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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15. 2022

친구가 없어도 잘 사는 이유

소중한 당신

 나는 친구가 많이 없다. 하지만 이런 나도 한때는 관계를 중요시하며 살아갈 때가 있었고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나에 인격이라도 언급하는  으스대며 다니던 시기가 있었. 친구에 숫자와 다양성이 마치  존재에 대한 질감을 도드라지게 주는 수단으로 알았으니 말이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기준이 항상 주변 누군가를 보며 맞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못한다 싶어도 주변을 돌아보니 비슷한 출발선에 서있는 듯 보였기에 안도를 했고, 좀 잘한다 싶어서 돌아봤더니 나만 튀어나와 있는 듯 보여서 몇 걸음 물러서기도 했다. 이런 것이 관계인양 우리들이 대충 그어놓은 선이라는 것에 나를 맞추며 살기 급급했던 것 같다.


반대로 누군가가 우리라는 출발선에서 조금이라도 튀어나오면 알 수 없는 경각심이 고개를 든다. 누구는 어디 좋은 집으로 이사 간다더라, 좋은 차를 산다더라고 하면 괜스레 딴지를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면서 마치 운만 좋았다는 말로 그 사람에 노력을 뭉게 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이유로 깎아내리기 바빴던 철없던 나에 모습은 어쩌면 본디 나에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관계라는 것을 핑계로 노력하지 않는 나에 모습과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던 겁쟁이 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관계 속에 나처럼 생각하는 놈이 어디 나 혼자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보다 더한 놈들도 많았다. 끼리끼리 논다고 누가 했나? 무당인가 귀신인가, 소름까지 돋는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나도, 너도, 우리도 다 비슷한 처지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서로에 처지가 비슷하다고 납득이 되어야 진정 우리라는 관계가 성립하듯 느낀다. 내가 아직도 미천하게 사는 이유가 단지 세상에 불공평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결론임을 안다. 하지만 집단속에서는 이런 잘못된 결론조차 진리라도 되는냥 서로 되뇌곤 한다는 것, 종국에는 진실인 듯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틀이 너무 싫었다. 행복한 사람 손을 들어보라 했을 때, 자신이 행복하면 그냥 손을 들어 보이기만 하면 된다. 왜 우리는 남에 눈치를 보며 손을 들지 말지 저울질하는 것일까? 많이 들지 않으면 자신이 행복하다 느껴도 관계를 택하며 손을 쉽게 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마치 부러움에 대상이 되면 공격에 대상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이다.


어느 날 나는 우리라는 틀에 벗어나 저 멀리 도망치고 싶었고, 새로운 출발선에 나 홀로라도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보는 것도,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에 의견을 결정하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 마저도 다수가 선택한 좋아요 뒤에 숨기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졌나 보다.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쓸데없는 관계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나에 감정만 축내는 인간들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에너지라는 것이 모이기 시작하더라.


모여진 에너지는 나를 위해 투자하고도 남아돌았고, 나를 위해 기꺼이 감정을 내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기 충분했다. 선택과 집중은 이런 사유로 하나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다던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다던 나는

결국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대접받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호구와 착함 사이를 오가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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