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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23. 2022

내가 회의를 싫어하는 이유

소중한 당신

 직장인이라면 업무시간 순삭 모임인 '회의'란 것을 피해 갈 수 없다. 서로에 업무를 조율하거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가 바로 회의라는 것에는 다른 이견은 없다. 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고, 색다른 돌파구를 찾기도 하기에 모든 일에 시작과 끝은 바로 회의라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회의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코로나로 인해 할 수 없었던 회의가 다시 시작하게 됨에 따라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심해져서 그런 듯싶었다. 사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사회적 거리두기에는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스크를 써야 함에 따라 얼굴에 반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고(장점인 것일까?), 귀와 얼굴이 만나는 골짜기에는 피딱지가 생겨 마스크가 원래 몸에 일부가 아니었음을 간간히 언급할 뿐이었지만, 분명 장점이란 것도 있더라


우선 쓸데없는 회의가 다 사라져 버렸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소집되던 회의가 어떨 때는 일주일이 다 가도록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일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가 생긴 프로젝트도 없었고, 회의를 못해서 업무에 차질이 빚어진 적도 없었다. 심지어 일을 집에 가져가 혼자 하는데도 오히려 더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사회생활에 회사 이동시간과 회의 시간만 뺏을 뿐인데, 곤욕이 여유로 바뀌는 경이로움을 목격했다.


그렇다고 해서 회의가 거추장 스런 존재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일을 함에 있어 뗄 수 없는 소통에 장이라는 것은 맞지만 우리는 분명 남용하고 오용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의를 망치는 빌런들에 사례를 몇 가지 적어본다.


회의시간에 늦게 들어와 다른 모든 이에 시간을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늦게 들어와서는 미안하다는 말 없이 태연하게 슬쩍 앉는다. 언제 늦었냐는 듯 천연덕스런 연기를 펼치며 논쟁을 했던 사람처럼 앉아 있더라. 물론 일이라는 것은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생긴다는 것을 잘 다. 그렇지만 왜 항상 늦는 사람만 늦고, 하필 회의할 때만 바쁘다느 것일까? 이런 사람은 어딜 가나 꼭 있는 듯하다.


회의 내내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만 고수하며 말은 본인만 해야 한다고 무슨 규칙이라도 정한 것일까? 무슨 웅변대회라고 착각하고 온 것일까? 자신이 말하면 진리고 남이 말하면 딴지를 건다고 생각하니 대화 자체가 어렵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분은 아주 용감하다. 그것도 회의시간에만 말이다.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회의가 무슨 자기가 해야 하는 일 떠넘기는 곳인양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봐도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인데 회의를 소집해서는 본인이 이 일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조리 있게 말을 한다. 화려한 말발에 홀려 정말 그런가 싶다가도 본인이 그렇게 강조하는 논리에 자신이 빠져서는 허우적 대곤 하더라. 하,,,,, 한숨이 나온다. 아는 길도 물어보고 가라는 말을 잘못 이해한 듯싶다.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어디인지 또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이런 빌런들 몇몇이 아껴뒀던 내 감정과 시간들을 모조리 훔쳐간다. 정적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힘이 빠져 깨작깨작 될 뿐이다. 왜 중요한 일들이나 업무 계획보다 회의 당시 무례했던 모습과 말들만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것일까?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지만 험담이 될 것 같아 그냥 내 감정만 축내고 말았다.


요즘 코로나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다시 회의에 대한 빈도가 늘고 있다. 다시 또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걱정이 앞선다.


빼앗긴 내 시간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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