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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Jul 26. 2022
모든 글에는 제목이 있다. 글에 제목을 정하지 않으면 구천을 떠도는 산문과 다를 바 없다.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들을 마음대로 이어 붙여 놓고는, 그것도 글이랍시고 제목을 갖다 붙이려는 노력을 했었다. 그냥 언급에 빈도가 높은 단어만 들어가면 좋은 제목이 될 줄 알았고, 글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에 내 글은 제목도 주제도 없이 그렇게 한참 동안 구천을 떠돌았다 한다.
지금은 주제를 정한 다음, 제목을 짓고 글을 쓴다. 아무리 내가 멀티태스킹이 안된다 하지만 제목 한 줄 정도는 머릿속 어딘가에 박제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 박제된 주제를 책받침 삼아 미농지를 씌워 생각이란 것을 스케치해본다. 이렇게도 그려 보고 저렇게도 그려 봐도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무리 많다 하지만 제목이라는 큰 흐름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지류일 뿐이다. 골짜기에서 태어나 바다로 흘러간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러고 보니 나는 이름이 있다. 살다 보니 빈도가 높은 단어들을 가져와 내 이름을 짓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나름 공부하셔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 삶에 제목을 붙여 주셨다. 단어 하나하나 만으로 본다면 빛나기도 하고,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고, 남들이 우러러볼 수 있게 떠올라서 살아라 한다. 그게 내 이름이고 내 인생에 제목이기에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물론 살다 보니 제목에서 조금 벗어날 때도 있다. 사무치는 슬픔에 목놓아 울어 보기도 하고, 누구보다 낮아지는 존재감에 한없이 고개를 떨구어 보기도 했다. 위로란 것을 받기 전까지는 나 자신이 부러진 것도 모르고 달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위기가 있고 기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위기 뒤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말이 온다는 것을 안다.
초월적인 힘에 기대에 지금 이 순간이 삶에 시작과 끝 사이 어디쯤에 왔는지를 가늠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분명 지금이 가장 견디기 힘든 오르막일 것이고, 앞으로는 편하게 내디딜 수 있는 꽃길만 남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시련도 환하게 맞이 할 수 있을 텐데, 어떤 시련도 제목에 맞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올 한 해가 벌써 반이상이 지나간다. 지금이 한해에 있어 가장 치열하게 더운 시절이라는 것과 그 뒤에 다가올 천고마비에 계절이 있음을 안다. 다시 꽃이 피는 봄을 잉태하듯 얼어붙는 겨울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계라는 제목에 맞게 모든 세상은 주제에 맞게 돌아가는 듯 보인다.
무더운 어느 여름밤, 주제에 맞지 않게 몇 마디가 생각나 제목을 떠올려 봤다.