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며 춤추던 시절의 변천사

술과 파티의 시절 12

by 어쨌든

처음 댄스클럽을 간 건 고등학교 동문회에서였다.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리버리 하던 3월의 나는, 동문회에 나오라는 선배 언니의 연락을 받고 신촌으로 나갔다. 교복 차림으로 만나던 1년 선배 언니들은 그 사이 환골탈태해 알아볼 수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긴 파마머리에 진한 화장, 미니스커트에 킬힐… 나를 비롯한 졸업 동기들은 아직 추운 때라 촌스런 패딩에 청바지를 입고 나갔는데, 함께 서 있기조차 부담스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안절부절하는 우리 팔을 잡아챈 언니들이 당당하게 클럽으로 들어갔다.


클럽 안에서도 우리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언니들은 자리를 잡고 술을 한 잔씩 시켜준 다음, 플로어로 나가서 몸을 마구 흔들었다. 넋이 나간듯, 기가 질린 듯 멍하니 앉아만 있던 나와 동기들도 하나둘씩 언니들에 이끌려 플로어로 나가야 했다. 어쩌다 보니 플로어 한가운데 둥그렇게 선 우리는 주변 옷차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몸뚱이를 최대한 웅크렸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도 눈에 띌 테니까, 팔다리를 조금씩 흔들긴 했는데, 고개는 푹 숙인 채였다. 마치 벌을 받는 것 같았다. 그후로 다시는 언니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한 학기를 휴학하고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거기서 집안 좋아 보이는 남자애들을 만났다. 각각 서울, 파리, 독일에서 자라나 그곳들의 대학을 다니면서도 어떻게 해서인지 서로 자주 만나 교류해온 듯한 남자애들 셋이서 마찬가지로 유럽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랑은 체코에서 마주쳐서, 넷이서 같이 몇 군데를 더 여행 다니다가 갈라졌다. 그러면서 겨울울 방학 때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번에는 강남에서 만났다. 넷이 술을 마시다가 클럽으로 2차를 갔다. 난 이제 겨우 두 번째 가는 댄스클럽이었는데, 이번에는 몇 년 만에 어쩐지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많이 취해서였을까. 나는 마음껏 팔다리를 움직이며 배워본 적도 없는 춤을 췄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그럭저럭 흥겨웠다. 분위기가 싸해진 건, 내가 플로어에서 다른 남자애랑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였다. 왠지 나의 일행들보다는 그애가 나의 제멋대로 막춤을 잘 받아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체 접촉도 좀 과해졌다. 그런 나를, 일행 셋 중 하나가 클럽 밖으로 끌고 나왔다. 너무 취한 것 같으니 집에 가라고 말하며 택시에 태웠다. 그후로 다시는 그애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후로 나는 춤추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예 주중에 댄스학원을 등록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춤을 배웠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홍대로 나갔다. 원래는 스터디를 하러 모인 친구들이었는데, 스터디가 끝나고 나면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신 다음 자연스럽게, 당시 핫하던 클럽들을 차례로 전전했다. 새벽까지 하루가 끝나지 않았고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그 짓도 시들해질 무렵, 나는 취직을 했고 업무 강도가 꽤 거셌다. 매일 야근이 이어지고 주말에도 근무를 하는 일이 많았다. 혹시라도 쉬는 주말이 생기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밀린 드라마를 넋놓고 시청하다가 졸다가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옛날 친구들이 정말 오랜만에, 거의 몇 년 만에 다시 뭉치기로 했다.


그새 많이 늙은 우리는 주말 저녁에 만나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클럽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밤 10시에 문을 여는 클럽이니 1시간 정도만 더 기다리면 될 터였다. 밥과 고기는 배부르도록 먹었으니 술이나 더 시켜서 마시고 있는데 문득 둘러보니 다들 졸린 얼굴이었다.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우리 중 하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근데… 졸리다… 우리 그냥 집에 갈까?” 그러자 너도나도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응… 사실 나 내일도 출근해야 돼. 우린 이제 클럽에 가기엔 너무 늙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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