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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든 Oct 20. 2024

물의 계급

술과 파티의 시절 10

나 어릴 적엔 알약만 하나만 먹으면 한 끼 식사가 해결되리라는 공상과학적 미래가 널리 전망되었고 모든 사람이 그 예측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요즘은 그런 기술을 연구하는 건 물론이고 상상하는 이조차 아예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오히려 현재처럼, 전 계층의 사람들에게 맛있는 식사와 요리가 이렇게 중요해지고 소위 먹방이나 맛집 찾기가 대중 매체의 핵심 소재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 미래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과거의 예측이 들어맞았다. 나 어릴 적엔 물을 마시고 싶으면 그냥 수돗물을 틀어 마시거나 보리차를 끓여 마셨는데, 과학자들이나 미래 연구가들은 우리가 미래에 ‘물’을 돈을 주고 사마실 것이라고 주장했고 사람들은 그 말을 반신반의했다. “생수를 돈을 주고 가게에서 사서 마신다고??” 심지어 ‘공기’조차 돈을 주고 사 마실 거라고 예측했는데, 요즘 등장한 공기청정기도 거기 해당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내가 어릴 때도 돈을 주고 물을 사는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새로운 가정 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엄마는 어느날 수돗물을 알칼리 물과 산성 물로 분리해주는 기계를 사들였다. 두 개의 네모난 물통을 나란히 붙여놓은 것처럼 생긴 그 기계는 두 물통에 각각 수돗물을 부어놓으면, 두 물통 사이 얇은 막을 통해 알칼리성 물은 왼쪽으로, 산성 물은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지 확인시켜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도 같이 딸려왔다. 세일즈맨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몸에는 알칼리성이 좋으니 알칼리 물은 마시고, 피부에는 산성 물이 좋으니 세수를 하는 데 쓰라고 했다. 과연 리트머스 시험지에 묻혀 보면 알칼리 물은 파랗게, 산성 물은 빨갛게 변했다. 


우리 식구들은 파란 물은 정성스레 물병에 따라 식수로 마시고 빨간 물은 조심스레 들통에 따라두었다가 세수에 사용했다. 알칼리 식수의 맛은, 아무 특징이 없어서 다른 물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반면에 세숫물은, 요즘의 연수기를 사용해 거른 물과 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써서 그런지 물이 매끌매끌 하긴 했다. 


그러다가 내가 성인이 된 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배낭 속에 김치와 고추장을 싸들고 말이다. 그리고 당시 유럽 여행 안내 책자를 보면, 유럽에선 절대 수돗물을 먹으면 안 되며, 반드시 가게에서 병에 든 물을 사먹어야 한다고 돼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을 돌아다니는 내내 산더미 만한 배낭을 등에 메고도 늘 한 손에는 2리터짜리 생수병을 들고다녔다. 그러면서 우리 또래 거대한 덩치의 백인 젊은이들이 들고다니는 조그만 500미리리터 생수병을 질책 반 질시 반의 시선으로 쳐다보곤 했다. 한여름 땡볕 아래 30분만 걸어도 저거 한 병은 다 비울 수 있는 데, 하루에 몇 번씩나 물을 사러 가게에 가(서 많은 돈을 써)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선진국 애들이라지만 너무 낭비하는 거 아냐?


그런데 또 한국어로 된 유럽 여행 안내 책자에는 물에 관해 또 한 가지 신신당부 돼있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가스가 든 물’을 살 위험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탄산수였다. 설탕이 들지 않은 사이다 말이다. 그건 정말이지 당시 우리 한국인 젊은이들에겐 해괴하기 짝이 없는 역겨운 맛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현지어 사전을 뒤지며, 현지 유학생이나 교포들을 만나면 물어보면서, ‘가스가 들지 않은 물 주세요’라는 표현을 익히려 애썼고, 그게 여의치 않아 무방비하게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손짓발짓 해가며 점원과 소통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냥 생수보다는 탄산수를 구매하게 될 확률이, 어쩐지 훨씬 높았다. 탄산수가 더 많이 팔리는지 더 잘 진열돼 있었고 가격 차이도 거의 나지 않았다.


그럴 때 병뚜껑을 따는 순간 ‘피식’하는 소리가 나면 우리는 장탄식과 함께 2리터 물을 그대로 콸콸 길거리에 쏟아버렸다. 맛도 괴상했지만 목이 따가워 도저히 넘길 수가 없었다. 뚜껑을 열어놓고 가스가 다 날아가도록 기다렸다가 먹으면 되긴 하겠지만 빨리 유명 관광지를 부지런히 돌아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의 젊은이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미국도 사정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보니 미국에서 탄산수는 계급의 문제였다. 이 회고록은 미국의 산간 오지에서 자란 하층민 남자가 생계를 위해 군대에 입대하고 군 장학금을 받아 변호사로 성장한 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예비 변호사 모임에 가서 처음 상류층 스타일의 만찬에 참여하게 된 작가는, 서빙을 해주던 사람에게서 “미네랄 워터를 마시겠느냐, 스파클링 워터를 마시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반짝이는(스파클링) 물’은 대체 뭔지 궁금해서 받아 한 모금 마신 작가는 그대로 뿜을 뻔했다고 한다. 그건 내가 처음 유럽에서 탄산수를 먹어보았을 때의 반응과 정확히 같은 거였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이라는 인도 소설도 생각이 난다. 인도 하층민 남자가 사랑하는 여배우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선택한 건 ‘생수 사업’이었다. 오염된 지하수를 퍼내서 스스로 개발(?)한 필터로 거른 다음, 대충 한 번 끓여서 플라스틱 병에 넣어 싼 값에 파는 거였다. 이게 될까 싶은데, 그는 의외로 엄청난 돈을 번다. 우리나라 민담에서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도 있으니까, 물장사가 의외로 치부의 수단으로 개연성이 있나 보다. 물의 문제가 계급의 문제와 이렇게나 연관이 깊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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