 보병의 보수교육 기관, 그리고 그 외의 각종 군사교육훈련 학교와 코스들이 밀집해 있다. 부대 운영과 교육훈련, 군사교리 연구 및 개발 등을 통해 미 육군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내는 일종의 군사도시이다.
참고로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1994년작>에서 주인공 포레스트가 미 육군의 입대하여 교육을 받았던 장소가 이곳 포트베닝이다. 포트베닝에는 약 12만 명의 현역군인과 그 가족들, 예비군들과 퇴역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12만 명 정도의 규모면 경북 칠곡군의 인구수보다 많은 중견도시 규모다. 기지 안에 학교, 대형마트, 종합병원, 영화관, 각종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있으며, 그야말로 군사기지 안에 작은 도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Welcome to Fort Benning - Home of the Infantry! 일명 보병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포트베닝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라.
출처 : https://www.benning.army.mil/index.html
교육생들은 교육기간 동안 포트베닝 영내, 영외에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거주할 수 있다. 주거선택에 비용보다는 편의성을 택했다. 영내가 월세가 훨씬 비쌌지만 광활한 미국에서 어디를 가려면 기본적으로 1시간은 차로 움직여야 했다. 문제는 포트베닝의 모든 군인은 새벽 5시에 PT를 집합해야 한다. 영외에 살면 거의 4시에는 기상해서 출발해야 했다. 처음 미국에 정착하는데 기존에 교육을 받고 있던 한국군 장교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중위들이 받는 교육 외에도 대위 및 부사관들도 위탁교육의 과정에 임하고 있다.
물론 그중 가장 큰 도움을 줬던 것은 동기 '최'다. 고국을 떠난 타국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이미 내적으로 친밀감이 형성되었다. '최'는 1개 기수 선배로 필자보다 약 한 달 반 정도 일찍 출국해서 이미 교육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를 통해서 본격적인 교육 시작 전 필요한 정보들을 얻고 미군 장교들도 소개를 받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군에도 각종 양성 및 보수과정에 다양한 우방국의 외국군장교들이 수학 중에 있다. 미국은 이미 이런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잡혀있어서 필자와 같은 외국군장교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센터를 운영 중이었다. 도착 후 약 2주 정도의 준비기간 동안 ID 발급, 핸드폰, 집 계약, 차량 구매, 가구 및 인터넷 설치 등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정말 본 게임의 시작이다.
막상 본 교육 내용을 기술하고자 하니 내용이 너무 방대해질 것 같아서 필자가 느꼈던 몇 가지 사항을 적어봤다. 천조국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미국이 매년 국방예산으로 한화 천조를 쏟아붓는다고 해서 그런 별명을 얻었다. 1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모든 군사력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는 미국의 군대. 왜 그렇게 강할까 궁금했었다. 돈을 많이 써서? 좋은 장비를 사고 훌륭한 보급체계로 든든하게 배를 채워서?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필자가 느낀 이유는 조금 달랐다. 바로 사람이다. 그들은 훌륭한 교육체계를 가지고 강한 리더를 기르고 그 리더들은 다시 야전에서 자신들의 부하를 강하게 단련시켜 전투원들을 만든다. 한 마디로 그들은 워리어 전사들이었다. 다음 사례는 그 강함의 아주 작은 일부를 경험하고 온 필자의 느낀 점이다.
매일 새벽 5시. 포트베닝의 아침은 분주하다. 만약 아침에 체력측정이나(APFT), Ruckmarch (군장 뜀걸음), 8~10 milerun 이 계획되어 있는 날이면 4시에도 집합한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았지만 육군 체육복을 맞춰 입은 군인들이 체력단련을 위해 집합한다. 이등병부터 장군까지 모두 똑같은 체육복을 입고 체력단련에 임한다. 그렇게 1시간 30분에서 많게는 2시간까지 아침 체력단련이 끝나면 약 1시간 정도 아침 식사 및 샤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여되고 다시 8시까지 집합이다. (이러니까 영외에 나가서 생활하면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이들은 교육기간 중 최소 2~3회 체력검정 즉 APFT (Army Physical Fitness Test)을 통과해야 한다. 한국군도 마찬가지도 비슷한 체력검정 시스템이 있지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군이 등급제(특급~3급)인 반면 미군은 300점 만점 점수제로 운용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오후에 또 체력단련을 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절대로 일과시간 체력단련 시간에 축구나 족구 등 구기종목을 하는 법이 없다. 미군은 전 세계 다양한 우방국 또는 분쟁지역에 병력들을 파병을 보내 자국의 군인들을 주둔시킨다. 그들은 언제든지 전투원으로써 싸울 수 있도록 체력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참고로 미군의 장교들 중에는 병사나 부사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인원이 정말 많다. 한국군도 재임용을 통해서 신분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많은 사례를 찾긴 힘들다. 하지만 미군의 경우 정확한 수치를 찾긴 힘들지만 체감상 거의 40% 육박하는 인원이 이전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노련하면서 동시에 (소위 치고는) 나이가 많다는 특성을 갖는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동기는 당시 23살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던 40살 소위 동기가 있었다. 무려 부시 대통령 때부터 군에 복무했다고 하니...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체력단련에 열외는 없다. 오히려 더 열심히 뒤처지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장군이든 이등병이든 같은 시간에 같은 체육복을 입고 있으며, 체력단련 시간에는 주변에 학교장이나(투스타) 상급 지휘관이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운동이 전념한다.
이렇게 많은 체력단련을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정해진 체력기준 및 훈련 수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퇴교를 당한다. 필자의 같은 반 class에는 36명의 동기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필자와 같은 외국군 장교는 3명(대한민국, 쿠웨이트, 헝가리) 33명은 미국 장교들이었다. 그중 4명이 끝까지 함께 가지 못하고 중도 퇴교를 당했다. 물론 바로 군문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약 한 달 내외의 시간을 갖고 다음 기수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를 리싸이클을 (Recycle)당한다라고 표현하는데 한 미군 동기생은 '최'기수로 입교해서 필자의 동기생이 되었다가 한번 더 재활용을(?) 당하고 그다음 기수로 졸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주로 탈락하는 과정은 12마일 럭마 치이다. 약 70 파운드 (27~30kg) 완전군장을 착용하고 19km를 3시간 안에 주파해야 한다. 코스도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산악지형을 포함하고 테스트가 시작하기 전에 한번, 끝나고 다시 휴대한 장비 및 생수의 무게까지 재 측정한다. 서양인들이 신체조건이 신장이 크고 기본적으로 근력이 강한 특성을 지녔으나 12마일 럭마치처럼 장기간 쉬지 않고 실시하는 급속행군은 체력과 정신력까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교육과정이 시작하면 가볍게 3마일부터 연습하다가 5,7,10 점점 거리를 늘려나간다. 그리고 대망의 12마일 럭마치 당일이 되면 새벽 04시 집합하여 04시 30분에 출발한다. 아직 캄캄한 어둠이 감싸는 시간으로 모두 머리에는 헤드랜턴을 하나씩 장착하고 3시간의 대장정이 시작한다. 물론 개인의 신체능력이 천차만별로 빨리 합격선을 통과하는 동기는 2시간 20분에도 완주한다. 대부분 2시간 40분 전후로 들어온다. 쉽게 생각해보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같은 장편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 내내 30kg 무게의 군장을 등에 업고 지속적으로 빠른 걸음과 뜀걸음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필자가 속한 교육 기수에 약 150명 내외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휘슬소리와 함께 출발선을 통과하고 완주할 때까지 느꼈던 그 고독함을 잊지 못한다. 생각해보라 그 누구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다. 오직 나의 근력의 힘으로만 목표까지 도달해야 한다. 나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도 주변에 없다. 그들은 리싸이클되면 다시 입교할 수 있지만 나는 탈락하면 귀국행 티켓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부담감을 느끼지만 누구도 이 마음을 알 수없다는 그 고독감이 더 힘들게 하는 순간이었다. 새벽부터 아침해가 뜨도록 이어지는 장시간의 럭마 치를 완주했을 때 느꼈던 그 환희의 순간을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쉽게 이 럭마치 평가가 끝나고 몇 명의 동기생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군도 이런 시스템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다. 우리 군은 3월 초 일괄적으로 많은 장교들이 임관하고 후반기에 한번 더 임관하는 장교들을 위한 교육체계가 있다. 때문에 교육과정 중간중간마다 탈락을 시키고 다시 입교시키는 체계를 구축하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다. 장교의 의무복무 기간이 임관 후 2년 6개월임을 감안했을 때 시간적으로도 부족하다.
그들은 정말 대충 하는 법이 없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교육이 끝나면 그들은 소대장으로서 임무수행을 하게 되는데, 교육 수료 후 바로 파병을 가서 약 36명의 직업군인들을 지휘해야 하는 동기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 배울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하나라도 더 배워야겠는가. 상급부대로부터 명령을 수령해서 본인의 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하고 이를 부하들에게 재하 달하는 과정을 평가하는 과정이 있다. 이를 약 1주일에 걸쳐서 한 명 한 명씩 1대 1로 교관이 붙어서 평가를 하는 기간이 있다. 무려 1인당 1시간씩 교관 앞에서 본인의 명령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야 했는데, 애석하게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경우가 없다.
생각해봐라 1시간이다. 1시간을 다른 이에게 브리핑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세부적인 사항까지 준비해야 하겠는가. 자세한 사항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서 작전지역 기상을 분석할 때 습도가 몇 퍼센트니 이것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아군과 적군에게 영향을 줄 것인지도 분석해야 한다. 포트베닝은 특수요원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일반 보병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이다. 미군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반 보병이 되려면 '최소한' 이정도의 신체 및정신능력을 보유해야한다.
아무래도 100% 개인의 희망에 의해서 선택한 군인의 삶이기에 더욱 진심을 다해 매 순간 임하는 것 같다. 한국군은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기에 병역의 의무를 해소하기 위해 장교로 복무하는 인원도 많다.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훈련 일화로 5일 동안 수면시간을 부여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야외기동훈련을 했었다. 정말로 계획 표상에 쉬는 시간 없이 계속 훈련상황이 부여되었다. 교관들도 퇴근 없이 2교대로 근무하면서 극한의 상황 속에 교육생들이 임무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했다. 이때 힘들면 조금 대충 하는 인원도 있을지 알았는데 단 한 명도 대충 하는 이가 없었다.
만약 내가 졸업 후 6개월 이내에 실전에 투입되는 상황에 놓인 소위라고 생각해보니 정말 정신이 바짝 들었다. 허투루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왜냐면 그들의 부하들이 그를 평가할 것이니까. 한국군은 병사들의 평균 복무기간이 짧다. 하지만 미군의 경우 5~10년 이상인 병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부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병사 시절을 거쳐야 한다. 부사관으로 바로 임관하는 그런 체계가 아니라 반드시 필드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진급을 통해 하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노련한 군 경험을 가진 소대원들이 이제 막 교육을 수료하고 온 소대장을 기다린다고 생각해봐라. 정신 바짝 차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1편은 위탁교육으로 이어진 동기 '최'와 인연을, 2편은 미국에서의 생활과 미군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현재 출판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책이 공식적인 내용과 개인적인 이야기로 두 개의 큰 축을 갖는데 이 글은 후자에 속한다. 평소와 다르게 사실 위주가 아닌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더니 당연히 필자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SNS를 전혀 운용하고 있지 않은데, 아직은 남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이니 앞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군사보안의 이유로 더욱 자세한 사항을 기술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필자의 신분이 현역군인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미군은 군사에 관한 많은 부분을 민간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분도 몇 분만 투자하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현재 운용 중인 교범과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한 미군 동기에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다. 대답이 참 인상적이었다.
필자 : 너네 이렇게 중요한 군사정보를 막 공개해도 되는
거야? 군사기지를 구글맵에 검색하면 나오잖아!
적들이 보면 어떻게 하려고?
미군 동기 : So What?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봐서 어떻게 할 건데?
어차피 아무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는데!
이 말이 사실여부를 떠나서 나는 그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 있는 자신감. 참으로 많이 배우고 느꼈던 미국 군사교육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추후에 어느 정도 글감이 정리되면 한번 더 공유하는 시간을 갖겠다.
P.S. 아 그리고 귀국행 비행기에서 필자가 썼던 지난 미국 생활의 일기를 읽었을 때는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걱정했던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고 임무를 완수하고 귀국할 때 그 행복한 기분이란.
<표지 배경 출처 : 필자의 추억>
마지막 야외 훈련 간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기들과 찍은
한 컷. 그땐 몰랐지 내가 저 순간을 그리워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