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을 간직하기 위한 방법
자물쇠는 소중한 것을 간직하기 위해 쓰인다.
예를 들면, 중요한 서류나 돈을 금고에 넣는다거나 지하철이나 헬스장의 락커 등 저장공간을 잠시 빌릴 때 쓰이고 있다. 요즘은 대부분 버튼식의 자동장치가 이를 대신 하기에 쓰임이 적어지고 있다. 나 역시도 지물쇠를 써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유명한 관광지나 높은 곳의 전망 좋은 장소에는 자물쇠를 걸어둘 곳 없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벌써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전 세계인들의 관광지인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들 수 있고, 국내에서는 남산을 비롯한 낮은 산부터 지리산과 같은 높은 산의 전망대, 그리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귀여운 등대도 빠질 수 없다. 요즘에는 아기자기한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을 꼭대기쯤 있는 카페에서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인다. 이곳에 이렇게도 많은 자물쇠들이 걸려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
소중한 것을 그 시간 함께한 사람과 간직하고 지키자는 약속의 결과물이다. 물론 소중한 것의 대부분은 사랑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약속에 대한 징표를 자물쇠가 대신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이 끝까지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는 최대한 멀리 던진다. 이로써 소중한 것을 영원히 지켜낼 수 있다는 신념과 서로 간의 믿음이 형성된다. '그 순간만큼은' 신념이 가장 굳건하고, 서로 간의 믿음이 가장 두터워지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언제나 서로의 삶에 잠겨 있기를 희망한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자물쇠는 그대로 잠겨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의 신념과 믿음도 그대로 잠겨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신념과 믿음은 여전히 잠겨있는 자물쇠와 달리, 던져진 열쇠처럼 찾기 어렵다. 자물쇠는 누군가가 열쇠로 열어줘야 열리지만, 서로 간의 신념과 믿음은 아니다. 그 순간 함께한 사람 중 누구라도, 언제라도 열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에 신념과 믿음을 함께 잠근게 맞나? 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사람의 마음은 잠글 수 없다.
잠겨지기를, 잠겨 있기를 희망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잠글 수 없다.
단적으로 보더라도 자물쇠는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의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고,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한다면 삶의 변화 때문이다. 삶의 변화에도 각양각색의 변화들이 있겠으나, 가장 큰 변화는 '익숙함'이다. 익숙함은 이전의 삶이 토대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랑에는 이전의 삶의 토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지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도 축적된 삶의 토대가 있다는 착각은 서로를 힘들게 한다. 이전에 보여준 사랑이 축적되었다는 착각은 '지금, 잠시, 이 순간만은 소홀해도 괜찮다'는 자기합리화에 빠지게 한다. 삶의 익숙함은 노하우라는 긍정적 결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의 익숙함은 서운한 마음을 키우는 경우가 많고, 서운한 마음은 사랑과 다르게 축적된다. 이로 인해 신뢰와 믿음의 토대가 위태롭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인해 사랑도 축적이 된다는 착각과 익숙함을 생각하며 지금을 함께 사는 이들은 힘겨워 한다.
물론 사랑의 익숙함으로 서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익숙함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익숙함이다. 사람의 행동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어서 함께한 시간에 따라 서로 간 생각과 행동에 대한 예측과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랑은 그 순간 나타나는 '감정'이다. 감정은 현재의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따라서 축적되거나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단, 서로에 대한 일반적 감정 가령, 마음이 따뜻한 사람, 보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 등 서로 간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속되거나 축적될 수 있다. 마음이 생각보다 더 따뜻한 사람, 보면 볼수록 더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사랑의 축적이 아닌 이전의 삶의 토대로 형성된 이미지다.
사랑은 언제나 '지금'이다.
하루가 반복되는 삶에서 '오늘, 지금, 그리고 이 순간' 매일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 했던 서로에 대한 사랑의 표현과 행동들이 축적되어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남아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랑은 매일 '0(zero)'에서 시작한다. 누구에게 얼마만큼 채울 것인지는 하루의 시작부터 순간순간 선택할 수 있고, 하루 동안에 내가 채우거나 나에게 채워졌던 사랑은 그날 소멸된다. 그리고 다시 하루의 시작과 함께 사랑도 시작된다. '사랑은 언제나 오늘이고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