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을 사들고 나오는데 커피숍 사장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자 내가 상냥하게 웃으면서 주문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곤 깨닫는다
- 아 내가 기분이 좋았구나
사실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무엇을 살지 결정했었다. 캐러멜 시럽 머핀을 살 요량으로 기분 좋게 들어갔고 캐러멜 시럽 머핀과 남편이 좋아하는 블루 베리가 든 머핀 두 개를 집었다. 그리고 씁쓸한 맛이 가미된 커피 한잔까지. 기분 좋게 '내' 용돈으로 결제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보니 매우 상냥한 손님의 자세였다. 그런 손님을 아침부터 만난다면 사장의 입장에서도 꾀 기분 좋았겠지.
요즘엔 입맛도 무뎌져서 아주 강한 맛이나 아니면 무미한 맛에 끌린다. 그것 외에도 삶의 형태에 있어서 큰 자극이거나 소소한 행복이거나 극단적으로 중간 없이 사는 듯싶다. 나이가 들면 흥미가 떨어진다는 게 이런 걸까.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에 꺄르륵거리며 35년 넘게 살다, <아이>라는 큰 자극제를 만나다 보니 다른 일들이 무기력하게도 느껴지고 무미하게도 느껴진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지난 주 가족들과 양평에 차를 타고 갔다. 양평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라 틈만 나면 가는 편이지만 두어 달 만의 방문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무언가 작은 것들에 빵빵 터지며 미친년처럼 깔깔댔다. 그런데 그걸 자각을 하지 못했다. 몇 번 깔깔 대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여봉 오늘은 자주 웃네'라는 말에 그제야 내가 기분이 매우 좋은 걸 깨달았다. 기분이 안 좋았다면, 아무리 웃긴 일이라도 시무룩했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자각이 줄어들어서 삶이 재미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직 굴러가는 나뭇잎이 웃기기도 하고, 갑작스레 창가를 두드리는 새가 반갑기도 하는 <어린이 감성>의 나는 여전했다. 다만 내 감정을 바라보는 것에 조금 무뎌진 듯싶다. 아이가 반짝 웃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서, 그런 최고의 감정 외엔 가치가 좀 줄어들었나 보다. 매일매일 재미있는 일 신기한 일이 가득한 세상이라는 걸, 아직 그렇다는 걸, 나의 <어린이 감성>은 건재하다는 걸 알았다! 야호!
그러나, 몸은 어른이니까 어쩔 수없이 일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