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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Mar 24. 2020

1인 1안주에 4분의 1병의 술

술과 파티의 시절 2

(앞 글에 이어서)


실은 난생 처음은 아니었다. 어른들과 밥을 먹으며 가끔 맥주나 포도주를 한 모금 얻어마시고 인상을 찌푸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 모금 이상의 술을 마신 적은 단연 처음이라고 이구동성 떠들며, 반항아이자 모범생이었던 우리 넷은 신나 했다. “뭐야, 이렇게 많이(종이컵 한두 잔) 마셔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면서 말이다.


그러고서 정말 신이 난 우리는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다. 거기서 우리가 1년 내내 자습을 하며 심심할 때마다 서로를 놀리며 부르던 주제곡을 꽥꽥 소리 높여 내질렀다. 셋씩 짝을 지어서 나머지 하나를 놀리는 노래가 네 곡이 있었다. 동요나 광고음악의 가사를 바꾼 노래들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가 취한 건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렇게 난리를 치다가는 수위 아저씨나 숙직 교사에게 들키겠다는 두려움이 생겨서 서둘러 교실로 돌아왔다. 먹고 마신 흔적을 깨끗이 치웠다. 막 짐을 다 싸고 떠나려는데 “너네 여기서 뭐하는 거야?” 하는 호령 소리가 문쪽에서 들려왔다. 


수위 아저씨였다. “불도 안 켜고?” 하며 교실 전등을 확 켜는 중년 남성은 교복도 입지 않은 한 밤의 여자애 넷의 모습에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도 무척 놀랐지만, 희한하게도 우리는 제법 침착하게 대꾸했다. “우리 3학년인데요, 졸업 전에 마지막으로 교실 한 번 둘러 보러 왔어요. 이제 갈 거예요.” 술에 취해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열두시가 거의 다 된 시각이었다. 그는 우리 행색을 한참 훑어보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얼른 가라.” 아마 그는 우리가 교실에서 한바탕 놀았다는 걸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담한 우리 태도를 봤을 때, 굳이 구체적 상황을 밝혀서 골치아픈 문제를 만들기 싫었을 것 같다.


우리는 얼른 학교를 빠져나오며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까 운동장에서 술 취해 고래고래 노래를 부를 때 정말 아슬아슬했던 것이다. 그때 그 남자도 어디 가서 한 잔 하고 왔던 걸까? 우리가 운이 좋았다. 


졸업을 하고 나서 나머지 둘도 대학에 들어간 이후, 우리는 신촌이나 종로에 종종 모여 술을 마시며 그때의 추억을 두고두고 얘깃거리로 삼았다. 그리고 당시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술자리 관습과는 다르게, 우리끼리 모이면 늘 거리낌없이 안주를 풍족하게 시켜놓고 실컷 먹었다. 그러면서도 술은 딱 한 병만 시켜 나눠마시는 사이라는 점을 뿌듯하게 여겼다. 1인 1안주에 술은 4분의 1병이라고 말이다. 지금은 그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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