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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23. 2022

행복은 깊이가 아니라 빈도다.

소중한 당신

 우리는 왜 일하는가? 언듯 보기에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듯하면서도 무엇이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질문에 답하기 전, 일에 이유로 포장된 물음에는 그 답을 구하기 위해 많은 목적과 이유에 대한 답변부터 요구하는 듯 보였다.


보통은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라 한다. 그럼 돈을 벌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물어보면 다시 침묵에 시간으로 기어 들어가 그 답을 구하기 시작한다. 결국 나온 대답은 거의 뻔하더라, 돈을 벌면 행복하니깐.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번다한다. 그럼 행복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한 번 더 물음을 건네면 더 이상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삶에 대한 목적이 행복인 것처럼 달달 외워 왔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돈이 많은 사람,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 물론 대부분에 사람들은 당연히 행복할 것이다고 대답할 것이다. 누구는 금수저라 행복할 것이라 치부해 버리고, 죽어라 노력해도 우리는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밖에 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님 직업이 바뀌거나, 로또가 되거나 말고는 다른 것을 염두하지 않는다.


사실 돈이 많은 사람 대부분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왜 그런지 봤더니 돈이 많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돈을 버는 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라 한다. 학창 시절 받았던 용돈, 대학생이 받는 아르바이트비, 직장인이 받는 월급은 사실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당연히 직장인이 받는 월급이 훨씬 많을 테지만, 행복함을 비교해 본다면 학창 시절이 가장 높다 한다. 돈은 행복에 척도가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당신은 이미 누군가가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생각하는 금수저에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가 생각하는 행복에 기준을 만족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있고, 집이 있으며 차가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원했던, 현생에는 갖지 못할 정도에 행복한 삶일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목적이라 생각하는 행복은 이미 당신 손에 거머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화기를 손에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선 전화기를 찾고 있다고 한다. 그 누군가는 또 주변을 잘 찾아보라 한다. 아무리 봐도 전화기는 보이지 않는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자신이 쥐었던 손만 펴 보이면 있는 것인데 말이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막연한 행복은 잊어라. 비가 들어차지 않는 곳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일을 하고 돌아와 고된 몸을 뉘일만한 자그마한 공간이 있다는 것, 실패와 절망이 있더라도 희망은 잃지 않았다는 것,


이미 당신은 행복은 깊이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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