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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17. 2022

공감을 연습하는 사람

소중한 당신

 얼마 전 회사에 같이 일하던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이색적인 근황을 들었다. 요즘 책을 보며 연습을 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 연습에 대상이 바로 공감이라 한다. 순간 뭘 그런 걸 다 연습하지,,, 그냥 남에 말을 들어주는 것이 공감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나는?'이라는  독백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사실 연습이라는 것은 자신이 못한다거나 어색한 것을 익숙함으로 가져오기 위한 행동이다. 잘해야지, 이렇게 해야지라는 행동을 의식해서 하려다 보면 본디 잘하는 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만다. 멀티태스킹이 잘 되지 않는 사람, 즉 태생부터 싱글코어를 가지고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숨을 쉬듯 행동과 생각에 자연스럽게 반영될 때까지. 파블로스에 개가 될 때까지 반사신경과도 같은 기재를 깊숙이 심어놓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말을 조리 있게 하느라 숨을 쉬는 것조차도 까먹을지 모른다. 나라는 녀석은 이렇게나 단순하다.


그 동료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에 과거를 계속 떠올렸다. 나는 어땠는지, 공감에 대한 연습을 했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공감이란 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인지를 떠올렸다. 역시나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았다. 계속 엉뚱한 곳을 보며 회상하는 듯 뇌 점유율이 엉뚱한 곳으로 쏠리는 것을 보이자, 그 동료는 자기 말 공감 못하고 있다고 핀잔을 주더라. 결국에는 나도 공감을 못하니 연습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공감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사실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거나, 잘해야 한다는 것을 본인이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가능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공감을 못한다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나아가 공감을 부탁하는 일 조차도 많이 없었던 것 같았다.


사회라는 곳은 못하면 못한다고 말해주고 개선을 유도하는 수련원 같은 시설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못하면 그냥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리면 그만인 것이고, 대가를 더 많이 지불하더라도 잘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동물에 왕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왕국에서 난 그냥 공감 못하는 놈으로 낙인찍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현주소를 말해주지 않은 그 누군가가 원망스럽기도,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기도 느껴진다.


누굴 탓하겠는가,,, 다 내 잘못이지.


어쩌면 그 동료가 하고 있는 공감 연습이라는 것이 나에게 황당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다른 이유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공감이란 것을 연습하지 않아도 잘한다가 아닌, 공감에 대한 요청이 없었기에 잘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고 공감능력이란 것이 부재했기에 오는 황당함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다음에 그 동료를 만나게 되면 공감 연습을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지 물어보고, 학원이라도 있으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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